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시승기
1974년의 무하마드 알리는 링 위에 자라난 들풀 같았다. 상체를 살랑살랑 흔들며 조 프레이저의 난타를 정확히 피하고, 공격을 흡수했으며, 지치지도 않았다. 알리는 우아하게 움직이고, 날카롭게 카운터를 날렸다. 유연함이 강함을 제압한다. 이것은 무협 영화에서 정설로 다뤄진 진리고, 경지에 오른 고수만이 발휘할 수 있는 극의라고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이하 타이칸 CT)의 운전대를 잡고 아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통화중이었기에 반론 대신 눈썹을 몇 번 치켜세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반응만 보였다. 허나 아내는 간과한 게 있었으니, 나의 ‘유강제압론’은 타이칸 CT의 탁월한 균형감각을 설명하기 위한 서문에 불과했다는 것.
본문은 이렇다. 타이칸 CT는 기존 타이칸 보다 지상고가 20mm 높다. 그레블 모드를 선택하면 최대 30mm까지 높아진다. 후면도 높다. 왜건처럼 높아 전체 실루엣이 볼륨감 있다. 왜건 형태 덕분에 트렁크 공간은 446L를 확보했다.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212L까지 늘어난다. 왜건치고 넓은 건 아니지만 기존 타이칸 보다는 확실히 넓다. 인테리어는 타이칸과 동일하다. 선명한 디스플레이가 계기반, 센터패시아, 조수석에 3분할 되어 디지털 감성이 짙다. 작은 기어 스틱과 스티어링휠의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터치 방식이다. 대시보드 중앙에 아날로그 시계를 설치해 포르쉐만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제됐다. 우아함은 2열로 이어진다. 지붕을 높여 헤드룸이 확보됐고, 바닥을 낮춰 레그룸을 마련했다. 전기차는 흔히 바닥에 배터리가 배치하는데, 타이칸 CT는 2열 바닥에 들어갈 배터리만 쏙 빼서 2열 시트 아래로 옮겨 바닥을 깊이 팔 수 있었다. 긴 다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다리가 짧은 나로서는 감흥이 없었다. 대신 실내의 가장 큰 감동은 파노라마 고정식 유리 루프였다. 루프렉 없는 통유리가 2열 좌석 너머로 이어졌다. 시트를 눕혀 하늘을 보면, 컨버터블 부럽지 않다. 비가 내리면 운치는 배가 된다. 실제 2열 시트를 접으면 성인 둘은 편히 누울 공간이 확보되니 차박 기능도 참 잘 났다.
달리기는? 포르쉐는 포르쉐다. 타이칸 CT는 여느 포르쉐가 그렇듯 고속주행시 노면과 밀착된 안정감을 보인다. 차선을 급하게 바꿔도 그렇다.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지 않고 반듯하게 옆으로 이동한다. 조향감각도 민첩하고 예리하다. 2.3톤에 육박하는 차체가 내가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이동한다. 주행 감각은 완전한 포르쉐 스포츠카다. 이 정도 감각이라면 서스펜션이 딱딱해야 하는데, 타이칸 CT의 승차감은 세단만치 편안하다. 살짝 단단하다는 표현도 과하다. 요철의 불쾌한 충격만 흡수하고, 노면의 굴곡은 점자처럼 읽어낸다. 그러니 오래 타도 피로가 덜 쌓인다. 아내가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이어갈 수 있는 것도 세단처럼 편안한 승차감 때문일 것이다. 고속주행시 편안한 주행 품질과 역동적인 성능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구현하는 건 포르쉐의 특별한 서스펜션 기술인 PDCC에 있다. PDCC는 실시간으로 주행 상황에 맞춰 차체를 안정화시킨다. 우아하게 움직이다가 달릴 때는 민첩하게 움직인다. 무하마드 알리처럼.
수도권을 벗어나니 길은 뚫렸고, 배터리는 넉넉하고, 기분도 상쾌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꿨다. 서스펜션이 단단해지고, 조향감각이 묵직하게 변했다. 이때다 싶어 가속 페달에 힘껏 밟으니 순식간에 시속 가속이 이뤄졌다. 조금의 충격도, 불쾌감도 없이 비단 위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중력 가속도의 세계로 진입했다. 아내는 전화기를 내리고 ‘자기 화났어?’ 물었고, 나는 어깨를 살랑살랑 흔들며 코너를 돌아나갔다. 이것이 내 마지막 코너가 되리라 직감하며.
-노블레스 매거진 202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