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칼럼 백업

육아와 허영

돌잔치를 준비하다가 문득

by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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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어려서는 이것저것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재능을 발견할 수 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찾을 수도 있다고, 두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형이 말했다. 형은 아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기회는 돈이다. 영어유치원은 월 1백만원이 넘는다.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곳도 많다. 비싼 곳은 경쟁률이 높아서 등록조차 어렵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미취학생이 영어 배운다고 영어를 잘하나? 나는 학교 가기 전에 천자문을 뗐는데, 지금 내 이름 한자로 쓰는 것도 헷갈린다. 남들 배우는 건 다 해본 것 같은데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아이들은 행복을 먹고 자란다. 어린 나이에는 공부보다 노는 게 중요하고, 놀아야 지혜가 생긴다고 믿는다. 육아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소리를 하면 철없는 무지렁이 취급을 받는다.


육아용품 시장은 출생률에 비례한다. 규모는 줄어드는 대신 고급화로 밀집되고 있다. 지금 아이와 관련된 것들은 대부분 비싸다. 비싸지 않은 것은 시장에서 선호되지 않는다. 육아 예능에 등장하는 의자나 유모차, 장난감, 옷 등 대부분이 고가의 브랜드 제품이다. 육아 좀 한다면 한눈에 보고 어디 제품의 얼마짜리군. 가격까지 안다. 육아용품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구매하기 때문에 유행하는 제품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고급 육아용품은 그 집의 경제력을 가늠하게 한다. 마치 한강뷰 아파트에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구경하는 것처럼 육아 예능과 육아 인플루언서를 염탐하는 건 조금은 부럽고, 대부분 서럽다. 과시적인 측면이 강한 소셜미디어에서는 40만원 넘는 아기의자에 앉아 이유식 먹는 아이 사진이 흔하다. 물론 자랑하려고 비싼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닐 거다. 아이에게 예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그래도 구입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생각을 한 번은 했을 거다.


최근에는 5성급 호텔에서 돌잔치를 하는사례가 늘었다. 돌잔치는 뷔페가 ‘국룰’이었는데, 방역지침에 따르다 보니 고급 호텔에서 소규모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비싼 호텔과 좋은 음식, 사진, 의복 등을 합치면 금액이 몇 달치 영어유치원비에 이른다. 몇 년 전이었다면 럭셔리한 돌잔치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고급 호텔 돌잔치가 ‘국룰’이 되는 추세다.


비싼 육아용품이 아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부모의 허영을 채우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자신을 실체화하는 것은 집 안 곳곳에서 목격되는 육아용품이다. 육아에 전념하면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은 자연스레 상실된다. 여기에 육아로 인한 피로까지 겹치면 공허함이 커진다. 마음의 빈 곳은 아이가 채운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회적 지위와 성취감이 아이 위에 겹쳐진다. 아이 주변에는 부모가 과시하고 싶은 것들이 쌓여간다. 부모의 이 허영이 형의 말처럼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마냥 나무랄 수만 없을 거다.


아이들은 한곳으로 모인다. 이제는 비싼 곳으로 모인다. 아이에게는 안 비싼 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나 역시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가 되면 영어유치원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놀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일 테니.




ARENA HOMME+ 20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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