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소리
이것은 헌책방 소리의 기록이라기보다 헌책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정확히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사람, 어느 노부부에 대한 이야기이자 나의 미래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 헌책방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나는 나의 미래를 맞닥뜨렸다. 그 순간이 너무 놀랍고 숨 막혀 나는 미래를 본 사람처럼, 이것을 기록한다.
아내의 고향, 전주에서도 나는 나의 미래를 한 차례 지본 적이 있다. 비가 오던 날, 콩나물국밥을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때였다. '여기 아직도 있네'라며 아내가 책방을 가리켰다. 나는 어딜 가나 헌책방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산을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노부부가 티브이를 보며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티브이를 보고 할머니는 커피를 타고 계셨는데, 보통 그렇듯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혼이 나고 계셨다. 책을 보는 척하며 나는 그들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할머니는 커피를 타주며 구박을 하고,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티브이로 삼시세끼를 보고 있다. 밖에는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고 작게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와 옆에서 아내가 책 넘기는 소리가 묻혀 들린다. 책방에서의 소리는 종이 질감 때문인지 더 부드럽게 들린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에 믹스 커피 향이... 순간 나는 이것이 나의 미래였으면 하고 소망했다.
그 미래를 배다리 헌책방에서 다시 맞닥뜨린 것이다. 헌책방에서 오래된 음반을 들려준다고 하여 녹음을 하러 간 곳에서 나는 나와 내 아내의 미래를 한차례 다시 만났다. 주인어른이 수동 축음기를 힘차게 돌린다. 도넛판에서는 <사랑에 울고 돈에 울고>의 하이라이트 '홍도야 우지 마라'가 흘러나온다. 조용하고 수줍은 노부부는 멀찌감치 서서 숨을 죽이고 나의 행위를 지켜본다. 빙그레 웃는 두 부분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레코드를 녹음하는 영상을 찍다 말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된 레코드는 희미하게 뒤로 돌아가고, 타임머신을 타고 나는 어느새 미래에 가 있다. 먼지 냄새 가득한 헌책방. 소리를 흡수하는 수많은 책들. 시간이 냄새와 소리로 머문 곳.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의 모습. 나는 내 미래의 얼굴을 발견했다. 내가 그 공간에, 그 소리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