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됐다
친구가 단톡방에 청약 사실을 알렸다. 잘 됐다는 소리부터, 너는 이제부터 은행의 노예다, 거기 학군은 어떠냐, 조망은 좋냐 등 별 이야기를 다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축하해야 하는데,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데 서러웠다. 오~ 한 마디 남기고 말았다. 그 친구는 최근 둘째를 낳았다. 첫 째는 아들이고, 둘째는 딸이니 남매 가진 아빠가 됐다. 그는 아이가 둘이라 청약에 당첨된 것 같다며, 너네도 둘씩 낳으라는 농담을 했다. 낳기 싫어서 안 낳는 건 아니고, 낳으면 안될까봐. 첫째와 아내에게 미안해질까봐. 둘째를 가질 수가 없다. 이미 집을 산 친구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친구가 조금 부러운 눈치였고, 과천이라서 부럽다는 소리도 나왔다. 아직 집을 못 산 나와 나 같은 애들은 말이 없었다.
사실 하고 싶은 말보다 묻고 싶은 말이 더 많다. 취직하면 잘 살게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왜 그럴까? 직장 생활 10년차인데 뭔가 잘 못된 결정을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아껴쓰고 저축하면, 모아놓은 티끌에 은행 빚을 더 하면 집 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취직할 때만 해도 그런줄 알았다. 직장 생활 7년차 즈음에는 투자해야 할 것만 같았다. 티끌은 아무리 모아도 티끌이니까. 투자해서 돈을 부풀리면 더 빨리 집사고, 좋은 차사고 서럽지 않을 줄 알았다. 그때 코인 붐이 일었다. 도박 좋아하는 놈들은 코인을 샀고, 오르면 좋아하고, 떨어지는 화를 냈다. 결국엔 차익을 봤으니 짜증 정도에 그쳤지만. 코인은 투기고, 도박이었다. 잠 안자고, 스트레스 받고, 좋은 거 안 먹고, 남들 놀 때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코인을 살 수 없었다. 수익이 나면 좋지만 한 푼도 잃을 수 없었다. 월급만 바라보는 상황도 서러운데, 돈까지 잃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코인으로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딴 친구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잠들기 전이면 생각났다. 그때 코인을 샀었더라면. 지금쯤 내 집을 장만했을까?
부동산은 잡히게 되어있다
유튜버가 그랬다. 부동산 유튜버인 그는 출산율 감소 지표를 근거로 부동산 하락론을 설명했다.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그의 말이 맞다. 인구가 준다는 것은 집 살 사람이 줄어든다는 소리니까. 소비자가 없으면, 판매가 안되면 가격은 떨어진다. 아파트라고 ‘사장님이 미쳤어요’, ‘눈물의 재고정리’ 꼴 나지 않으란 법 없다. 부동산 규제도 한 몫한다고 했다. 집을 두 채 사는 게 어렵고,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세금과 주택담도대출 한도도 최대 40% 제한은 집값을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그럴 듯 해 보였으니까. 곧이어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고, 집값은 올랐다. 거짓말처럼 아파트 가격이 치솟았다. 전세 만기는 가까워져가는데, 나도 이젠 내 집을 가져야 하는데 점찍어두었던 아파트의 가격은 한 달세 1억이 올랐다. 신용대출을 받아도 1억을 매꿀 수는 없었다. 산술적으로 그랬다.
아내는 괜찮아질거라고 했지만 부동산 앱을 보면 괜찮지가 않았다. 마음이 그랬다. 부동산 유튜브 채널을 검색했던 내 자신이 한심했고, 결혼 당시 집값이 급등히 전세를 선택한 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아니 그건 정말 잘못된 판단이었다. 우리는 서울 외곽의 84㎡의 아파트에 산다. 조망이 좋아서 들어온 집이다. 집주인은 해외에 거주한다. 전세계약서를 쓸 당시에는 당분간 국내에 들어올 계획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2년만 살고, 내집 마련해서 나갈 계획이었으니 그가 들어오던 말던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전세 계약일을 앞둔 지난 9월에는 초조했다. 부동산 상승장에 합류하지 못 했고, 결국 흐름을 놓쳤다. 지나간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더 깊은 하류로 향할 뿐이다. 우리는 강변을 따라 하류에 왔다. 이제는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깊고 넓은 강이다. 선택은 강둑에 서서 아니 전세를 유지하며 흘러가는 부동산 시장을 바라만 보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했다. 강물이 불어나면, 아니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려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세입자가 유리해?
임대차 3법에 따르면 기존 2년이었던 전세계약을 2+2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에 전세를 재계약하면 우리는 4년은 더 전세로 이 집에 머물 수 있다. 결혼 당시에는 2년도 채 살지 않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이제는 떠날 수 없다. 갈 곳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가고 싶은 곳의 집값이 치솟아서 입주가 불가능하다. 우리의 고향은 서울이고, 직장도 서울이며, 가족도 친구도 모두 서울에 살지만 우리는 서울에 살 자격이 안된다. 30대 중반 맞벌이 부부의 자산으로는 서울입성이 불가하다. 정 서울에 머물고 싶다면 입대차 3법의 혜택(?)을 받아 전세로 머물러야 한다. 해외 거주하는 집주인도 한국 부동산 상황은 잘 알고 있었다. 전월세상한제에 의하면 임대료 상승폭이 연 5%로 제한된다. 우리는 지난 10월 초기 전세값의 5% 인상분을 더 내고 재계약했다. 아주 운좋게도 우리는 전세계약을 4년 더 연장했지만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듯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로 바뀌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월세 전환을 4년 남겨두고 있다. 이후 겨울이 오면서 전세대란이 일어났고, 여전히 전세는 매매보다 귀한 매물이 되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서울 부동산은 오늘이 가장 싸다’고들 말한다. 이제는 서울이 아니라 전국으로 넓혀서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아파트 값은 오늘이 가장 저렴하다. 서울이 투기제한지역으로 묶이자 내집 마련이 ‘급한’ 삼사십대들은 경기도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 접근성이 높은 지역은 이미 값이 올랐고, 그 보다 조금 더 멀리 가면 투기제한지역이 아닌 곳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전세로 살 바에야 조금 멀어도 내 집을 갖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신호탄은 저금리였다. 한도가 상향된 신용대출이 그들의 숨구멍을 틔어줬다. 주택담보 대출은 기본이고, 맞벌이 부부는 각자 신용대출을 받았다. 보험이나 연금 등을 담보 삼아 대출을 받았고, 그 외 가능한 대출이 있다면 모조리 모았다.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이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깟 이자야 한 달 동안 오른 집값에 비하면 티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래도 될까. 이렇게 집을 사는 게 맞을까? 정말 부동산은 오르기만 하는 걸까. 집값이 떨어져도 이자는 내야할텐데. 차마 영혼을 끄집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코스피 3000포인트는 꿈이 아니다
단톡방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낚시글이지만 혹시나 하는 바람에 열어봤다. 내용은 2021년에는 부동산 보다 주식 투자가 낫다는 글이었다. 2020년 주식시장은 상승세였다. 똘똘한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동학개미들은 주변에도 있었다. 단톡방의 누군가는 일찌감치 테슬라에 투자했고, 미국장을 보느라 새벽까지 뜯눈으로 지세다 결국엔 웃었다. 그를 보고 니콜라에 투자한 친구는 웃다 울었고. 지금도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나는 BTS를 믿었다. 빌보드에서 1위하고, 세계를 휘어잡았으니까. 더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샀다. 상장되자마자 폭락한 주식이었는데, 애국심이 통했던 걸까. 매수하자 주가가 조금 올랐다. 잠이 안왔고 초조했다. 떨어질까봐 당장 팔았고, 한 참 뒤에 다시 떨어지고 올라가길 반복했다. 동학개미들은 과거 개미들과는 다르다. 작전주에 놀아나지 않고, 가치있는 기업을 찾아 투자한다.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고 멀리보고 투자한다. 부동산 보다 가치가 빨리 오를 거라는 기대, 떨어지지 않을 주가를 찾아서 매수한다. 언론에는 그렇게 묘사되는데, 그런 동학개미가 누군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개미들은 그냥 개미였나보다. 돈이 급해서, 내 집 마련에 조금이나마 보템이 되고자 크게는 이천만원 작게는 이백만원으로 주식을 한다. 단타 매매는 유일한 생존기술이고, 많이 버는 것 보다 빨리 버는 게 중요하다. 사실 많이 벌고 싶지만, 오래 기다려야 한다.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말한다. 기업의 비전을 보라고, 실제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좋아하는 기업에 투자하면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 말한다. 교과서적인 답변이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다. 단지 우리 같은 개미들은 두려울 뿐이다. 부가 대물림되면 빈곤도 대물림된다. 둘째를 낳은 친구는 빈곤의 대물림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멀어진 것은 아니다.
여성동아 20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