작년 1인당 독서량이 5.4권이란 기사를 보았다. 이렇게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지 직업이라는 생계수단으로써의 기능만이 아닌, 책이 가진 미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책방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이 서점이나 책방을 꾸려나가는 건 이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책방에 뜻을 가진 개인이나 기업이 북카페의 형태로나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책과 카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의외로 어려운 일일 테니까.
제주 한경에 위치한 책방 소리소문
얼마 전 제주 여행을 하다가 책방 소리소문에 들렀다. 독립서점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기도 한 데다, 여행기간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찾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떤 분위기의 책방인지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고 제주에 사는 후배가 꼭 가보라는 추천도 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구경 좀 하다가 관심 가는 책 몇 권만 냉큼 사고 나올 예정이었다. 한 곳에서 진득하니 있지를 못하는 내 성격을 아니까.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책방의 분위기에 홀려 이 책 저 책 들여다보고 구경하다 보니 오후가 훌쩍 가버렸다.
책방 소리소문을 방문해서 놀란 건 책방이 스스로 브랜드가 되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커피를 팔지 않고, 정성스러운 큐레이션과 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보여줌으로써 동네 사람들은 물론 여행객들까지 한 번은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만들기까지 두 사장님이 들인 노력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여행객들이 포르투에 가면 렐루 서점을 꼭 가야 하는 것처럼, 제주도에 가면 소리소문을 가야 한다는 상징성이 점점 쌓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소리소문을 들른 것이었다.
책방 소리소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블라인드북을 보면서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마케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책인지 알 수 없도록 정성스레 포장을 해서 선물 받는 느낌을 주면서, 오로지 포장지에 적힌 해시태그만으로 책을 고르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낸 것일까.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그 해시태그들과 책의 내용이 궁합을 이뤄 그 책을 고른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책의 메시지와 손님의 니즈를 섬세하게 파악한 사장님들의 안목 때문일 것이다. 책방의 내부 분위기부터 책들의 배치, 그리고 외관까지 모든 게 조화를 이룬 곳의 전형이었다면 과장인 걸까.
이곳에 갔다면 블라인드북은 꼭 사보시길. 와이프가 고른 저 책도 정말 좋았다.
북카페나 독립서점을 참 열심히 찾아다녔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공간의 분위기들은 대체적으로 좋았지만, 늘 아쉬운 건 내가 찾는 책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곳을 운영하는 출판사가 발행하는 책들이 중심인 곳도 있었고, 특별한 콘셉트 없이 그냥 책을 진열한 곳들도 있었다. 이럴 거면 교보문고 가서 책 사고 그 옆에 있는 카페 가는 거랑 뭐가 다를까 하는 아쉬움은 늘 있었다. 하지만 소리소문처럼 정성스럽게 큐레이션을 해놓은 책방이 있었다면 내 독서 생활은 꽤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니즈에 맞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책방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갑니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북카페들이 다 없어지고 아직 정 붙일 책방이나 북카페를 찾지 못한 나에게, 책방 소리소문은 그런 목마름을 해소해 준 그런 공간이었다. 비록 너무 멀리 떨어져 자주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이 책방을 들르기 위해서라도 제주도를 자주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정도의 정성으로 책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곳이라면 몇 권이든 사주겠다는 오기가 들 정도로. 부디 오래오래 이 책방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늘 책과 문장을 사랑하고 언젠가 자기 책방을 꿈꾸는 있는 후배가 언젠가는 여기 못지않은 멋진 책방을 열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