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어 줘서 고맙습니다
그녀의 말은 평소와 같이 상냥하고, 다정하고, 외로웠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흘려 들었을 텐데 여느 때와 다른 말투에 놀라 잠시 말에 뜸이 들었다.
... 제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당황해 말을 내뱉고 나니 평소와 다른 말투의 정체가 느껴졌다.
정중함. 잘 모르거나 거리감 있는 타인에게 하는 정중하고 예의를 지킨 말투였다.
반찬은 데친 미역과 무친 톳나물, 멸치볶음, 희게 씻어 볶은 묵은지 그리고 고등어자반이 주였다. 관리사무소에서 주었다는 김장김치와 조미김도 꺼내놓았지만 먹다 보니 꽈리고추 멸치볶음에만 자꾸 손이 갔다.
멸치볶음 맛있네.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맛있어? 그러게 이번에는 내가 먹어봐도 맛이 있네.
꽈리고추 먼저 간장에 볶다가, 아 다시마 우린 물도 같이 넣고 다시마육수 말고 그냥 우린 물.
꽈리고추에 간이 배이게 다진 마늘도 넣고 볶다가 나중에 멸치 넣고 조금만 더 조리면 돼.
물엿이랑 꿀 조금 넣고. 나중에 깨.
꽈리고추 멸치볶음에 육수를 넣어 조려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다시마 육수와 그냥 우린 물의 차이에 대해서는 묻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매번 주로 건강에 대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교회로 그녀를 모셔다 드렸다.
라디오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흘러나왔다. 영화 <헤어진 결심>에서 들은 이후로는 이 음악만 들으면 자동적으로 영화가 떠오른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비극의 감상. 제발 그녀가 바다에 잠기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이 발밑부터 다시 차올랐다.
같이 밥 먹어 줘서 고맙습니다.
떠올려보니 엄마의 이 말은 아들이 아닌 타인, 어떤 인간에 대한 정중한 감사의 인사였던 것 같다. 밥을 먹는 일의 고단함. 혼자 밥을 먹는 외로움. 누군가 나와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지극한 감사의 인사였으리라. 같이 밥 먹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혼자 사는 노인의 정중한 인사.
... 제가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