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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25. 2020

백만 번의 집들이

초인종은 누르지 마세요

토요일 오후, 아내와 비빔면으로 점심을 때우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네, 누구세요?"

"여기 집을 좀 보러 왔는데요."

"네?"

"00 건축사무실에서 리모델링하셨죠? 저희도 거기서 상담했는데, 이 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아…네."

"혹시 괜찮으시면 안에 들어가는 건 좀 그러니까, 옥상이라도 좀 볼 수 있을까요?"

"네엣?"


안 그래도 아까부터 누군가 우리 집을 계속 염탐하는 것 같다고 아내가 그러더니 초인종을 누른 이들은 밖에서 서성이던 중년의 부부였다. 이들은 담장이 없는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집을 리모델링 한 00 건축사사무소에서 최근에 상담을 했고 아직 결정을 못한 상황인데, 우리 집을 보고 최종 판단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주소를 안 가르쳐 주는 걸 겨우 사정사정해서 서울에서 인천까지 집을 찾아왔다고 했다.


"아… 그런데 지금 저희가 비빔면을 먹고 있어서요."

"리모델링하는데 얼마 들었어요?"

"네? 아… 그게 지금 이렇게 골목에서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주말 오후에 이렇게 남의 집에 불쑥 찾아와서 다짜고짜 집안으로 쳐들어올 것 같은 이런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디에 집을 맡겨야 할지 확신이 안 서는 이분들의 마음은 이해가 됐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어떤 마음으로 초인종까지 눌렀을까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빈틈을 보였다가는 이분들이 아예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와 비빔면도 같이 먹자고 할 기세였다. 안에서는 지금 면이 붇고 있는데, 이들을 어서 정중히 돌려보내야 했다.


"저희 집은 거기서 끝까지 성심성의껏 잘해줬으니까 걱정 마시고 맡기셔도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지금 점심을 먹어야 해서요. 죄송해요."


현관문을 닫고 들어오니 놀란 표정으로 아내가 묻는다.


"뭔 일 이래?"

"그러게 별일이 다 있네."

"요즘 집들이가 뜸해지나 했더니 이제 모르는 사람까지 집들이를 오려고 하네."


인테리어의 완성은 초록초록 식물들.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백만 번은 한 것 같다. 양가 부모님을 시작으로 친구들과 선후배 동료들 그리고 동네사람들(아, 그렇지. 이사 오고 뜻하지 않게 동네 분들과 집들이를 했다.)까지 우리 집을 구경 왔다. 구도심의 작은 주택을 리모델링했다고 하니 궁금한 건 당연했다. 우리 집에 구경 온 이들은 또 서로서로 아는 사람에게 소문을 퍼트리고 그 사람이 또 우리 집을 찾았으며 심지어 동네 서점에서 <우리 집을 소개합니다> 같은 집 소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단체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우리도 이것저것 예쁜 것들로 손님들을 맞았다. 아내는 신혼 초 빛났던 요리 솜씨를 발휘해서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을 척척 해냈다.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집에서 술 먹고 이야기를 하는 걸 우리도 즐겼기 때문에 처음에는 집들이가 즐거웠다. 그러던 것이 계속되다 보니 주말이면 으레 손님 맞는 일로 피곤이 쌓여갔다. 집에서 하던 요리는 시켜먹게 되고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서 아예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서는 차나 맥주 정도를 먹는 걸로 집들이를 간소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오래된 구도심에는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가게들이 많아서 집들이를 여러 코스로 짤 수 있다는 것이다. A코스는 인천 구도심답게 중식과 술. B코스는 요즘 뜨고 있는 개항로 맛집과 카페. C코스는 인천의 노포와 술.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해 나는 이들을 인천 구도심 맛의 세계로 안내했다. 우리가 구도심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걸어서 갈만한 곳에 이런 맛있는 노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인기 만점은 A 코스였다.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집들이는 간략히. 집들이하다가 거덜 납니다. 손님도 맞는 사람도 부담되긴 마찬가지. 하지만 빈 손으로 가기도 맨입으로 앉아서 이야기하기도 뭣하니, 손님들이 먹을 걸 사 오는 것도 좋아요.

 

2. 웬만한 리모델링 업체라면 포트폴리오가 있어요. 그걸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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