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일본은 예로부터 자기에게 불리한 역사나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걸 자기한테 유리하게 바꾸려 해요. 그 방법으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온갖 사료를 다 모는 거예요. 그다음 모은 사료를 연구해 조금이라도 자기네가 유리하다 싶은 사료를 근거자료로 삼아 내보이지요. 그러면서 자기네가 옳다는 명분으로 내세우고요. 일제강점기 때 우리에게 강요한 ‘임나일본부설’이 그 좋은 본보기라 하겠어요. 그리고 오늘날 지도에다 ‘동해’와 ‘일본해’ 표기를 나란히 하자는 우리 주장에 대해 일본이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고,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일본만 그런 게 아니에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중국은 ‘동북공정’ 외 서북공정, 서남공정 등을 통해 다른 나라의 역사마저 자기네 역사로 뜯어고치고 있지요? 미국이나 러시아는 자기네 힘을 믿고서 이웃 나라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거나 위협하기를 일삼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이웃 나라의 횡포에 말려들지 않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당당히 잘 지키면서 그들과 대등한 관계를 잘 맺어나갈 수 있을까요?
생각 일곱)
오래된 영화입니다만,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군사 훈련을 받고 종군기자로 베트남 참전을 하게 된 주인공이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서 다른 해병 한 명을 취재하게 됩니다. 군인은 헬기에서 신나는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웃고 욕하며 민간인과 군인 구분 없이 움직이는 사람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합니다. 사람이 쓰러지는 데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자신이 베트남에서 죽인 사람과 물소 수를 자랑삼아 나열하며 자기 얘기를 기사로 써보라는 해병에게 주인공은 묻습니다.
「“어떻게 여자와 아이를 죽일 수 있지?”
“쉽지. 그것들은 느리니까. 하하하하, 전쟁이 원래 이런 거 아닌가? 하하하하!”」
영화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 감독, 1987
위 영화는 베트남 참전 용사를 다룬 영웅물이나 실감 나는 전쟁 장면 등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많은 미국 영화와는 다른 결을 가집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자유 수호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참전한 미국의 민낯을 담고 있거든요. 잔인하고 불편한 영화라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입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고등학생 정도면 주위 어른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위 장면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요, 관객의 시선에 세 사람이 들어옵니다. 한 사람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군인, 다른 한 사람은 이 상황을 관찰하고 인터뷰하는 주인공, 남은 한 사람은 주인공 옆에서 구토하는 또 다른 종군기자입니다. 화면 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 앵글 밖 헬기를 조종하는 군인이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겠네요. 학살하는 자, 이를 기록하는 자, 괴로워하는(무기력한) 자, 방관 또는 소극적으로 가담한 자, 이렇게 네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여기서 질문, 네 유형 가운데 여러분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적어도 학살하는 군인에 대해선 대부분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을까?’라며 진저리를 치지 않을까 싶네요. 이해나 공감 따위는커녕 현실에서 만날까 두려운 괴물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보통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만나면 분노 혹은 두려운 감정을 갖게 되잖아요.
이렇게 광기에 사로잡힌 이 군인과 자신을 분리하는 것만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이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진실 때문입니다. 바로 이들 가운데 누구도 이 군인을 막지 않는다는 거지요. 과연 우리가 이 현장에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전쟁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하고 의기양양하게 내뱉는 ‘괴물’의 질문에 먼저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을 안고 코 무덤 이야기를 해봅니다. 끔찍하고 사무치는 역사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는 전쟁 성과를 확인하고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코를 베어오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 코의 수가 즉, 목숨을 빼앗는 것이 곧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꼴이지요. ‘전쟁이 원래 그런 거’니까요.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고, 더 많이 죽일수록 훈장을 얻습니다. 나중에는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게 되지요. 앞서 보았던 해병처럼 그들이 더 ‘쉬운’ 상대일 테니까요. 코는 목숨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전리품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동물과 구별 짓는 인간 이성이 작동할 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해 가장 앞서 죄를 물어야 한다면 조선을 침략하고 군사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도록 명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겠지요. 이를 적극적으로 따른 지도자들과 전장에서 민간인을 죽인 군사들도 당시 지위와 가담한 정도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를 보통 전쟁 범죄자, 전범이라고 부릅니다.
도요토미는 우리로서는 무지막지한 전범이자 원수지만, 일본 일각에서는 미천한 신분에서 천하를 통일하고 최고 권력자가 된 유능한 정치인으로 영웅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태평양 전쟁에 책임이 있는 전범들 가운데 일부도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다른 전사자들과 함께 두어 제를 올린다지요. 심지어 지도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쟁의 피해국들을 화나게 하거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의 아들이 코 무덤에 비를 세우고 했다는 말이 오늘날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계속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너희 나라의 운수가 그렇게 된 것이다.’ 지난 글에서 힘(力)이라는 한자의 어원을 살피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게 힘이라고 했던 제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국시대에 적군의 목을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녔다는 무사들이나 코를 베어 가져간 왜군, 『풀 메탈 자켓』에서 묘사한 잔인한 군인. 이러한 괴물들을 만들어 낸 전범들은 유달리 잔인하고 살육을 즐기는 돌연변이 같은 사람일까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괴물 같은 돌연변이는 어쩌다 있는 특별한 경우잖아요.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괴물이 아니니까요. 아주 운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사람들이 벌이는 일에 내가 휘말릴 경우는 없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크고 작은 전쟁에 시달려왔습니다. 어느 특정한 시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란 거지요.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그건 돌연변이가 아닌 거잖아요.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은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변수가 아니라 상수일 수 있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전쟁이란 극단의 상황 대신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란 단어로 살짝 바꾸어 본다면 사태는 더 심각해지겠지요.
「피고가 대량 학살의 조직체에서 기꺼이 움직인 하나의 도구가 되었던 것은 단지 불운이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래도 피고가 대량 학살 지시를 수행했고, 따라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습니다. 정치는 탁아소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 복종과 지지는 동일합니다.
…… 중략 ……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사악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김선욱 옮김, 한길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량 학살에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 과정을 보고 쓴 책입니다. 작가가 이 책에서 사용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지요. 이 말을 사용한 맥락을 설명하면 유대인 학살에 적극 가담한 책임자로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에 대해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괴물’일 거라고 사람들은 짐작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본 결과, 그는 평범한 사람만큼의 ‘바람직함’을 갖추고 있었다는 거지요. 그가 맡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임무를 뺀다면 어쩌면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유능한 직장 동료였을지 모른다는 거죠. 실제로 그는 법정에서 상급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겠어! 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어. 난 그냥 남들을 따라 했던 거야.”
…… 중략 ……
“나는 법을 따랐을 뿐이야.” 그는 자신을 정당화할 서류 더미들을 책상에서 꺼내며 분명하게 말했어요.
…… 중략 ……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의 ‘말’이 없었던 거죠? 미리 준비된 서류의 언어 말고 당신의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거죠? 당신 정말 소름 끼치게 진부하네요!”」
『한나 아렌트의 작은 극장』, 마리옹 뮐러 콜라 글, 정우경 옮김, 산지니
한나 아렌트는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 자신의 몫이라고 말합니다. 그건 불의한 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을 따라’ 했거나 ‘법을 따랐을 뿐’이라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아이히만에게는 ‘자신의 말’이 하나도 없었고 결국, 수백만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았으니까요. 죽어가는 아이들을 두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 여자와 아이까지 죽이고도 의기양양한 군인, 계엄에 대해 공직자로서 윗분의 판단과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관료들, 이러한 일은 너무나 흔해서 정말 ‘소름 끼치게 진부’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영화의 장면으로 돌아갑니다. 아무도 미치광이 군인을 막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 앞으로 말이지요. 이 현장에 우리가 있습니다. “전쟁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하고 묻는 괴물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한나 아렌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같이 괴물이 되거나, 괴물을 막거나. 선택은 두 가지뿐이라고요.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정직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마음산책, 133p
제가 좋아하는 문장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영화 속 해병이나 역사 속 왜군들을 괴물이라고 지칭하면서 나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대상인 것처럼 구분한다고 해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구분 이전에 내 안에 언제 깨어날지 모른 채 웅크리고 있는 괴물을 응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쪽입니다.
7. 귀 무덤이야, 코 무덤이야?
1607년 부산을 떠나 줄곧 바닷길로만 에도를 향해 나아가던 사절단은 4월 8일 오사카에 닿았어. 이제 오사카에서부터 에도까지는 바닷길이 아니라 육지 길을 따라서 가는 거야.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에 삼사는 이상한 얘기를 듣게 됐지. 글쎄, 교토에 조선인의 ‘귀 무덤’이 있다지 뭐야! 1607년 부사로 일본에 간 경섬(1562~1620)이 쓴 『해사록』에 따르면 분명히 교토에 ‘귀 무덤’이 있다고 돼 있거든. 귀 무덤? 정말 어떤 무덤인지 궁금하지 않아?
때는 1597년이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대군을 보내 아름다운 조선의 땅과 강을 피바다로 물들였어. 이름하여 정유재란이지. 그때 히데요시는 왜군에게 상상할 수도 없이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리게 돼.
“우리 왜군이 조선에서 전투를 피하려 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조선에 가 있는 일본 병사에게 내 명을 전하라! 앞으로 조선인을 죽이면 반드시 그 코를 벤 뒤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내도록 하라!”
히데요시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쳐들어간 왜군이 전투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조선군과 싸운 흔적을 제 눈으로 직접 보겠다며 이런 명령을 내린 거야. 하지만 암만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그처럼 무서운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모르겠어!
“조선인은 한 명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목을 베어라. 그리고 코를 베는 것도 잊지 마라! 여자고, 아이고 가리지 말고 모두 베어 버려라! 병사마다 적어도 코를 셋은 베어야 목표량을 채울 수 있다!”
이렇듯 히데요시의 명을 받은 왜군은 조선 관군은 물론이고, 농민이나 여자, 심지어 아이까지 목을 벤 뒤 그 코를 베어 갔던 거야.
“그런데 조선인의 코를 어떻게 일본으로 보내면 좋겠습니까? 가다가 배에서 다 썩을 텐데요.”
“이런 못난 놈! 잘라낸 코는 식초와 소금, 석회로 썩지 않게 처리하면 되지 않느냐!”
사람의 몸이 죽으면 썩게 되잖아. 그러니 우리 선조의 시신에서 베어낸 코가 썩으면 자기네들이 조선군과 싸웠다는 증거를 히데요시에게 보이지 못하니 그렇게 썩지 않도록 처리한 거야. 그런 머리로 사람 살리는 일에 힘썼으면 오죽 좋으련만!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는 진작부터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웃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베어온 조선인 코를 어떻게 할까요?”
“먼저 코 수령증을 만들도록! 코를 가져온 병사가 어느 부대의 누구인지 적고, 코를 몇 개 가져왔는지 적어라! 그러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럼 썩지 않도록 처리한 코는 배에다 어떻게 옮기면 될까요?”
“방부 처리된 코는 죄다 나무통에다 넣되, 통마다 코를 1,000개씩 넣도록 해라!”
조선으로 온 왜군은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남원성과 충청도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조선 사람을 죽이고 나면 마치 나뭇가지를 베듯 정말로 코를 싹둑 베가는 거야. 더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왜군이나 히데요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는 거지.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자기네끼리 치고, 박고, 싸운 전국시대가 있었잖아? 그때 일본의 무사는 적군의 목을 많이 베어 대바구니나 허리춤에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걸 큰 자랑거리로 여겼거든. 그러니 조선에 와서도 그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써먹은 거지. 다만,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좀 먼 곳에 있으니까 벤 머리를 죄다 가져가려면 무척 난감하겠지? 그래서 코만 베어 소금에 절여 보내라고 한 거야.
지금 남아있는 코 수령증을 기준으로 짐작하면 그때 약 10만 개가 넘는 코가 잘렸음을 알 수 있어. 엄청나지? 이런 걸 보면 어떤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까? 맞아! 왜군은 조선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였음을 뜻하는 거지. 이렇게 끔찍하게 베어진 코는 일본의 히데요시에게 전해졌고, 히데요시는 그것을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 코를 잘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라 했대. 참말로 어이가 없지? ‘병 주고 약 준다’란 말은 이때 딱 들어맞는 말이야! 애당초 그런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지! 아무튼, 바로 그 코 무덤이 앞에서 말한 귀 무덤이야. 코 무덤인데 왜 귀 무덤이냐고? 그건 잠시 후에 밝혀질 거야.
『해사록』에 따르면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1593~1615)’는 코 무덤에다 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으니 더더욱 기가 찰 수밖에 없어.
“너희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나라의 운수가 그렇게 된 것이다!”
죄 없이 죽은 사람의 원혼을 위로하려면 먼저, 자기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하여 마땅히 사죄하고, 그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도리이자 순리겠지? 그런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뭐라고 해? 자기들이 저지른 짓에 대하여 사과는커녕 되레 생뚱맞은 말을 하고 있잖아. 즉, ‘너네 나라가 힘이 약해서 우리한테 침략당한 거니, 우리를 원망하지 말고 너희 나라를 원망’하라는 말이랑 뭐가 달라? 저런 식으로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되레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니 죄 없이 숨진 조선인 중 그 누가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 히데요리는 오사카의 다이묘로 있었으므로, 통신사가 지나면 응당 서로 만나서 인사를 나누도록 함이 예의야. 하지만 우리 조선의 통신사는 조선의 원수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만날 아무런 까닭이 없다 하여 끝끝내 히데요리를 만나지 않았대.
그런데 좀 헷갈리는 게 있지? 뭘까? 맞아, 바로 이 코 무덤의 이름이야! 어떤 이는 이 무덤을 두고 ‘귀 무덤’이라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코 무덤’이라 일컫고 있지? 왜 그럴까? 교토에 있는 이 무덤의 올바른 이름은 과연 어느 것일까? 코 무덤일까, 귀 무덤일까? 이걸 알려면 앞서 말한 코 수령증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수령증 하나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
“조선 금구와 김제에서 거둔 코의 수가 3,369개입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코 무덤이라고 돼 있지? 그런데 왜 코 무덤이 귀 무덤으로 바뀌어 전해지는 걸까?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토에 있는 이 무덤 앞에 세워진 안내 글에는 ‘이총(귀 무덤)’이라고만 돼 있었거든! 그러다가 요즈음 들어 ‘이총과 비총(코 무덤)’을 같이 써 두었어. 마음 같아서는 귀 무덤과 코 무덤을 같이 써둘 게 아니라 역사적 사실대로 코 무덤만 써 두라고 하고 싶지. 하지만 일본은 역사 기록에 귀 무덤과 코 무덤 둘 다 있으니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 그러나 임진왜란 때 기록에 따르면 코 무덤이 분명한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적어도 왜 같은 무덤을 두고 귀 무덤과 코 무덤을 둘 다 써 둔 것인지 그 까닭 정도는 밝혀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일본도 귀 무덤이 코 무덤임을 잘 알고 있을 거야. 왜냐하면, 히데요시가 조선 사람의 코를 본 뒤 그 코를 잘 묻어주고 제사까지 지내주라고 했다고 앞서 말했지? 따라서 처음에는 코를 묻은 데서 ‘코 무덤’이라 했대. 그러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하야시 라잔(1583~1657)이 ‘코 무덤이라 하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니까 귀 무덤으로 바꾸면 좋겠다’ 해서 그 뒤로 귀 무덤이라고 바뀌어 전해지는 거래. 그러니 코 무덤을 귀 무덤으로 바꾼 것만 봐도 일본 사람 스스로 자기들이 조선 땅에서 한 짓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짓인지 잘 알고 있던 셈이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유성룡(1542~1607)이 쓴 『징비록』을 보면 ‘적병은 우리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코를 베어 위세를 보인다’는 대목이 있어. 일본인이 작성한 코 수령증이 아니라 우리가 쓴 기록에 따라도 코를 벤 것임엔 틀림없지. 그리고 그런 증거는 일본 승려 게이넨(?~?)이 쓴 일기에도 나와 있어. 게이넨이 쓴 일기를 보면 일본인이 왜 코 무덤을 귀 무덤으로 바꾸려 한 건지 그 이유도 살짝 엿볼 수 있대.
「역사에서 이 전쟁처럼 슬픈 것은 없다. 병사가 가는 곳마다 살육을 일삼고 불을 지르니 그 연기가 마을마다 가득하다. 조선인의 머리와 코를 대바구니에 담으니, 대바구니가 가득했고, 병사가 모두 피투성이가 된 바구니를 허리춤에 달고 싸웠다.」
이런 옛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분명히 코 무덤이 정확한 이름일 거야. 이처럼 코 무덤이 귀 무덤이 된 것은 하야시 라잔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어. 하야시 라잔은 코 무덤이 갖는 잔인함을 고민하다가 코 무덤이라 새긴 비석을 없애고 귀 무덤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남은 거지. 그러다가 현대에 접어들어 그 무덤에 관심을 가진 한국과 일본의 여러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자 마지못해 ‘귀 무덤’ 옆에다 ‘코 무덤’도 같이 써놓게 된 거야.
그런데 이런 코 무덤은 교토에만 있는 게 아니야. 오카야마현 비젠시에도 ‘천인 코 무덤’이 있어. 조선인의 코가 무려 천 개나 묻혀있다는 거지. 이런 유적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 짐작이 갈 거야. 생각할수록 왜군의 끔찍하고 잔인한 짓에 몸서리쳐져.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인 것도 모자라 머리를 허리춤에 달고 다니고, 그 코를 베어낸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