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Golden Age
우리의 상상이 정사각형 도트에 불과하던 시절, 그러니까 디지털 개념이 태동하던 70, 80년대에는 전위적인 콘셉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콘셉트니까 급진적일 수 있다지만, 당시 등장한 콘셉트들은 새로운 개념인 디지털을 자동차에 담았다는 점에서 황금기라 하겠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에서 움직이는 컴퓨터로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말이다. 30년이 넘은 지금 보면 80년대에 그린 콘셉트들이 유치해보이지만, 몇몇 차량들은 세련됨이 느껴진다.
<초전자 바이오맨>의 헬멧처럼 생긴 오르빗은 1986년 이탈리아 튜린 모터쇼에서 폭스바겐이 공개한 콘셉트 차량이다. 오르빗은 은색 해치백 형태로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등 모든 램프는 차체에 얇고 길게 박혔고, 짧고 가파른 보닛은 앞유리와 일직선을 이뤘다. 앞유리는 천정까지 이어지는데 정확히는 B필러까지 하나의 유리로 보인다. 측면까지 감싸는 곡면의 리어 윈도우도 신선하다. 실내는 더 급진적이다. 운전석부터 조수석까지 이어진 계기판은 거대한 스크린이며, 차량 상태를 알 수 있는 그래픽과 속도, 내비게이션 모니터 등 주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그래픽처럼 표현했다. 하지만 화면 전환이 안되고, 컴퓨터 그래픽을 흉내만 내다보니 계기판이 복잡해졌다. 오르빗의 이란성 쌍둥이인 마키모토도 있는데, 골프2 보다 조금 더 긴 차체에 6개의 시트가 장착됐다. 지붕이 없다는 점을 빼면 형태는 오르빗과 거의 동일하다. 헬멧 벗은 바이오맨 같달까.
80년대에는 은색 차체에 각진 선과 네모난 램프를 장착한 콘셉트가 퓨처리즘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영화 <백투더퓨처>로 잘 알려진 드로이안 DMC-12는 포르쉐 대항마로 등장한 아일랜드산 스포츠카이지만, 은색 차체와 각진 면들의 집합, 걸윙도어라는 점에서 80년대 퓨처리즘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이 콘셉트들의 또 다른 특집은 컴퓨터 그래픽을 실내에 차용한 것이다. 센터페시아에 모니터를 탑재하거나, 계기판에 아날로그 대신 디지털 속도계를 넣는 식이었다. 속도나 게이지 등의 표시는 작은 액정 화면으로 표현했다. 액정 화면에 자동차 모양의 그림을 새기기도 했고, 다양한 기능을 자잘한 버튼들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다. 전위적인 디자인은 스포츠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기의 이동을 우아한 곡선으로 표현하던 스포츠카들이 직선을 사용했다. 1970년대 등장한 람보르기니 쿤타치가 대표격이다. 사각 면이 두드러진 쿤타치는 도트로 표현하기 쉬운 디자인이라 도스 게임에 자주 등장했다. 페라리 역시 우아한 바디에 네모난 도트를 더 했다. 동그랗게 치켜뜬 헤드램프 대신 각직 헤드램프를 반듯하게 접어 바디에 넣은 288GTO과 F40 역시 레이싱 게임의 단골 차량이었다.
미래를 전위적으로 표현한 것은 자동차만은 아니다. 영화, TV, 만화 등 대다수의 매체는 급진적인 미래를 그려야만 했다. 상상의 기저에 기대와 불안 혼재했기 때문이다. 80년대 첨단기술을 발판으로 급부상한 경제대국 일본은 서방세계에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고, 세계 경제는 유가에 휘둘렸으며 정치는 냉전에 휩싸였다. 이러한 소식이 컬러TV에서 자동화 기계, 컴퓨터 프로그래밍 광고 이후 뉴스에서 다뤄졌다. 사람들에게 21세기는 막연한 동시에 불안했고, 세기말은 디스토피아의 다른 말이었다. <블레이드 러너>, <아키라> 등 인간성에 대한 물음을 제시한 SF작품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시기에 인기를 끈 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이보그의 위협이 <로보캅>처럼 당장 우리동네 도로에 나타날 것 같았지만 컴퓨터가 그릴 수 있는 미래는 겨우 조악한 도트 그래픽에 불과했다. 영화와 달리 당시 컴퓨터는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했다. 그럼에도 불안한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했기에 그 역할을 자동차 산업이 채우려 했을 수도 있다. 스크린 속의 미래가 아닌 눈앞에 실재하는 미래, 만지고 움직일 수 있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80년대 콘셉트들은 전위적이어야만 했다.
모터트렌드 20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