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미래에 희망을 걸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윤지선 교수의 <미래에 부친 편지: 페미니즘 백래쉬에 맞서서>를 받아볼 즈음, 게임 업계에 큰 폭탄이 떨어졌다.
2023년 7월, 어느 게임의 남성 유저들이 여성 캐릭터 일러스트에 노출이 없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같은 기업의 여성 일러스트레이터가 표적이 되었다. 해당 직원은 과거에 여성 인권 운동 관련 게시물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몇 시간 만에 부당해고 당했다.
2016년 여성 창작자 페미니스트 사상검증을 기억한다면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7년 전부터 여성 창작자가 페미니즘을 옹호했다며 남성들이 기업에 항의하고 창작자들이 해고당하는 사건이 무더기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한국 남성들은 터무니 없는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편의점 포스터 손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를 희화화한다. 기업은 사과하라!’ ‘저출생의 원인은 페미니즘이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라!’ 기업과 정부는 근거가 합당한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고 머리를 조아렸다. 객관적인 증거와 논리를 갖추어도 여성이 겪는 폭력과 억압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과는 정반대다. 거대한 백래시를 타고 분노와 무력감이 여성들을 짓눌렀다. 어째서 남성의 말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이토록 크게 울려 퍼지는가!
이 책의 저자 윤지선 교수는 이 문제를 다각도에서 설명한다. 그는 논문 <관음충의 발생학(2019)>을 발표하며 철학계에서는 드물게 오늘날 한국의 여성 억압을 분석하였고, 흔히 사용되는 여성혐오 표현의 예시를 들었다는 이유로 표적이 되어 외부인 남성들이 대학 강의에 침입하는 등 남초 커뮤니티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이 사건을 두고 남초 커뮤니티를 대변하며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낸 언론, 심사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철회와 일정 기간 논문 기재 금지 처분을 내린 한국연구재단, 재판 진행에 문제가 없었음에도 개인정보를 원고에게 알린 법조계, 논문을 남성혐오를 근거로 주장하며 표 모으기를 시도한 정치계까지. 지식인 여성을 향한 사회의 공격을 전면으로 받아낸 윤지선 교수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이 사회가 남성들의 요구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용하는지 서술했다.
그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근 몇 년 간의 사건과 여성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백래시가 떠오르며 다소 울적해졌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을 검열하고 여성들의 연대를 가로막는 동안 안전과 평등을 향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는 얼마나 받아들여졌는가? 어제도 그제도 뉴스를 보면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최근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의 가해자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보복성 범죄 예고가 올라왔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여성의 생존이 위협받으니, 여성이자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참으로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가 보내는 응원과 주위의 여성들을 보면 마냥 체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을 펼쳐낸 윤지선 교수와 책 속에 담긴 사건을 하나하나 겪어내고 분노하고 연대하며 보름만에 68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모아낸 수많은 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용) …우리는 승리의 빛을 하나의 길이자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의 소유자들임을 잊지 말길 바라. 앞으로 우리에게 또 어떠한 지평의 고난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까마득한 불안과 두려움을 삼키지만 이 위기와 환란을 이겨낼 우리의 가치를 믿고 의연히 어두움을 헤쳐 나아가며 ‘새로운 페미니즘의 물결을 다시!’를 외쳐보자.
아마 앞으로도 여성 해방을 위한 페미니즘은 지속될 것이고 이를 방해하는 수많은 적이 있을 것이다. 남성 위주의 기업과 소비자 집단, 정치계, 언론... 어쩌면 이 사회가, 세상이 우리를 억압하고 짓누를 터. 그래도 다시 해 보는 것이다.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참지 않고 내뱉으며 전진하고 옆사람과 어깨동무한 채 소리치자.
여성 해방 만세! (인용)
_
insta/ twitter: @radsb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