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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 Jul 20. 2023

청바지 가랑이가 터진 날

어느 날 내 책 - 린다 브렌트,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

    청바지 가랑이가 터졌다. 몇 년 입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온종일 갇혀 있었다. 집에 가는 길이 문제다. 그래도 운전해 집에 갈 거란 건 안심이다. 엄마도 말씀하셨다. “참, 겁 많았는데, 운전 배운 건 잘한 일이야.” 살찌고 몸 버리는 지름길,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 지구 온난화, 환경파괴, 과소비 등등 양심에 걸리는 게 많긴 하지만, 운전은 내게 여러 면으로 도움이 된다. 시댁에서 사는 내게 유일한 사적 공간이고, 어디 멀리 가거나 무거운 걸 실을 때, 여기저기 바쁘게 오가야 할 때, 엄마가 오실 때, 엄마가 보고 싶어 갈 때, 그리고 여행 갈 때, 누구 도움도 필요 없이 자유롭다. 심리적으로도 차는 나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울타리이며 내가 움직여 갈 수 있는 지상 최대 가능성을 보장한다. 오늘만 해도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말이다.      

    “차, 차주분 것이네요.” 

    “네, 제 차예요. 보험도 제가 내구요.”     

    좌회전만 잘해 두 블록만 가면 우리 집인데, 늘 지나다니는 곳에서 빨간 내 차를 흰 차 한 대가 뒤에서 들이받았다. 열 시 반이 넘은 늦은 시간, 좌회전 차선은 연말 공사가 한창이었고 직진 차선 푸른 신호에 멀리 앞에서 수신호로 좌회전하라고 해서 따른 것이 원인이었다. 엇갈린 신호에 나는 천천히 움직였고 직진 신호를 보고 온 터라 반대편 차량을 확인해야 해서 더욱 조심했다. 이런 정신없는 통에 있는지도 몰랐던 뒤차는 휘두르는 수신호만 보고 그대로 돌다가 내 차를 받아버렸다. 내가 갑자기 섰기 때문이라며 뒤차를 타고 있던 여자는 우는소리를 했다(더 큰 차를 타고 있으면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나와 보지도 않는다). 블랙박스를 보니 충격으로 내 차는 앞으로 밀렸고 뒤차 제동거리엔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 시간에 무슨 바쁜 일 있다고 그랬을까 싶어 옆자리를 보니 중학생 정도 되는 딸아이가 가방을 앞에 메고 타고 있다. 

    곧 집에 가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풀려 있었는데 ‘쿵’ 소리에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한 긴장 속이다.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면서, 차 소유주이고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나는 무기력한 어린아이가 돼 버렸다. 제일 먼저 남편에게 전화했다. 이때쯤이면 집에 거의 다 왔겠지 싶었는데 뜻밖에 술자리 중이란다. 술도 잘 못 먹는 사람이 하필 이때…. 차문을 열고 나가 서니, 아, 바지가 찢어졌지, 몇 발자국 떼다,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 허리에 둘렀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같이 뒤차 운전자 남편이 와서는 여자를 잠깐 나무란다. 여자는 또 우는 소리. 공사장에서 수신호 하던 사람은 자기는 할 일 했다며 얼른 사진 찍고 차 빼란다. 112에 신고했더니 경찰이 왔다. 교통경찰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걱정되었던지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차 빼지 말고 경찰과 보험회사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그 바람에 보험회사 직원은 위치 파악을 못해 늦었다며 투덜댄다(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번개처럼 달려와 옆에 섰는데 보니 아들내미다(아빠가 전화를). 경찰은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음주 측정을 한다. 술 마실 시간도 없는 사람처럼 안 보이나 싶다가, 그래도 술 마실 사람은 있는 인간으로 보는구나 싶어 속으로 웃었다. 사진을 찍고 차 이동시키고 이거 저거 묻고 블랙박스 확인하고 하던 보험사 직원은 그런다, 아들이 듬직하시겠다고, 아들에게 대고는, 엄마가 밥도 차려주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불러내니 엄마 참 무능하다고. 위로 차원의 말인 것 같긴 한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번 보고 말 사람. ‘나’를 완벽하게 밀어내는 말. 그는 회사원이다. 굳이 감정 소모, 시간 소모하지 않겠다는 의례적인 태도. 하지만 나는 카톡으로 보내온 고객만족도 조사엔 그에 대해 ‘매우 만족’으로 평가했다. 생각해 보니 나를 아들 혼자 두고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는 워킹맘으로 알았나 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놀랬을 운전자 딸아이가 걸려, 자기들도 대인 둘을 내 보험으로 걸겠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다. 수신호 엉망으로 준 사람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겠기에. 아이고, 렌터카라고 시커먼 LPG차를 가져다준다(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사건 하나에 담당자가 여럿 붙었다. 나는 혼자서, 서로를 알지 못하는 열 명 정도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오는 전화를 받았다. 각각 각자의 일만, 각자의 말만 했다. 내가 기계도 아닌데, 법정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정해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로봇처럼 일하는 걸 보면 당신들 일자리도 곧 없어지겠네. 차를 다 고치고 나니 내 편 보험회사가 전화해 온다. 상대방에서 우리 보험으로 대인 둘을 걸었는데 내가 병원에 안 가고 대인 보상을 안 받으면 상대편도 100% 자기들 과실로 해서 대물 보상을 해준다고 한다고. 상대편 보험회사 전화를 받고 알았다, 내 편이라던 보험회사는 결국 자기 회사 편을 들고 있던 것인걸. 자기 회사가 돈 쓰지 않게 막은 셈이다. 내내 마음에 걸리던 그 아이와 엄마가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진통제 먹고 버틴 요 며칠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허탈하다. 그래서 사고를 낸 그이의 남편은 가장의 위신을 세웠을까.     

    “모르는 소리 마, 누나.” 그가 대답했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게 될 거야. 절대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나도 지지 않고, 우리가 더 나이 들고 강해지면 머지않아 우리 일을 할 수 있을 거고, 그럼 돈을 모아 자유를 살 수 있을 거라고 우겼다. 윌리엄은 말이 쉽지,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단정했다. 게다가 자유를 돈 주고 살 생각도 없다고 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날마다 입씨름을 벌였다.
(『린다 브렌트』, 21쪽)     

    ‘나는 노예로 태어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해리엇 제이콥스의『린다 브렌트,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을 읽고 있었다. 흑인 노예 린다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느끼도록 가르쳤다고 한다(그렇지, 노예는 인간이 아닌 거다). 린다는 가족들과 함께 어머니 옆에 묻힌 아버지의 초라한 무덤을 찾았고 그 앞에서 자유에 대하여 동생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그 속에 나도 끼어 생각해 본다. 린다 얘기처럼 노예가 일하고 돈을 모아 자유를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책엔 린다 남동생이 쓴 글도 부록으로 붙어 있다. 그에 의하면, ‘법이란 인간의 의지’다. ‘자유는 인간에게 그들이 마시는 공기’와 같아서 ‘이를 갈취한다면, 이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를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누군가 자유롭지 않다면 그는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자유를 사지 못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자유를 빼앗는 게 나쁜 거다. 그래서 좋은 주인을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자유인이 된 린다는 고마운 마음에 그 주인을 위해 다시 일하면서도 자유를 스스로 얻을 수 없었음을 안타까워했다.     

    ‘린다 브렌트’는 글을 쓴 헤리엇 제이콥스의 가명이다. 나는 메이슨 커리가 쓴 『예술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다. 1852년 가까스로 자유인이 된 제이콥스는 생계를 위해 일해야 했다. 다섯 아이들을 돌보면서 짬을 내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 『린다 브렌트,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이다. 과거가 너무나 끔찍해 그것을 불러낸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어도 노예제도 철폐라는 대의를 위해 의무감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는 ‘간간이 집안일에서 한 시간 정도 뺄 수 있을 때마다’ 기록을 해 4년 후 1857년 글을 완성했다. 어렵게 출판되었어도 남북전쟁 발발로 글은 빛을 보지 못했다. 번역자의 설명을 보면, 오랜 세월 노예 여성이 직접 쓴 실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쓴 소설로 오해받기도 하다가 1981년이 되어서야 편집자와 주고받은 편지문과 입증자료가 발굴돼 제대로 알려졌다고 한다. 헤리엇 제이콥스가 자서전을 쓰도록 독려한 에이미 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친구, 짬을 내서 몇 자 적어요.’ ‘갑자기 류마티스가 도져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아직 윌리스 부인에게는 내가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아서 부인은 내가 쓴 글을 단 한 줄도 못 봤어요’ ‘작은 아이와, 큰 아이들을 돌보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처리하다 보면 생각하거나 뭔가 쓸 시간이 거의 없어요.’ 같은 말들이 씌어있다. 이런 말들을 읽고 있자니 왠지 남 이야기 같지 않다. 해리엇 제이콥스에게 자유를 주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윌리스 부인이 우리 시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결혼하고 이십여 년 동안 늘 짬을 내야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할 수 있었고 주부로서 아이 핑계, 집안일 핑계를 늘 달고 살았다. 해리엇 제이콥스는 이어서 말한다. ‘그렇지만 비록 허술하긴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하긴 하지만요.’ ‘내 초라한 책은 겨우 고치를 틀고 앉은 유충 상태예요. 물론 나비로까지 만들 자신은 없지만, 초라한 벌레들 사이에 끼어 다만 조금이라도 살금살금 기어갈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거예요.’ 그렇게 저 멀리 먼 곳에 한 ‘노예’의 이야기가 내게로 와 일상과 겹쳐 펼쳐졌다.      

남부법은 ‘재산’인 노예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돈을 주인에게 빌려준 것은 순전히 주인의 명예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예 소유주가 노예에게 명예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있겠는가!
(『린다 브렌트』, 15쪽)     

    이런 시절을 리하르트 다비드 프레히트라는 독일 철학자는 그의 책 『의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는 상업 활동과 최소한의 조세 의무, 그리고 모욕과 절도, 폭력, 살해 같은 공공연한 범죄 외에는 모든 도덕이 개인적 사안이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들은 아내와 자식을 수시로 때렸고, 노예를 학대했으며, 농부와 노동자를 착취했고, 아동 섹스를 즐겼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경제력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미미했고, 출시된 상품은 한 줌밖에 되지 않았으며, 문맹률은 높았고, 대다수 사람의 주거지는 형편없었다. 게다가 굶주림은 수많은 빈자들의 일상적 동반자였고, 의료와 위생 상태는 참담했다. 때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에서 최초로 인간의 기본권, 즉 자유로운 백인 남자의 기본권을 선포한 시대이자, 1789년 프랑스 국민 의회가 마찬가지로 남자들에게만 국한된 만인의 인권과 시민권을 가결한 시기였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프레히트는 단서를 붙인다. ‘최소한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그렇지 않다’고. 이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는 하지만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는 어떨까? 2021년 여성가족부 보고서에 의하면 16.1%의 여성이 평생,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파트너로부터 신체적, 성적, 정서적, 경제적 폭력 및 통제 피해를 하나 이상 경험했다고 한다. 응답자들이 경험한 폭력 유형은 정서적 폭력이 61.9%로 가장 높았고, 신체적 폭력 52.5%, 성적 폭력 27.9%, 통제 21.8%, 경제적 폭력 10.5% 순이다. 보건복지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집계된 아동학대 신고 접수 건수는 총 53,932건으로 전년 대비 약 27.6% 크게 증가했다. TV프로그램「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소개된 ‘칠곡계모사건’처럼 제대로 신고접수 되지 않는 사례들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오늘날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적 성과 주체’로 ‘주인 없이 자유의지로 자기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노예’라고 하면서 이들을 ‘노동자-노예’라고 한다. ‘노예제라는 극단적 상황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늘 상황과 문제와 선택에 부딪히며 사는 모든 이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너무 평범해서 잊기 쉬운,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는 『린다 브렌트』 번역자의 말이 지금 여기 있는 내 마음에 날아와 콕하고 박힌다. 


    뒤차가 내 차 범퍼를 박을 때 약간 충격을 느끼긴 했어도 어디가 아프다 할 겨를이 없었다. 2주간 병원 치료는 기본이고 몸이 나을 때까지 대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들 했다. 누구는 무슨 검사도 했다더라, 지금 당장은 몰라도 내일 자고 일어나면 반드시 아플 것이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한 달 있다가도 후유증이 나타나는 일도 있더라,  사고 낸 사람한테 받는 것도 아니고 보험회사에서 처리하는 거니까 이참에 어디도 가봐라, 뭐가 이익이다…. 사고처리 하러 나온 보험회사 직원도 울 아들내미도 내가 “지금 당장은 아프지 않은 것 같은데….”하고 말하면 내 입을 막으려고 한다. 사고 운전자 남편은 내게 다가와 예의 있게 말했다. “어디 아프신 데는 없으신가요? 내일 심하게 아프시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사고를 내놓고도, 당한 너도 책임 있다면서 꾀병 부리지 말라고 이렇듯 먼저 엄포를 놓는데 블랙박스 영상도 있으니 끝까지 따지고 들면 사람들 말하는 대로 하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자본주의는 … 우리의 섬세한 의식에까지 침투해서 … 우리를 소비자로 만들어버린다. 우리는 가격을 고민하고 요금을 비교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타인의 희생으로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 끊임없이 가격을 비교하면서 저렴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사람에게 손해를 떠넘김으로써 이득을 본다 … 이것은 신뢰의 생성을 막는다. 사기꾼의 품성이 상을 받고, 성실함과 지조는 벌을 받는다 … 가격상의 이득은 능력보다는 요령에 따른 것으로 지속적인 불신과 불공정의 감정을 낳는다.       


    나는 화가 났다. 내게 달라붙은 십여 명 정도의 노동자-노예들, 나와 같은 처지 평범한 사람들에 대고 짜증을 냈다. 분노 아닌 나의 소심한 불평은 아무 소용이 없다. 며칠 진통제를 먹고 한 시간 거리를 걸었다. 내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닌데, 사고가 나기 전까지 솟던 내 운전에 대한 자부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렌터카에 오르기도 싫었다. 혼란한 감정에 힘들긴 했어도 병원에서 하는 검사로는 나오지도 않을 통증이었다. 그들 앞에서 설명할 수 없지만 발생하고 있는 무질서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때, 프레히트의 『의무란 무엇인가』의 한 구절이 흥분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내 윤리의 중심은 내 행동이나 내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기고, 어떤 사람으로 보고자 하느냐에 있다.    


    차 수리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내 편’을 강조하는 보험회사 직원은 내 결정을 기다렸다. 사고를 낸 당사자와 한마디도 해보지 못했다. 그 사람의 남편이란 사람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게 너무하다 싶어,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고 싶으면 하자고 했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내 편 보험회사 직원들은 어떡하든 회사가 돈을 쓰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하는 회사원들이다. 그들은 ‘내 편’이 아니고 ‘회사 편’이다. 사고를 낸 사람은 차가 자기 차도 아니고 보험도 자기가 든 게 아니다. 잘못은 자기가 했지만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자기가 키우는 개가 남의 집 아이를 물었다면 개가 아니라 그 개를 재산으로 소유한 주인이 책임을 지듯 말이다. 나는 운전하던 엄마와 그 옆에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아이를 걱정했지만, 그 또한 그 집 가장이 책임질 일이고 그렇게 현명하다면 운전자 보험도 있다는 걸 알겠지. ‘그들 편’ 보험회사 직원도 결국은 자기들 ‘회사 편’에서 일할 것이다. 어떻게 된 게 박기는 자기가 박아 놓고, 내 것보다 큰 자기 차가 더 부서져서, 거기다 뒤가 아니라 앞이라, 모르긴 몰라도 수리비가 더 나올 것이다. 내 기분 좀 나쁘다고 질질 끌다가 내 감정, 내 시간 소모가 너무 클 것 같았다. 가족들은 내 몸 걱정하기 바쁘지만, 이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럴 수 있는 건 바로 내가 내 차의 소유주이며 보험료를 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고를 낸 운전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내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상대편 대인 보상 담당자는 내가 대인 보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듣자 작게 웃었다. 모두 자기들 셈에 뿌듯해할 것만 같다. 아들은 지나는 말로 그랬다, 엄마는 ‘호갱’인 거냐고. 아, 진짜, 어깨도 오십견 후유증에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어쩐다?     

    린다가 ‘사랑할 대상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법의 보호 아래 가정을 지킬 수 있는 그대들’(86쪽)이라 한 대상에 나도 분명 속하리라. 지붕 아래 좁은 공간에서 안네 프랑크보다도 더 꼼짝하지 못하고 숨어 있던 린다가 나를 격려하며 말해준다, ‘모든 게 다 잘되고 … 무사할 거라고, 무조건 그렇게 믿기를 잘했다. 언제나 의심하는 것보다는 믿는 게 낫다’고(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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