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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13. 2019

강화 소창 공장 소리

ASMR 자장가

어느 날 휴대폰 사진을 꺼내보다가 영상이 꽤 많이 저장되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 내가 먹은 음식이거나 먹고 싶은 것들이다. 그 사이에 생경한 영상들이 튀어나왔다. 취재를 하며 찍어둔 것들이었다.      


나는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일을 한다. 소리는 사람의 말이기도 하고 음악이기도 하며 그야말로 소리 자체이기도 하다. 나는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한다. 라디오 하면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들려주거나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프로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날 나는 이런 일들에 흥미를 잃었다.      


밖으로 나가서 세상의 소리를 녹음하기로 했다. 어떤 소리들이 의미가 있을까. 우선 인천의 섬들을 시작으로 자연의 소리를 녹음했다. 그렇게 몇 년 시간이 지나니 우리 주변의 소리로 방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소리를 방송해달라는 곳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중에 의미 있는 소리를 찾기 위해 많이 돌아다녔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란 소리 자체의 완성도이기도 하고 때로는 공간이거나 공간의 역사, 어떨 땐 공간 속 사람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소리를 녹음하다 보면 장관인 곳이 많다. 그 장면이 아까워서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어 놓은 곳들이 있다. 강화 소창 공장의 풍경도 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다.  이렇게 파편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영상들을 모을 곳이 필요했는데 유튜브가 답이 되어주었다. 휴대전화에 방치되어 있는 영상 기록은 유튜브로 짬짬이 옮겨지고 있다.     


 강화 소창 공장(연순직물)


그러던 어느 날 조회수도 별로 없는 내 유튜브 계정에 댓글이 달렸다. 강화 소창 공장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수 있도록 8시간 이상으로 늘여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 소리를 듣고 주무신다고요? 시끄러워서 잠을 더 못 자지 않을까요?'


나는 댓글을 단 이의 농담이거나 아니면 혹시 음원이 필요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다시 댓글이 달렸다. 


'전 이 소리 너무 좋아합니다.  오래전 섬유 공장에서 야간 일 할 때 공장장 몰래 창고 섬유 더미에서 기계소리 들으며 꿀 잠잤던 기억이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너무 포근한 느낌입니다. 지금 이 소리 긴 게 없어서 빗소리, 드라이기, 환풍기, 기차 소리 등을 들으며 잠을 자는데 이 소리가 제일 잠 이 잘 올 거 같네요. 귀찮으시겠지만 가능하시면 8시간 이상으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음에 의심을 품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어떤 작은 소리라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출발점이지 않았던가. 사실 소리 자체가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던가. 소리가 머문 공간 그리고 안의 사람들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았던가. 8시간 분량이라 파일 용량이 커서 몇 번이나 다운되는 컴퓨터를 부둥켜안고 등록을 했다.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분을 위한 ASMR 꿀잠 자장가. 


https://www.youtube.com/watch?v=a-ViLnwvbpM



소창은 목화솜으로 실을 만들고 이 실을 직물로 짠 옷감이다. 소창을 짜는 직물 공장이 강화에 많았다. 현재는 대여섯 개만 남았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소창 짜는 일도 기계화가 되어서 소창 짜는 소리는 이 직물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이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공장이 있는 마을 입구에만 들어서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멀리 들린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귀마개를 하고 일 한다. 우리가 녹음하러 갔던 강화 연순직물 공장에서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이들이 있다니. 그 소리를 듣고 몰래 잠을 잤던 이들. 몇 년 동안 소리를 녹음하러 다녔던 내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소리란 무엇이었나. 왜 들려주고 싶었던가. 무엇이 소리에 의미를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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