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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ug 04. 2020

고양이 CCTV

CCTV는 불안을 잠재운다

"안 되겠어. CCTV 달자."


구도심 주택으로 이사를 오니 모든 게 낯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용기가 따로 있다는 것과 그것도 버리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아무 때나 밖에 내다 놓아 봐야 가져가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쓰레기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엔 왜 우리 집 쓰레기만 안 가져가는지 의아해했다. 보다 못한 옆집 통장님이 쓰레기는 목요일과 일요일에만 가져가고 분리수거는 화요일, 음식물은 월, 수, 금에만 가져간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그 후에도 요일이 헷갈려 쓰레기를 내다 놓았다 다시 들여오기를 몇 차례 해야 했다. 


그보다 낯선 건 저녁 풍경이었다. 낮에도 사람이 별로 없긴 했지만, 해가 지고 나면 동네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주로 어르신들이 살고 계셔서인지 밤이 되면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나 멀리 1호선 기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야간 연습을 하는 집 앞 초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의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그 소리도 듣기 어려워졌다.


이러다 보니 밤길이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구도심 가로등은 왜 그렇게 희미하게 띄엄띄엄 있는지 아니면 불 밝힌 상가들이 없어서인지 밤길은 늘 어두컴컴했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걱정하지 않지만 이사 온 뒤로 한동안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길이 나도 편치는 않았다. 아내의 불안은 당연했다. 이사 온 뒤 며칠 후 아내는 집에 CCTV를 설치하자고 했다. 설치비를 알아보니 카메라 개당 25만 원은 들어야 했다. 설치비를 제외한 금액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돈이 또 나가야 했다.  '이걸 직접 해봐?'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듯했다.   


"불안해서 그러는 거면 모형 CCTV도 있다는데?"

"아니야. 진짜로 달아야 해."

"우리 집에 들어와 봐야 들고 갈 것도 없는데. 이거 때문에 우리 부잣집처럼 보이는 거 아냐?"


나에게 CCTV는 부잣집의 전유물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는 CCTV는 고사하고 집안에도 TV가 없는 집이 많았다. CCTV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학교 근처 부잣집 동네를 지나다 보면 높은 저택의 담장 모퉁이에는 늘 하얀색 CCTV가 있었다. 그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밖에다 TV를 달 정도면 그 안은 어떻단 말인가. 그래서인지 마당이라고 할 것도 없는 우리 집에 CCTV라니 왠지 어색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는 귀중품이라고 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결혼 예물이란 걸 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붙이나 보석도 없고 하다못해 값나가는 시계나 장신구도 없다. 아내가 모으는 5백 원짜리 동전 저금통과 그나마 노트북 정도가 들고 갈만한 것이려나. CCTV를 뚫고 들어온 도둑이 '이럴 거면 CCTV 왜 달았나' 난감해할 표정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하지만 도둑이 들까 봐 CCTV를 설치하자고 한 것은 아니니 일단 업체에 설치를 맡겼다. 1층과 2층 출입구 세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100만 원 정도의 금액이 들었다. CCTV 설치로 아내의 불안은 잦아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그게 뭐 필요할까' 생각했던 나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식탐이와 새끼


"이거 와서 봐봐. 새끼 때문에 그랬던 거구나."


아내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CCTV 영상을 휴대폰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화면에는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현관 앞에 우리가 놓아준 사료였다. 동네에는 길고양들이 많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아마 대여섯 마리가 밥을 먹는 듯했다. 어떤 고양이는 현관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날도 있었다. 그중에 한 녀석은 우리를 보면 밥 달라고 시위를 하다가도 막상 다가가면 '하악질'을 해댔다. 밥을 주는데 하악질까지 당해야 하나. 애교는 아니더라도 좀 상냥하게 굴면 좋을 텐데, 아내는 서운해했다. 그런데 CCTV를 보니 '하악질'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새끼 때문이었다. 나풀거리는 발걸음의 어린 새끼가 어미 뒤에 숨어 있었다. 


고양이 CCTV 보기. 아내의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곁을 주지 않는 길고양이들을 그나마 CCTV로 볼 수 있었다. 식탐이, 식탐이 새끼, 까망이, 점박이, 큰 점박이, 작은 점박이, 노랑이, 양아치. 그 밖에도 TV에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등장했다. 우리 집이 맛집으로 소문이 났던지 날이 갈수록 고양이들은 늘어났다. 하지만 고양이 손님이 많아지게 되자 다른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다.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CCTV 설치는 업체에 맡기시죠. 옆에서 도와주느라 일하는 걸 봤는데, 셀프로 할 일이 아닙니다. 돈 아끼려다 더 큰일 치르게 됩니다. 자재비와 인건비를 별도로 책정하는 곳이 있으니 맡기자고요. 


2. 집에서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것은 여러모로 고민하고 시작하길 권합니다. 계속 고양이들 밥을 책임질 수 없다면 시작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하네요. 고양이들이 늘 먹던 곳에서 먹이를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밥을 주다가 그만두게 되면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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