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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24. 2020

영혼까지 끌어모아 리모델링

원도심 주택 구매기 5

"지하실은 청소하고 페인트만 칠하는 걸로 마무리할게요."

"아… 네. 그래야겠죠?"

"바닥엔 에폭시를 칠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어렵지 않으니까 나중에 직접 하세요. 이것도 사람 쓰면 못해도 백만 원은 줘야 해요."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을 매매하며 가장 신나는 일은 옥상과 지하실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2층 슬라브 벽돌구조인 우리 집은 같은 구조와 크기의 반지하가 있었다. "지하실에서 뭘 할까. 서점을 할까. 아니야, 커피 로스팅하는 작업실로 할까. 아니야, 연기 많이 나서 안 돼. 로스팅 기계는 또 얼만데. 아니야, 그럼 팟캐스트 녹음실로 꾸며볼까. 그거 괜찮네. 아니 그러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지 뭐. 하하하."


지하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지하실이 있는 게 이렇게 좋을 수 없었다. 요즘 아파트 1층 세대엔 테라스도 있고 복층구조로 지하 공간도 있다고 하던데 뭐 부러울 게 하나 없다. 집을 샀더니 지하실을 사은품으로 하나 더 껴준 격이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2층 집을 리모델링을 하려다 보니 지하 공간까지 손 볼 여력이 안됐다. 궁리 끝에 오랫동안 쓰지 않던 지하실은 청소만 하고 페인트만 칠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지하실은 고사하고 1층과 2층을 고치는 데도, 당초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당초 우리 계획은 이랬다.


2층에 한 층을 더 증축해서 2,3층은 우리가 살고, 1층은 세를 주고 그걸로 대출받은 걸 일부 갚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건축사 말이 증축은 용적률이 얼마 나오질 않아 효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 1, 2층을 모두 우리가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1층을 거실로 쓰고 2층을 방으로 쓸지, 아니면 그 반대로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리고 발코니는 어떻게 할지, 세탁실은 어떻게 할지 구조를 어떻게 하느냐로 우리는, 아니 아내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나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지하실을 뭘로 활용할까 그 생각뿐이었다.


아내는 내가 얘기를 듣는 척 하지만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 챈다. 처음에는 아내의 말이 귀에 들어오다가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딴생각을 하게 된다.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영혼이 탈출했다가 영락없이 혼줄이 나기도 여러 번. 한 번은 내가 너무 무심하다며 운 적도 있었다.


"아니, 내가 무심한 건 아니고…. 그런데 자기도 마음대로 하면 그게 더 좋지 않아?"


아내는 리모델링을 하며 세 번을 울었다. 내가 무심한 이유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초 우리가 생각한 예산은 최대 6천만 원이었다. 대출로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건축사와의 인터뷰(https://brunch.co.kr/@radiovirus/29)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걸 설계도에 그려나가기 전에 그랬다는 얘기다. 꿈만 같던 상담과 그 꿈을 통해 허공에 세운 우리 집이 설계도 위에 내려앉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 예산으로는 창호를 전혀 교체를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충격이었다.


"네? 그러면 저 알루미늄 새시 창문을 그냥 써야 한다고요?"

"네. 어쩔 수 없어요. 창호가 가장 돈이 많이 들어요."

"창문 다 교체하려면 얼마가 드는데요?"

"문짝들까지 해서 2천만 원은 들 겁니다."

"헉."


평소 악관절로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고생이던 아내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게 보였다. 나도 놀랐지만 아내의 턱이 다시 안 다물어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이중, 삼중 창이지만 안 깨지는 것도 아닌 유리창이 그렇게 돈이 많이 든다니. '저 쌍팔년도 누리끼리한 알루미늄 새시를 그냥 둔다고?' 안 될 말이었다.


일단 리모델링 비용은 8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퇴직금을 미리 '땡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매입한 집은 방이 많은 옛날 집 구조라 벽을 허물지 않고서는 거실이 거실이 아니라는 아내의 하소연이었다. 우리끼리 아무리 도면을 이렇게 그려보고 저렇게 그려보아도 결국 벽이 모든 걸 막아 버렸다. 방벽을 털고 H빔을 넣는 대수선 공사를 해야 그나마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이 문제로 아내가 하루하루 늙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수심으로 앙다문 아내의 턱이 이제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집 사고 병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집을 부숴버리고 새로 지을 수 없나요?"

"네. 그게 설계하는 저희도 편해요. 그런데 그러면 주차장도 만들어야 하고 건폐율도 떨어져서 지금 같은 15평이 아니라 10평도 안 될 거예요."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더 까다로운 공사인 줄 그때 알았다. 공사는 집 뼈대만 남기고 거의 모든 걸 교체하는 수준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우리가 오래 살 거라는 말에 건축사는 무엇보다 단열에 예산을 많이 책정했다. 게다가 우리는 계속 낡은 아파트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대면형 싱크대, 발코니 폴딩 도어 같이 누가 봐도 '새 집' 같은 그런 인테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오래 살 집이기에 적당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구조의 집이 되려면 최종 1억 원의 돈이 리모델링 비용으로 들어가야 했다. 협소 주택 리모델링 공사비는 결코 협소하지 않았다.


도면은 인내와 아픔으로 현실이 된다. 물론 돈도!


리모델링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어차피 오래 살 거면 제대로 공사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질도 리모델링하는 거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독립적이고 아늑한 집', 결혼 후 네 번의 이사 만에 겨우 마련한 구도심의 작은 주택인데, 이대로 대충 할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최면과 '딸라 빚'이라도 지겠다는 결의로 돈을 끌어모아 공사 대금을 치렀다.


"지하실은 청소하고 페인트만 칠하는 걸로 마무리할게요."

"아… 네. 그래야겠죠? 살면서 고치죠. 뭐."


쳐다만 봐도 웃음이 나던 지하실은 '저걸 어쩌나.' 쳐다만 봐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이면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지하실과 옥상만 빼고 전체 집을 리모델링했다. 차마 거기까지 손댈 수는 없었다. 옥상에도 테라스를 만들고 뭔가 근사한 걸 하고 싶었지만 옥상 방수와 난간만 교체하는 걸로 공사를 끝냈다.


집을 매입하며 아내에게 지하실과 옥상은 '내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내 일'이 되었다. 지하실은 현재 '계속' 셀프 공사 중이다. 바닥에 에폭시를 깔고 한쪽 방을 팟캐스트 녹음실로 꾸미고 있다. 원도심 주택으로 이사 온 1년 만에 나는 옛날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의 '순돌이 아버지'가 되었다. 잘하지 못해도 웬만한 건 알아서 고치고 만들고 산다. 아니 살아야 한다. 순돌이 아버지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내가 집안 수리 문제로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한다. 그 전화를 내가 받는다는 것이다. 집주인이자 관리소장이며 골목길 대외협력부장 그게 '순돌이 아버지'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곧 출동하겠습니다."


 


구도심 주택살이 봉봉 TIP


1. 리모델링 비용은 대부분 처음 생각보다 많이 듭니다.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변수가 생기게 돼요. 이를테면 시공업체가 돈을 받고 도망가거나 일정이 늦어져서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도 부지기 수입니다.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딸라 빚'을 지면 안 되겠죠?


2. 리모델링 비용을 아끼려면 본인이 인부로 뛰어들어 인건비를 절약하면 됩니다. 잡일을 하며 어떻게 시공하는지 감시하는 역할도 겸할 수 있겠죠?


3. 셀프 시공도 비용을 줄이는 답입니다. 하지만 잘 못하겠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 같은 '똥손'들은 오히려 더 큰돈 들어갈 일을 만듭니다.

 

4. 현장 소장님과 친하게 지내세요. 세상사 인간적으로 친해지면 인간적인 부탁을 외면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저희 경우는 처음부터 시공사 측에서 우리와 친해지는 걸 차단했어요. 제가 구도심 맛집으로 열심히 '꼬드겨' 봤지만, 집이 완공되기 전까지 건축주와는 절대 밥을 안 먹는다는 그들의 원칙을 놀랍게도 지켜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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