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여행은 끝이 없다. 대륙을 횡단하고, 지구 한 바퀴를 돌고, 4년 넘게 험로를 달렸다 하여도 멈추지 않는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잠깐의 휴식일 뿐. 도로에서 자유와 성찰, 교감과 진실을 발견한 다섯 라이더들의 기록을 옮긴다.
이미지 출처 @matiascorea
마티아스 코레아(Matias Corea) + 볼리비아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가 알던 내 삶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방향은 상실된다. 비극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떠안고 살아가야 할 주름 같은 것이다. 한 번 새겨지면 영원히 남는다. 2015년 마티아스 코레아는 여동생을 잃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몇 달이 지난 뒤였다. 그는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장거리 모터사이클 여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그 여행만이 당장 해야할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동생을 잃은 8개월 후 그는 절친 조엘과 함께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출발해 미대륙 최남단 도시인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까지 긴 여정을 떠났다. 주름은 그렇게 익숙해진다.
1985년형 BMW R80G/S 파리-다카르
1985년형 R80G/S 파리-다카르는 기념비적인 모델이다. 독일 라이더 가스통 라히에는 BMW R80G/S를 타고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1984년과 1985년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델답게 파리-다카르 에디션이 존재한다. 이제는 클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티아스는 이 역사적인 모델을 타고 대륙 횡단을 시도했다. 그가 이 모델을 택한 것은 멋스럽기도 하지만 작동하기 쉬운 간단한 구조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장거리 모터사이클 여행에는 기계식 모델이 적합하다. “칩, 컴퓨터, 센서도 없어요. 모든 부분이 기계식이라 세계 어느 곳에서든 수리가 가능합니다.” 마티아스가 말했다. 기계식 바이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또 있다. 그에게는 캠핑 장비다. 오지를 여행하다보면 언제나 따뜻한 침대에서 잠들 수는 없다. 숲속이든 사막이든, 산꼭대기이든 밤이 찾아오면 텐트를 쳐야하고, 허기가 지면 식사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하죠. 제게 있어서 캠핑 장비가 가장 중요한 준비물입니다.” 마티아스는 다음과 같은 준비물을 추천했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해줄 캠핑 텐트는 가장 중요하다. 편안한 휴식을 위해 펼치면 자동으로 공기가 충전되는 매트리스도 유용하다. 체온을 보호해줄 침낭도 필요하고. 어디서든 요리할 수 있는 스토브도 빼놓을 수 없다.
안데스 산맥의 아름다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리다 나타나는 울창한 밀림, 높은 산맥과 굽이진 도로. 남미는 경이로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마티아스는 몇 개의 놀라운 풍경들을 떠올렸는데, 그 중 페루의 안데스 산맥의 ‘코르디예라 블랑카(Cordillera Blanca)’를 꼽았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열대 산악 지대인 코르디예라 블랑카는 해발 6천7백68미터에 달한다. 깊은 협곡 사이에는 수 많은 개울과 빙하호과 장엄하게 펼쳐져있다. 마티아스는 호수를 내려보며 경이로움과 동시에 평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산과 하늘의 균형 사이에선 제 자신이 아주 작게 느껴집니다. 대자연이 저를 웅크리게 만들죠.” 페루에서는 즐거웠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티아스는 페루의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적 있다. GPS 수신 상태가 불안정했다. 지도도 명확하지 않았고. 해가 지면 온통 어둠뿐이라 위치 파악이 쉽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큰 길을 찾아 다녔지만 실패했다. “운이 지지리도 없었죠. 숲속을 헤매다가 어느 순간 광산처럼 보이는 곳으로 우회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저희에게 하룻밤을 허락했어요. 물과 담요를 주고, 텐트 칠 수 있는 장소까지 데려다 주었죠. 그들은 저희를 몰랐지만 저희를 믿어주었어요.” 여행하며 만난 낯선 사람들의 친절은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고 마티아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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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위해서
“모터사이클 여행은 지루하지 않아요.” 마티아스가 말했다. 그에게 장거리 라이딩은 단순히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질문들을 되새김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끊이 없는 도로처럼 계속된다. “그건 명상이나 다름없어요.” 마티아스는 매일 경험하는 새로운 곳과 풍경들이 계속 달려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 새로운 경험들은 믿을 수 없이 행복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바이크였을까. 자동차도 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을 보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요. 오토바이가 그렇게 만들어요.” 마티아스는 말한다. 도로에서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고. “우리가 모두가 같은 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것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받기 위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삶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번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티아스는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은 점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위험한 순간
볼리비아에서 일어난 사고는 마티아스의 모터사이클 여행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1985년형 BMW R80G/S 파리-다카르의 앞바퀴가 모래 속 바위에 부딪혔다. 그 순간 마티아스는 오토바이의 통제력을 상실했고, 바이크는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가 그에게로 떨어졌다. 마티아스는 길 한 복판에서 쓰러졌다. 다행인 점은 다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찔한 경험은 그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바이크를 탈 때 위험하다고 여기던 기준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항상 편안하고 안전한 속도로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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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교감하는 일
마티아스의 여정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옆에는 늘 절친 조엘이 함께 있었다. 둘이 함께 달리니 외로움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물론 그도 혼자 여행한 적은 있다. 홀로 달리며 외로움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깨달았다. 오토바이 위에서는 그 사실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또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달리고 있는 지역의 지형, 그 곳만의 냄새, 정글의 습도, 사막의 먼지, 산의 차갑고 가벼운 공기를 느끼게 된다. 보고 듣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교감이다.
삶의 방식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마티아스는 모터사이클은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답했다. “일단 모터사이클 여행에 중독되면 비견할만한 것이 없어요. 뭐랄까요. 이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자유와 독립, 운동과 자립을 의미한다. 그가 가고 싶을 때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두 바퀴이다. 미대륙을 횡단한 그에게 남은 대륙은 몇 개일까. 그의 다음 여행지는 유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을 지나 그리스까지 가고 싶어요. 그 다음에는 바로셀로나에서 남아공까지 달릴 거고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이 두 남자의 바이크를 애타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