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소주택 리모델링
우리가 밖에서 야반도주 전문가가 되어가는 사이 집은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주말에 공사 현장에 들러 소장님의 설명을 듣다 보면 '아, 이게 진짜 우리 집이구나.' 새삼 실감이 났다. 평생 세입자만 하다 보니 내 집을 보고 있어도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묘한 기분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장 소장님의 열띤 설명에도 "아, 네. 잘해주세요.” 마치 남의 집 이야기하듯 나는 밑도 끝도 없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도 건축주로서 아는 척은 해야겠기에 우리가 선택한 동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 동네 오래된 건축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래된 동네 오래된 맛집은 또 얼마나 많은가 같이 아무 쓸모없는 동네 자랑만 하고 있었다.
무사안일, 만사태평인 나와는 달리 아내는 다 계획이 있었다. 건축사들과의 면담 뒤로 아내는 건축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우리 집을 완성해갔다. 아내는 우선 건축사 측에서 요구한 '우리가 바라는 집의 이미지'와 색감 등을 담은 꽤 많은 양의 사진을 건넸다. 우리가 산책을 하며 마음에 들었던 집 사진도 있었고 리모델링 관련 온라인 카페와 책 등에서 모은 이미지들도 있었다. 그리고는 리모델링하는 건축주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냈는데 이를테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디에 힘을 주고 어디를 뺄 것인가 같은 완급 조절을 이어갔다. 그리고 철거, 조적, 미장, 단열, 각종 설치 등 각 공정별로 어떤 자재를 어떤 색으로 하느냐 같이 너무나 어려운 질문지에도 알아서 제3의 대안을 찾아오는 엘리트 학생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모범생에게도 고민은 있었으니 아내를 끝내 괴롭힌 문제는 1층과 2층 구조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1층이 거실이냐 2층이 거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내는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러다가 아내가 '나 건축사 자격증 땄어.'라고 말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아내는 생애최초 우리 집을 설계하고 가꾸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리모델링을 하며 아내가 가장 원했던 것은 대면형 주방과 2층 테라스 그리고 햇볕이었다. 독립적이고 아늑한 집! 햇볕이 잘 드는 집! 주방이 예쁜 집! 이게 우리가 원하는 도심 속 단독주택이었다. 내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허공에 날려 보냈다면 아내는 그걸 도면 위로 착륙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정보들을 끌어모았다. 창문은 어떤 창을 어떤 크기로, 문은 여닫이인가 슬라이딩인가, 바닥은 타일인가 강마루인가, 싱크대는 원목인가 대리석인가, 벽은 벽지인가 페인트인가. 생각만 해도 숨 막히는 선택지를 모두 펼쳐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가끔 나를 그 선택의 미로 속에 던져놓고 시험에 빠뜨렸는데, 그 미로를 헤쳐나가기 답안을 내는 대신 나는 "자기가 좋은 걸로 해. 나는 당신이 좋은 게 좋아." 마치 생색을 내듯 아내가 쌓아 올린 미로를 흐트러뜨리며 도망치곤 했다.
그래도 아내는 꿋꿋하게 집을 지어 나갔다. 아마도 아내가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았다면 세상 신축보다 어렵다는 리모델링 작업은 미로 속에 갇혔을 것이다. 아무리 뜻과 의도가 좋다한들 일이란 게 결국 예산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누군가의 노력은 가끔 그 한도를 돌파하기도 하는 법이다. '아내 공적서'를 만들어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만 '그때는 하나도 도와주지 않더니 왜 이제 와서 이러냐.'라고 혼날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수많은 아내의 공적 중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자면, 2층 계단 옆 공간을 통째로 책장으로 만든 것이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책과 음반들은 이제 제자리를 찾게 되었고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공적은 이전에 살던 분들이 사용했던 큰 나무문을 재활용한 것이다. 아내가 요청한 걸 시공사에서 보기 좋게 슬라이딩 도어로 제 멋을 살려냈다. 이 나무문은 실용도도 높고 2층 인테리어의 포인트가 되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예산 문제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아니, 아내는 잃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애를 썼다. 최근에 다시 그때 메일들을 들춰보다가 건축사들에게 보낸 아내의 메일을 보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그때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집이란 공간은 저희 삶이 담아지는 공간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가 아니라 점점 돈 이야기만 남아 참 서글픕니다.
집을 짓고 만들어가는 분들의 생각도 같을 것만 같아 요즘 마음이 참 안 좋아요.
필요한 일이지만, 참 피하고 싶은 부분이겠다 싶어 지고요.
'저희는 이런 사람이니, 저희에게 맞는 공간을 마음껏 지어주세요.'
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축주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나중에도 집을 보면서, 소장님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이 만들어낸 결과물, 이렇게 생각해야 할 텐데
'이건 얼마짜리, 이건 얼마짜리' 이렇게 말이 나오면 어쩌나, 갑자기 울컥하네요.
12월 1일. 엄동설한에 우리는 드디어 입주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제 이걸로 끝일 줄 알았던 공사와 이사는 우리를 한번 더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