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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Oct 25. 2024

「이 중 하나는 거짓말(by 김애란)」 을 읽었다

간만에 찾은 이리카페는 역시 좋더라

소리는 가끔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자기 꿈을 깨끗이 작별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그저 다음 단계로 간 것뿐'이라며, '작별한 건 맞지만 깨끗이 헤어진 건 아니'라고 했다. '대부분의 어른이 그렇게 사는데 그건 꼭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니'라면서.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요즘에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어른스럽게 풀어낸 문장이 아닐까. 예전 어른들이 '사는 거 별거 없다' 라고 하는 말씀들이 결국 저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비록 삶의 특정한 시기에 원하는 걸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시간은 계속 갈 테고, 그다음 단계에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어떤 삶의 모습에 대해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건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다.


김애란의 책은 늘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난 후 가슴이 먹먹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을 읽었을 때도 생각했다. 뭐 이런 작가가 다 있을까. 문체도 담담하고, 소재가 자극적이지도 않은데 왜 책을 다 읽고 나면 심장을 꾸욱 움켜쥐었다 놓은 것 같은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 나와 같은 나이, 같은 시간을 공유해 온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세심하면서도 따뜻했다. 담백한 줄거리 속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섬세함이 김애란 작품이 가진 힘이다.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많이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뺨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이 책은 고등학생인 주인공 3명의 일종의 성장기이다. 각자가 가진 아픈 사연으로 성장통을 겪는 그들이, 세상은 결코 꿈과 희망으로만 차있지 않음을 남들보다 좀 더 일찍 깨닫는 그런 이야기. 위의 저 문장은 이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해주고픈 아픈 진실이 담겨있다. 너희가 맞이할 세상은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고, 때론 아주 모질고 야비하게 너희들을 대할 것이라는 걱정스러운 진실. 하지만 저런 우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문장으로나마 전해주는 그런 어른이 그들에겐 필요한 게 아닐까.


책의 부록인 작가의 친필 엽서 속 '나이 들어 더 느끼는 바지만 시간은 가차 없고 시간은 무자비하지요' 라는 문장이 유난히 마음을 헤집는다. 시침, 분침이 오차 없이 똑딱똑딱 움직이면서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는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감정을 함께 느끼고 저토록 멋지게 표현해 주는 동년배가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본문뿐만 아니라 부록까지 멋진 책 무척 감동이었다.


작가의 정성스러운 선물과 같았던 엽서



몇 년 만에 찾아간 이리카페는 예전 그대로 적당히 조용하면서 책 읽기 좋은 정도의 소음이 있어서 좋았다. 한 때 없어질 위기에 놓였던 상수동 터줏대감 카페가 어떻게든 살아남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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