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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진혁 Mar 20. 2024

지하에서 행복으로

고양이 인간의 집

서울에서 반지하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야기를 남긴다. 반지하에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사람의 반지하 생활기다.



연신내 골목 깊은 곳에 캣맘이 살았다. 나는 캣맘을 좋아했고, 퇴근 후 연신내에 갔다. 골목길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 시장가 대로변에 차를 세워야 했다. 그녀의 집에 가는 건 작은 모험이었는데, 먼저 좌판을 정리하는 상인들의 무신경한 움직임과 유모차를 밀며 시장 통로를 이동하는 노인들을 피해 살금살금 이동해야 했다. 시장을 빠져나가면 시멘트 계단을 내려갔다. 깨진 보도블록으로 이뤄진 골목에는 노란 가로등이 켜져 눈이 축복처럼 내릴 것 같았다. 거기에는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있거나, 소변 보는 취객이 있었다. 냄새로 기억되는 길이다. 양옥과 연립 사이로 솟은 길 끝에 그녀가 살았다. 손잡이도 계단도 없어 눈이 얼기 전에 가야 하는, 차 한 대 겨우 지날 좁고 가파른 언덕을 조심히 올랐다. 불편은 위험으로 이어진다. 집 안 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나오는 이상한 빌라들을 지나면 더 높은 지대 깊은 지하에 캣맘의 자취방이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여럿 키웠다. 서너 마리였던 것 같은데, 헤어질 때는 더 많았던 것도 같고.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거나 숨었고, 입구에서부터 고양이 대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퀴퀴하고 눅눅하기도 한, 아무리 씻고 닦아도 벗겨지지 않을 땀이 몸을 덮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창을 닫고 살았다. 환기라도 하려고 들면 고양이들이 도망간다며 창을 못 열게 했다. 아니면 고양이가 나가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 열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액체로 만들어져 아무리 좁은 곳도 통과한다. 한 번은 열대야를 못 참고 창문을 열었다가 고양이 한 마리가 탈출해 새벽에 골목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고양이는 달아나지도 못한 채 창문 밖에 웅크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진 못하지만 하늘은 볼 수 있었다. 창문 바로 앞에서 고개를 들면 담벼락과 건물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은 그게 전부였다.


그녀의 자취방은 환기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훌륭했다.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주방이 구분된 곳으로, 혼자 살기에는 넉넉한 규모였다. 이사 들어갈 때는 집 안을 채울 가구를 산다는 건 꿈만 같았다. 우리가 가진 건 몇 푼의 현금뿐이라 침대도 없는 바닥에서 섹스를 했고, 곰돌이 푸 스티커가 붙은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섹스를 하면서 창밖으로 누가 보는 건 아닌지, 침대보다 커튼을 먼저 사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커튼을 먼저 설치하긴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집 앞에서 새끼 고양이를 구출했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먹이를 주고, 용품을 사면서 고양이를 키웠다. 그녀는 더 많은 고양이를 구출했다. 고양이가 늘수록 집은 복잡해졌다. 작은 방은 옷의 무덤이 되었고. 거실은 고양이들의 화장실로, 주방은 녹슨 식기들이 쌓인 고물상으로, 안방은 수감실로 변했다. 그녀의 집에선 까치발로 걸었다. 바닥에 앉아 식사라도 하려면 쓰레기들을 한쪽으로 미뤄야 했다.


우리가 헤어질 당시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자동차 밑에 고양이 사료를 놓고 다녔다.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였고, 애달프게 우는 새끼 고양이는 집으로 데려왔다. 고양이 사진을 찍고, 그녀의 집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고양이에 밀려 차였다는 얘기 같은데, 맞다. 그녀는 나보다 길고양이들을 택했다. 그건 그녀가 반쯤 고양이화되었기 때문이다. 속을 알 수 없는 고양이 같은 그녀와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것, 캣맘이 된 이유도 알 수 없고, 알아도 말할 권리는 내게 없다. 다만 서울 후미진 골목 제각기 모습이 다르지만 모두 고양이가 산다는 것. 그리고 반지하에서 이따금씩 고양이를 닮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 아레나 옴므 플러스, 2022년 10월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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