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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허니문 01

세렝게티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아프리카의 초원은 예상 보다 럭셔리했다.

by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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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래?

거기가면 은하수 볼 수 있어? 응 얼룩말들과 함께. 아내가 아내가 아니던 시절 내게 물었다. 당시 우리는 예식장을 계약하고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차였다. 참고로 우리는 눈에 띠는 특이한 커플도, 보기 드문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다. 월급으로 단 한 달만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여느 예비 부부들처럼 우리도 허니문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허니문을 결정하는 것은 꽤 어려웠고, 그 첫 번째 문제는 목적지였다. 신혼여행을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몰라서 검색했다. 허니문 추천.


다년간의 정보 수집력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허니문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관광 혹은 휴양. 유럽은 관광의 성지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고 그러다 보면 발바닥이 아프고, 무릎도 시리고, 맛집을 찾느라 배도 고프도, 기념품을 양손에 가득들면 손바닥이 탱탱 붓고 그렇게 첫 부부 싸움이 시작된다. 결혼식으로 피폐해진 육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휴양이 제격이다. 몰디브. 이름만 들어도 모히또가 당기는 섬. 푸른 바다에서 수영복만 입고 아무것도 안 한채 일주일을 보낸다면… 지루하지 않을까? 우리가 원하는 허니문은 휴양과 관광이 결합된 멀티플렉스 같은 여행이었다. 그 순간 <라이온킹> 실사 영화가 개봉한다는 뉴스를 접했고, 느닷없이 심바가 떠올랐다. 심바 보러 가자고 아내 아니 예비신부에게 말했다.


세렝게티를 목적지로 정하기에 앞서 세렝게티의 위험성, 휴양과 관광을 모두 누릴 수 있는지 등 다변조사가 필요했다. 허나 주변에 아프리카에 다녀온 사람들도 별로 없거니와 한결 같이 험하고 고생한다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우리가 아는 아프리카는 유니세프가 만든 이미지 뿐이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든 다년간의 정보 수집력을 바탕으로 조사해보니 아프리카 특히 세렝게티는 유럽의 돈 많은 아저씨 아줌마들이 결혼을 기념해 퇴직금을 탈탈 털어 관광하는 그야 말로 유럽인들의 드림랜드였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구 어디를 가든 돈을 많이 쓰면 고생하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쯤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세렝게티에 대한 기본 상식이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 서쪽에 위치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국립공원이다. 이 공원의 크기는 대략 경상도만하다. 세렝게티에 인접한 주요 도시는 아루샤가 있다. 그리고 동아프리카에 속한 탄자니아는 인도양에 접하고 있으며, 바닷가를 제외한 내륙은 건조한 기후이다. 적도와 가까워 일년 내내 태양이 작렬한다. 조용필이 찾던 킬리만자로산도 이 곳 탄자니아에 있다. 탄자니아는 자국 화폐와 미국 달러를 함께 사용한다. 달러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렝게티에는 수 많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전 세계 관광객만 목빼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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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잘래?

허니문을 받칠 국가를 선택했으면 다음 단계는 호텔 선택이다. 세렝게티는 매년 전 세계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다양한 종류의 숙박시설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민박을 연상시키는 저렴한 호텔부터, 럭셔리 프랜차이즈 호텔, 국립공원 내 캠핑장, 국립공원 내 롯지 등이 있다. 참고로 롯지는 산이나 초원에 세워진 숙박시설로 우리나라의 독채 팬션과 비슷한 곳이다. 세렝게티를 저렴하게 여행하려면 탄자니아에 도착해 여행사를 찾아가 투어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의 체력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날 출발할 예정이었기에 우리는 젖은 김 마냥 늘어져 있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혼여행 동안은 구질구질해지기 싫었다. 아쉬운 소리, 부탁, 돈 걱정 등 사람을 옹졸하게 만드는 일상의 빚들을 허니문 동안만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한 곳은 싱기타 그루메티 리저브즈라는 리조트였다. 세렝게티에서 사유지를 가진 유일한 리조트로 그 규모가 약 4억2800만평에 이른다. 세렝게티에서 가장 큰 리조트이며 서울시 보다도 넓다. 이 넓은 대지에는 숙박시설이 겨우 세 개다. 나머지는 땅은 모두 야생동물의 것이다. 세 리조트는 싱기타 사사콰, 싱기타 파루파루, 싱기타 사보라이다. 싱기타 사보라는 캠핑 형태의 숙박시설로 초원 한 가운데 텐트가 쳐져있어 야생동물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예를들면 텐트 앞의 침대에서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뜨면 얼룩말이 쳐다 본다거나, 텐트 앞에서 식사를 하다가 다마스만한 물소와 눈이 마주치는 일을 겪게 된다. 걱정하진 말자. 야생동물들은 먼저 치지 않으면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롯지인 파루파루, 1920년대의 중후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사사콰가 있었다. 우리가 예약할 당시 가격도 좀 더 캐주얼한 파루파루는 리모델링 기간이라 어쩔 수 없이 사사콰를 선택했다. 사사콰는 6개의 롯지로 이루어져 있어 최대 숙박 가능한 인원이 15명 내외에 정도에 불과하다. 그 거대한 리조트에 손님을 겨우 15명 정도만 받는다. 사사콰에 대한 리뷰 중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허니문을 보낸 곳이라는 글이 눈길을 끌었다.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헐리우드 셀럽이 신혼여행으로 택할 정도라면 그 우아한 품격은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부푼 가슴으로 신용 카드 두 개를 썼다. 12개월 할부로.


객실 예약은 싱기타 사사콰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되는데, 추천하지는 않는다. 공항에서 싱기타 사사콰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번거로우며 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시에도 불편하기 때문에 원하는 스케줄을 여행사에 전달하는 것이 편리하다. 공항 픽업, 차량 서비스 등 자잘한 교통 서비스는 모두 여행사를 통해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 신행준비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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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가?

인천공항에는 탄자니아 직행 노선이 없다. 한 번 경유로 가는 항공은 아랍에밀레이트 항공과 에티오피아 항공이다. 아랍에밀레이트 항공은 두바이를 경유해 탄자니아의 옛 수도 다르에스 살람에 도착한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아디스 아바바를 거쳐 킬리만자로로 들어간다. 경유를 감안하면 비행시간은 인천에서 파리 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렝게티는 우리 생각 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에티오피아 항공을 선택했다. 비행기에서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볼 수 있다는 소리에 주저없이 택했다. 어느 공항에서 내리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세렝게티 국립공원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데, 버스나 기차로 가기 도달하기 어려워 경비행기를 이용한다. 세렝게티를 비롯한 탄자니아의 소도시들에는 작은 경비행기 공항들이 있다. 관광객과 탄자니아 사람들은 KTX 타듯 경비행기를 타고 지역을 이동한다. 경비행기가 착륙하면 승객이 내리고 새로운 승객이 탑승한다. 그렇게 비행기가 버스처럼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기장과 부기장을 제외한 탑승 정원이 12명인데, 승객들은 줄었다가 늘어났다가 한다. 경비행기를 탈 때 유의할 점이 몇가지 있는데, 우선 1인당 수화물이 15kg이라는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게다가 수화물 칸 입구가 좁아 바퀴 네 개 달린 하드케이스 여행 가방은 경비행기에 실을 수 없다. 세렝게티를 방문할 때는 대형 보스턴백과 같은 구겨질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경비행기는 좁고 엄청나게 시끄럽다.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써야 그나마 잠들 수 있다. 그래도 20분 마다 착륙하니 잠에서 깊이 잠들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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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경비행기가 세렝게티 국립공원 상공에 들어서면 지상의 풍경이 달라진다. 지상에는 구름 모양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고, 구름을 따라 달리는 누 떼의 모습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평선을 이룬 초원의 모습에 그만 감탄사를 터뜨린다.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손을 꼭 잡는 것 뿐이다. 세렝게티의 공항은 활주로가 흙바닥이다. 붉은 흙바닥에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비행기가 착륙했다. 부기장이 고개를 돌려 사사콰에 온 것을 환경한다고 말했다. 경비행기 뒷문이 열리고, 우리가 내리자 숙소에서 마중나온 직원들이 우리를 큰 텐트로 이끌었다. 비행은 어땠냐고, 피곤하지 않으냐며 스팀타올을 내밀었고, 세면대와 마실 것을 준비했다며 텐트 안 음료 바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타올로 얼굴까지 닦고 나자 피터가 나타났다. 피터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11년차 레인져다. 그는 결혼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준비가 됐냐고 묻더니 이내 자신의 차량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사면이 개방된 4륜구동 차량이었다. 자외선 차단을 위해 천으로 만든 루프만 설치했을 뿐이다. 세렝게티의 모든 바람이 우리의 얼굴에 닿았다. 그것은 <동물의 왕국>을 보며 떠올렸던 짐승의 피 비린내나 썩어가는 사체의 고약한 냄새, 가축의 구린 냄새가 아니었다. 초원의 바람은 신선했다. 맑고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숙소로 이동했다.


싱기타 사사콰의 첫 인상은 코뿔소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중앙 테이블에는 금코를 가진 코뿔소 나무 조각이 놓여있었고, 코뿔소 뒤로 세렝게티 초원이 넓게 펼쳐졌다. 그건 싱기타 사사콰가 산 꼭대기에 위치해 초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경이로움을 넘어서 우리는 비현실적이라 느껴졌다. 호텔 매니저의 안내를 따라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음료와 함께 호텔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앞서 말한 레인저 피터는 허니문 기간 동안 우리만을 담당해줄 레이져이고, 다정한 인사와 함께 음료를 건내준 하미스는 우리의 전담 버틀러였다. 신혼여행 기간 동안 우리만의 레인저와 버틀러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고전영화속 주인공이 된 듯한 감상에 휩싸였다.


호텔은 올인클루시브로 운영되어 아침부터 저녁, 간식, 미니바 등 모든 서비스를 숙박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고풍스러운 바에서의 칵테일이나 싱글몰트위스키, 게임룸에서의 당구, 라이브러리 이용도 자유롭다. 허니문이라서, 초원 밤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서, 기린의 울음이 귓가에 울려서 취하지 않는다 하여도 걱정마라. 신혼부부 객실에는 매일 샴페인이 제공된다. 또 방안에는 위스키와 맥주, 와인 등이 항시 준비되어 있다. 크리스탈 디켄터 안에 든 위스키는 반드시 마셔봐야 한다. 눈웃음을 짓게 만드는 향이다.


동물들이 움직이지 않는 낮시간을 제외한 일출과 일몰 시간대에는 게임드라이브 즉 사파리 투어가 제공된다. 창밖으로 초원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양치를 하고, 옷을 입은 다음 로비에 이동하면 커피, 홍차, 주스 그리고 각종 케이터링이 제공된다. 이때 커피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볼일 보기 어려우니 이뇨작용있는 커피는 피하자.


매니저는 우리가 알러지 있는 음식이 있는지, 요구사항이 있는지 등을 섬세하게 조사했다. 이어서 키를 받고 허니문 객실 즉, 우리의 첫날밤을 보낼 곳에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그림, 가죽들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탄자니아는 과거 영국 식민지로 대영제국 고관들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이 많다. 침대와 같은 가구, 샹들리에, 책상, 펜과 종이, 배스, 테라스 등에서 영국 양식이 느껴진다. 객실 테라스에는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넓은 소파가 있었고, 두 개의 선베드와 두 개의 소파가 있었다. 그리고 마당에는 누드로 수영해도 무방한 우리만의 작은 인피니티 풀장이 있었다. 풀장에서 수영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원숭이들이 훔쳐 본다는 것 말고는 없다. 우리는 <라이온킹> OST를 틀어놓고, 수영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허니문의 황홀한 여유에 녹아들었다. 샴페인에서 흘러 넘친 거품 방울 하나하나가 카드값 만원씩 쌓이는 것 같은 착각도 잠시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건 허니문이고 일생에 단 한번 뿐인 호화로운 시간인데. 하늘은 푸르고 수영장 너머로는 세렝게티 초원이 펼쳐져있었다. 우리가 탐험할 곳, 대자연의 경이로운 품 안에서 우리 부부의 첫 번째 날이 시작됐다.


<주간동아> 2019.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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