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 Aug 18. 2019

매미는 소리를 이기려 운다

원도심 음향 일기

아내와 다투는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흘려듣거나 건성으로 듣거나, 듣기 싫어하는 태도에 아내는 분노한다. 아내도 처음부터 분노로 나를 응징한 것은 아니었다. 서운한 마음이 속상한 마음이 되었고 상한 마음은 화가 되었다.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툭툭 내뱉는 나의 못된 말버릇이 매번 도화선이 되기 일쑤다. 


결혼 초, 화나는 일이 있으면 아내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어떤 때는 며칠이나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나는 평소 말이 없는 편이지만, 이런 침묵은 다른 종류의 고역이었다. 대부분 다툼의 원인이 나에게 있기에 나는 아내의 닫힌 입을 열기 위해 애를 썼다. 아내는 아직도 악관절이란 골치병을 앓고 있는데 입을 앙다문 이 시절에 생긴 병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녹음을 하다가 깨달을 사실이 있다. 어느 잡지에서 우리 집과 우리 일을 취재하러 왔는데, 집 앞에서 녹음하는 시늉을 하다가 발견했다. 매미에 관한 이야기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오랜 시간 유충 시절을 지내다 땅 위로 올라와 고작 여름 한 달 성충 시기를 보내고 죽는다. 땅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 한여름 실컷 울다 생을 마감한다.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소리다. 암컷은 울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사는 매미는 보통 참매미와 말매미인데 참매미는 "맴~맴~매앰"하고 울고 말매미는 "쯔~, 치~"하고 운다. 말매미는 아열대 기후에 사는 매미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고온화로 참매미보다 시끄러운 말매미가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매미에 대해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영흥도 소사나무 숲 소리 녹음


'매미는 소리를 이기려 더 크게 운다.'


매미에 대해 추가되어야 할 이야기이다. 그렇다. 매미는 주위에서 소리가 크게 나면 더 세차게 운다. 가만있다가도 주의에 소리가 나면 울기 시작한다. 전철이 지나가면 운다. 소방차가 사이렌을 켜고 지나면 더 크게 운다. 멀리 하늘에서 비행기가 지나가도 이에 질세라 더 세차게 운다. 다른 소리보다 더 크게 운다. 나는 녹음을 하며 맞는 이야기인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집 앞에 전철이 주기적으로 지나가는데, 멀리부터 전철 소음이 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매미는 이에 질세라 더 크게 운다. 올여름 내가 깨달은 유일한 일이다.  매미는 소리로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인간이 만든 문화와 사람의 소리를 녹음한다. 이렇게 온통 사방에 귀를 기울이고 가치 있는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기록한다. 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것이다. 얌전하던 아내는 때로 마음이 상해 매미처럼 소리를 퍼붓는다. 크게 울면 더 크게 우는 이유가 있다. 


'아내는 나를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우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허무에 빠진 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