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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하고 싶은 게임

무조건 위닝이지

by 조진혁
PES2021 (2).jpg



우리가 낭비할 수 있는 건 시간밖에 없음을 아들도 알게 될 거다. 스무 살 즈음 되면, 조숙하다면 그보다 더 일찍. 그걸 알면 쓸데없는 짓 안 하고 열심히 제 할 일을 할까? 글쎄다. 쓸데없는 짓 좀 하면 어때. 시간 좀 허투루 보내도, 젊음을 흥청망청 써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그랬어, 라고 아들과 플레이스테이션 앞에 앉아서 말할 거다. 내가 축구 게임 <위닝 일레븐>에 빠진 건 20대 후반이었다. 할 일은 많고 체력도 좋았던 사회 초년생 때. 야근 후에 플스방에서 축구 게임을 하다가 새벽에야 집에 들어가곤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인터뷰가 있어도, 마감 기간에도 플스방에 갔다. 게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겠나. 재밌으니까 했지. 그때는 백수 친구와 새벽에 게임하는 게 낙이었다. 지금은 못한다. 체력도 없고 집중력도 없고 무엇보다 재미없다.


재작년에 생일 선물로 축구 게임 <PES2021>을 선물받았다.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이 된 그 친구가 보내줬다. 그런데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서 <PES2021>을 내려받는 동안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대감도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말 늙은 것 같았거든. 게임에 흥미가 없는 아저씨는 진짜 아저씨니까. 하드디스크에 남아 있는 <PES2021>은 언젠가 아들이 자라면 함께 플레이할 거다. 십몇 년 뒤가 될 테니, 그때 가면 구닥다리 게임이라고 하겠지. 느닷없이 레트로 축구 게임이 유행해서 아들이 관심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이고.


어쨌든 <PES2021>는 대화하기 좋은 게임이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춘기 아들에게 그래 나는 아무것도 몰라. 근데 스루패스 좀 해봐, 라고 말하고 싶다.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다. 넘쳐나는 체력을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함께 게임하며 보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냥 나는 네 편임을 알려주고 싶다. 아들은 게임에 관심이 없을 수도, 축구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보여주고 싶다. 아빠도 일부러 새벽까지 게임하며 청춘을 낭비하던, 적의로 가득 찬 시절이 있었음을. 그러니 서럽고 화가 나도 언젠가는 나아진다는 것을. 마음껏 살아도 됨을 아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ARENA HOMME+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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