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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Nov 01. 2022

섬세권

구도심 생활자 포토로그

귀항의 시선은 뒤편이다. 두고 온 섬이 못내 아쉽기 때문이다.


역세권, 숲세권, 맥세권, 스세권. 부동산 홍보를 위해 만든 말일 테지만, 주변에 뭐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은 주거지 선택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슬세권'(슬리퍼 차림으로 여가·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권역)도 도시생활자에겐 솔깃한 제안이다. 내 삶의 반경 안에 즐길 것이 많다는 것이고 언제든 마음 내키면 그 세력 안으로 당당히 걸어가 위세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인천 원도심에 사는 나는 '섬세권'을 누린다. 집에서 연안부두여객터미널까지 차로 15분. 언제든 인천 앞바다 섬으로 쉽게 떠난다. 덕적도까지 집에서 1시간30분 거리니 서울 강남보다도 가깝다. 이작, 자월, 승봉 그리고 멀리 연평, 백령, 대청, 소청까지. 한적하고 평화로운 섬은 나의 안식처이자 (마음의)부동산이 되어준다. 그렇다. 부동의 섬. 자연 그대로의 산과 바다가 바로 내 배후에 있다.


섬세권? 이건 또 뭐 쓸데없는 신조어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야말로 인천 중구·동구·미추홀구 원도심 생활자가 누릴 수 있는 크나큰 혜택이라 나는 생각한다. 슬리퍼를 신고 카페나 편의점, 쇼핑몰에 들락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권세. 내 삶의 배경에 섬이라는 다른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은 해변을 산책하다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한다거나 갯벌을 바라보다 '갯멍'의 경지에 이르는 정신고양의 순간을 체험하는 일이다. 내 명의의 땅이 하나 없어도 기분 좋은, 고요한 부동산의 위력 혹은 위엄이랄까.


사실 인천에 살면 누구나 섬세권 아래 있다. 때 묻지 않은, 보물 같은 섬이 가까운 데다 뱃값까지 무려 80%나 할인되니 말이다. 해양도시 인천에 살아도 이를 잘 모른다. 인천 원도심으로 이사와 살며 내가 발견한 최고의 권세, 섬세권. 인천 시민 누구나 가슴에 섬을 하나씩 품고 살면 어떨까 드리는 말이다. 이처럼 인천 구도심에 살며 느끼는 즐거운 일들이 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인천일보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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