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내가 떠난 줄 아세요 스쳐가는 바람 뒤로 그리움만 남긴 채 (김지연, '찬바람이 불면' 중)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차가워진 공기보다 노래로 먼저 알게 되곤 한다. 머라이어 캐리 누님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들리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다는 뜻이고, 미스터투 형님들의 '하얀 겨울'이 음원 차트에 올라오면 이제 눈이 펑펑 내릴 즈음이구나를 짐작하게 되니까. 그런 맥락에서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이란 노래는 이젠 슬슬 가을을 놓아주라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오는 노래다.
찬바람이 불면 노래 속 가사처럼 그리움, 외로움 등의 감정이 떠올라야 하는데 이제는 본가와 처갓집 김장 날짜가 언제인지, 배춧값이 많이 올랐다는데 이제 좀 떨어졌는지, 자동차보험 만기가 다가오는데 올해도 같은 보험사에 가입해야 할지 등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비해 감성이 무뎌진 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현실의 고민이 늘었기 때문일 거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오는 게 느껴지면, 이젠 설렘 대신 스산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찬바람이 피부가 아닌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그런 느낌이랄까. 올해가 어느덧 흘러가버렸다는 허탈함, 내년은 또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중첩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를 새삼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늦가을 또는 초겨울로 통칭되는 바로 지금 이 시기인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그 냉기가 더 차갑게 느껴지려나.
유난히도 길고 힘겨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서 좋았던 것도 잠시, 이번 가을은 너무 짧게 머무르다 가버리는 중이다. 그렇게 보내기 아쉬운 가을을 배웅하기에 이 노래만한 곡도 없지 않나 싶다. 이 노래도 꽤 많이 리메이크가 되었지만, 김지연의 기교 없는 목소리로 털어놓듯 부르는 원곡이 역시 가장 좋다. 이 노래와 함께 이제 월동 준비를 슬슬 시작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