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백업

나는 왜 머스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by 조진혁

나는 왜 머스탱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 69’ 포드 머스탱 마하1

시작은 스티븐 맥퀸이었다. 대학시절 동아리 방에서 영화 <블린트>(1968)를 보았다. 내용은 어렴풋하지만 샌프란시스코 고개를 달린 아니 거의 날아다니던 자동차 추격신은 잊지 않았다. 가파른 강남 언덕을 지날 때면 가끔 생각난다. 스티븐 맥퀸처럼 차량 뒤를 털며 코너를 빠져나가고 싶지만 망상일 뿐. 여하튼 영화에서 그의 애마는 올리브빛 68년형 머스탱이었는데, 그때 머스탱에 반한 것 같다. 의식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년기에도 머스탱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머스탱은 꾸준히 등장했으니까. 주로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됐는데 자유로운 성향을 드러내거나, 해방감을 표현할 때, 세련됨이나 강력함을 알리고자 할 때는 머스탱과 함께였다.

엄마가 좋아하던 영화 <남과여>(1966)에서도 65년형 머스탱 GT40이 등장한다. 레이서인 남자가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마치고 경주에 사용했던 머스탱을 몰고 밤새 운전해 여자에게 간다. 각성 상태의 남자는 운전하며 독백를 읊조리고, 결국 바닷가에서 여자와 극적인 조우를 이룬다. 영화에서 여자는 기차, 남자는 머스탱을 탄다. 기차는 탑승객들을 태우고 일관된 속도로 이동하며 여자의 상황을 표현하고, 밤 새 뜬 눈으로 달리며 위험한 질주를 하는 고독한 남자는 머스탱으로 상징됐다. 그러고 보면 69년형 머스탱 보스 302의 오너 존 윅도 고독하긴 마찬가지니 쓸쓸한 남심을 위로하는 차인 것도 같다.

자동차를 주제로 한 영화는 무수하지만, 머스탱처럼 인물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활용된 모델은 많지 않다. 왜 일까. 왜 머스탱은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할 수 있는 차였을까. 머슬카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다. 공기저항과 같은 세밀한 요소는 뒤로 하고 오로지 출력 향상에만 집중한 머슬카는 당시 자동차 문화의 통념을 깼다. 머슬카는 강력하고, 저돌적이며 자유롭다. 그런 점에서 젊음의 특성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1세대 머스탱은 이러한 단어들의 표상이다. 1세대 머스탱을 보고 있노라면 청춘의 감각들이 열리는 듯하다. 50년이 넘은 차량이지만 여전히 젊음이 느껴지는 것은 그 형태가 고아한 품격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세대 머스탱의 디자인은 품격을 강조하지 않지만 머슬카로서는 완전성을 갖는다. 단순하고 투박하며 동시에 원초적어서다. 당시 유럽 스포츠카들과는 반대되는 성격이다. 유럽 장인들이 손으로 쓰다듬으며 공기저항이 낮아지라고 기원했던 것 같은 유려한 선을 지녔던 것과 달리 미국의 머스탱은 대량생산에 적합한 직선 형태가 두드러졌다. 측면에서 보면 헤드램프에서 시작된 캐릭터라인이 트렁크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초기 디자인은 매우 단순했다. 머스탱의 디자인을 완성시킨 건 소비자의 입김이었다. 머슬카 바람을 타고 머스탱은 고배기량 차량으로 개조되기 시작했다. 유행을 타고 머스탱 디자인에도 근육이 추가됐다. 직선은 강조하되 휀더를 부풀렸고, 보닛에도 볼륨을 넣었다. 고출력을 강조하기 위해 보닛에는 에어벤트를 추가했고, 지붕은 낮췄다. 머스탱 마하 1에 이르러서는 패스트백 쿠페 형태를 이루게 된다. 트렁크 리드가 불쑥 오르며 지붕과 낮고 완만한 루프라인을 완성했다. 머스탱에 없던 속도감이 붙었고, 스포츠카로서 정체성도 다졌다. 머스탱은 경주용으로도 각광받긴 했지만 그 보다는 집 앞, 도시, 고속도로와 어울렸다. 수억원짜리 스포츠카와는 다르다. 머스탱은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현실적인 스포츠카이자 괴물같은 동력을 얹을 수 있는 머슬카이며, 조금만 노력하면 소유할 수 있는 청춘의 표상이었다. 아름다움은 대상에서 유용함을 발견할 때 느낀다고 믿는다. 머스탱의 유용함은 손에 닿을 듯한 젊음이라는 것. 세월이 지났어도 1세대 머스탱에 깃든 청춘은 바라지 않았다.



모터트렌드 2021.03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읽고 쓰는 이기적인 존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