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중국으로 간 연행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일본으로 간 통신사는 엄청난 대접을 받았지요.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통신사가 연행사처럼 조공사절단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여럿 있어요. 그러면서 그 증거로 여러 가지 사료를 내세우기도 해요. 이처럼 일본은 과거부터 어떤 외교 문제가 쟁점화되거나, 어떤 의도를 갖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면 그에 관하여 연구를 많이 해서 자기 나라에 유리한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났어요. 그건 오늘날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일본의 자세와 태도는 독도 문제에 이르면 극에 달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비롯된 일본의 외교적 자세와 태도에 맞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가장 이로울까요?
생각 여섯)
「호랑이가 말했어요.
“야, 사자, 그냥 내가 더 강한 것으로 하고 끝내자!”
하지만 사자는 갈기를 내저었어요.
“무슨 소리야? 그럴 순 없어. 내가 더 강하니까!”
사자와 호랑이는 숲속 동물들을 둘러봤어요. 다들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었어요.」
『둘이 싸우면』, 브리타 사박 글, 이고어 랑어 그림, 김영진 옮김, 시금치 2024
호랑이와 사자가 힘을 겨룹니다. 자기가 힘이 더 세다고요.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아요. 대체 누가 더 힘이 센지가 숲속 동물들한테 무슨 소용일까요? 왜 둘의 싸움을 다른 동물들이 지켜봐야 하냔 말이지요. 피곤한 일입니다만,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하네요. 둘 중 누가 더 힘이 셀까요?
자신에게 유리한 사료만 모아 조선통신사가 조공을 바치러 온 거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학자나 지도자들을 보면 유치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편, 중국을 세상의 중심(중화)로 여기고 받들면서 자신을 소중화로 자리매김한 채 일본을 업신여겨온 조선 또한 오늘날 눈으로 보면 한심해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가 더 힘이 세고 우월한 나라인지 견주는 것에 그토록 목을 매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힘이 세면 여러모로 살기 편합니다. 힘센 사람한테 함부로 굴지 않으니까요. 그 힘으로 더 많은 힘을 얻기도 하고요. 힘이 센 사람끼리 모여 세력을 이루면 더 많은 일을 손쉽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개인이든 집단이든 호랑이나 사자처럼 누가 더 힘이 센지 겨루면서 서열을 매기지요. 그 힘으로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나쁜 일을 하기도 쉬워요. 보통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힘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아주 커다란 실리(이익)을 갖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힘의 우위를 마치 명예나 체면처럼 여기는 태도가 생겨나지요. 남보다 약하다는 건 부끄럽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되고요. 나라 처지에서는 국격이 떨어지는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개인이든 집단이든 상대보다 자신(들)이 더 힘이 세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존재의 명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힘이 있다는 건 하나의 짝처럼 실리와 명분을 다 만들어 내는 효과를 가지다 보니 힘의 우열을 가리는 건 유치한 일이 아니라 절실한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늘 빠뜨리는 질문이 있어요. ‘힘이 세다’는 의미 말이에요. 여러분도 힘을 갖고 싶잖아요. 이때 떠올리는 힘은 어떤 것이죠? 무거운 물건을 잘 들어 올리는 거? 싸움 잘하는 거? 돈이 많다는 거? 좋은 직업? 여러분이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힘이 세다고 여기는 사람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네요. 어떤가요? 무언가 공통으로 갖는 속성이 보이나요?
힘이 가진 속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다른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물건을 든다는 건 대상의 위치를 변하게 하는 거지요. 돈이 많다는 건 원하는 걸 하게 하거나, 반대로 하지 않게 할 수도 있어요. 높은 지위에 있다거나 싸움을 잘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단순히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뿐 아니라 상대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거나 경외감을 지니도록 할 수도 있어요. 즉, 감정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에요. 국어사전에서 ‘힘’이라는 단어를 찾으면 열 몇 개의 뜻이 나오잖아요. 영어사전에서 ‘power’를 찾아도 마찬가지고요. 대체로 다른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속성과 관련 있다고 보면 됩니다.
힘(力)이라는 한자의 어원을 보면 새롭게 생각해 볼 여지가 생깁니다. 뼈에 새긴 글자, 즉 갑골문에서 가장 처음 力(력) 글자가 보이거든요. 力(력)은 밭을 가는 농기구를 본뜬 글자라고 하네요. 무엇이든 먹고 사는 문제가 맨 처음이잖아요. 밭을 갈면 힘이 들지요. 힘을 쓴다는 뜻이 여기에서 나온 거라고 합니다. 이때 힘이란 모두를 먹여 살리는 노동과 관련된 말인 거예요. 이를테면 밭을 잘 가는 사람이 힘이 센 사람인 거지요. 땅이라는 대상에 영향을 미쳐 먹을 걸 만들어 냅니다. 이로써 본인뿐 아니라 다른 가족, 씨족 사회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지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겠군요. 바로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영향을 주는 것에서 온다고 말이지요. 어쩌면 힘센 사람, 힘센 나라의 정체성은 오래된 갑골문의 한자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 안에 나무는
아주 강해요.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고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려
다른 뿌리들과 이어져요.」
『내 안에 나무』, 코리나 루켄, 김세실 옮김, 나는별, 2021
『내 안에 나무』라는 그림책의 한 대목입니다. 주인공 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 마음에 자라는 나무 한 그루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나무는 아주 강합니다. ‘다른 뿌리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다른 대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마음, 거기서 연대라는 싹이 움틉니다. 소년의 마음에 뿌리내린 이 나무는 보통의 나무가 아니지요. 뿌리와 뿌리가, 뿌리와 땅이, 하늘이, 태양이 연결된 나무입니다. 그러니 아주 강하다고 소년은 확신하면서 노래하는 것이겠지요.
힘의 속성은 다른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지요. 힘이 세거나 약하거나 소년이 노래한 것처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서로를 단단히 하고 함께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관계여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요즘 떠올리는 힘은 너무나 일방으로 상대를 제압함으로써 제 이익을 얻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여러분이 떠올린 힘이 센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조선통신사가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러 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를 우리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아요. 지난날부터 오늘날까지 자신들이 우리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걸 내세우려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서열을 매겨놓아야 앞으로 자신들에게 이익이 나는 쪽으로 의사 결정을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일본만 그리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대체로 자기가 유리한 쪽의 사료를 끌어다 역사를 가르칩니다. 힘이 센 나라들일수록 과거부터 다른 나라나 문명을 침략하고 지배해온 역사가 있을 테지만, 하나같이 제국의 번영이나 기술 문명의 전파 따위로 요란하게 치장하잖아요. 그 일로 죽거나 다친, 상처받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우리나라라고 다를까요? 한 사례로 베트남 전쟁 때 파병된 우리 군인들이 민간인 마을에서 저지른 일들에 대한 성찰보다는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가 우리 경제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그러한 전쟁을 통해 가장 힘센 미국과의 동맹이 얼마나 더 견고해졌는지 따위를 셈하는 목소리가 훨씬 더 높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이번 글의 핵심은 힘의 본래 의미가 ‘상대에게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는 데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그편이 세상을 더 평화롭게 할 거라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맺음을 하자니 마음 한편에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은 사회 속에 존재하지만, 또한 ‘고독한 단독자’로서 대부분 홀로 힘껏 삶을 지탱하며 나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니까요. 고독한 단독자로서 개인에게 힘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고민은 빠져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책의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여러분이 꼭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족처럼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 중략 ……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중
「시인이 느끼는 설움은 그저 남들의 상대적으로 안온한 삶과 자신의 참담한 삶을 비교하는 데서 오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데서 이 시는 다른 경지로 올라선다. 그의 설움은 일상적 비애를 포함하지만, 동시에 그런 일상적 비애를 이기는 정신의 힘을 지켜나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자의 운명적 비애다. 팽이는 돌지 않으면 쓰러진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한사코 도는 팽이처럼, 자신도 영원히 자기 자신을 고쳐 가야 할 운명과 사명을 자각하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회전하며 직립해야 함을 알기 때문에 그는 더 서러운 것이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김수영 연구회, 민음사, 2018, 30p
김수영의 시 「달나라의 장난」과 그 시에 따라붙은 해설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글은 미완성의 상태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한사코 도는 팽이처럼’ 여러분 각자의 삶을 버텨내는 가운데 채워주시길 당부드립니다.
6. 조선통신사가 조공사절단이라고?
일본의 어떤 학자들은 ‘통신사는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이라고 주장해. 통신사가 쇼군을 비롯해 바쿠후의 많은 사람에게 줄 예단을 가져오고, 바쿠후가 바뀔 때마다 인사를 하러 오기 때문이래. 그렇다면 통신사가 정말로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었을까? 그런 사정을 살펴보려면 그 당시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어.
“이 길은 너무 좁아 가마가 드나들기 힘드니 새로 넓히고, 이 집은 너무 낡아 보기 흉하니 허물어버리고 새로 짓도록 하시오!”
“쓰시마 감시관! 그게 무슨 소리요? 아직 쓸 만한 집인데 허물라니요?”
“아니, 쇼군의 말씀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요? 통신사가 머무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하라고 한 말씀을 그새 잊었단 말이요?”
일본에서 통신사가 오가는 지방의 여러 곳에서는 쓰시마에서 온 감시관과 그 지역의 번 사이에 이런 실랑이가 한 번씩 오갔어. 통신사를 모실 때 섭섭함과 소홀함이 없도록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는 쪽과 그 준비가 너무 힘들다는 쪽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지. 이처럼 통신사를 맞이하는 일은 쇼군의 명령에 따라 엄하면서도 아주 정중했어. 어느 정도 정중했는가 하면 마치 쇼군이 행차하듯 했대. 그러니 통신사가 오가는 길목에 있는 번에서는 앞다투어 통신사를 잘 모시려 한 거야. 그래야 자기 번의 체면도 서고, 쇼군에게도 잘 보일 수 있으니까!
통신사가 조공사절단이었다는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좀 더 살펴볼 거야. 1711년, 히로시마의 산노세항으로 거슬러갈게.
산노세항은 히로시마 번에 있는데,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뱃길 사이에 있어, 그러니 배가 머물기에 딱 좋은 곳이야. 에도시대 때 히로시마 번 안에서 오직 하나뿐인 해상역인데, 나가간키라고 일컫는 큰 선착장이 있었거든. 바닷가에다 경기장의 계단식 의자처럼 생긴 돌 선착장을 두었는데, 요즘도 가서 볼 수 있어. 또한, 여관과 관청도 있으니 환경도 꽤 좋았거든. 따라서 시모노세키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바다인 세토내해를 지나는 배가 머물기엔 딱 괜찮은 곳이지. 주로 규슈 지방의 다이묘나 네덜란드 상인, 그밖에 세토내해를 지나는 배가 오가며 쉴 수 있었대. 통신사도 마찬가지여서 통신사를 태운 배가 히로시마 번으로 들어오면 반드시 산노세항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쓰시마에서 전해온 데 따르면 통신사가 세토내해를 9월쯤 지날 것이라 합니다! 먼저 쓰시마로 가신을 파견해 정사나 부사, 종사관이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은 무엇인지, 통신사 삼사를 따라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를 싹 파악하면 통신사를 맞이할 때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가신이란 높은 귀족 또는 지방의 영주나 고위 관리 아래에서 벼슬을 얻어 일하는 사람을 말해. 과거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에 있었어. 따라서 일본에서도 지방의 영주인 다이묘가 중요한 업무를 처리할 때 그 다이묘를 좌우에서 보살피는 신하라 보면 돼. 그처럼 믿을 수 있는 신하를 신속히 쓰시마에 파견해서 정보를 빼낼 정도로 빈틈없이 통신사를 맞이했던 거야. 그래야 미리미리 필요한 것들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옳은 말이네. 그럼 빨리 쓰시마로 가서 통신사와 관련된 소식을 낱낱이 보고하도록 하게! 그다음 할 일로는 또 뭐가 있겠나?”
“항구부터 고치는 게 좋겠습니다. 선착장이 낡아서 무너진 곳, 부서진 곳을 미리 고쳐놓으면 혹시라도 통신사가 탄 배가 잘못될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통신사가 묵을 숙소도 새로 손질하고, 칠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다 좋은데 그렇게 준비하려면 사람이 꽤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염려 놓으십시오! 통신사가 온다 하여 진작부터 계획해 두었습니다. 길 안내인, 짐 운반인, 청소부, 요리사, 호위 무사 등 저마다 할 일을 마련한 데다, 모두 759명을 뽑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또한, 통신사가 머물 다음 항구인 도모항까지 아무런 탈 없이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배도 135척이 뒤따르게 하였습니다!”
“잘 했네! 그런데, 그래도 뭔가 좀 모자라는 것 같은데……?”
“그래서 무사나 백성이 통신사 일행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미리 법을 만들어 지키도록 준비했습니다!”
“옳거니, 그러면 되겠네! 그럼 통신사가 오기 두 달 전부터 시행할 법을 만들고, 곳곳에 안내판을 세워 모든 백성이 알도록 하라!”
통신사를 맞이한다고 지방에서는 법까지 새로 만들어. 대체 통신사가 일본에서 얼마나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기에 법까지 만드는 걸까. 그 법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풀려면 주요 내용 몇 가지를 살펴보면 되겠지? 잘 들어봐, 어떤 내용인지.
첫째, 통신사 배가 지나갈 때는 그 배를 먼저 지나가도록 할 것! 둘째, 통신사의 풍습이 달라도 그것을 비난하거나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말 것! 셋째, 바다에서 보이는 집과 길은 깨끗이 청소를 해둘 것! 넷째, 통신사 구경을 금지하는데, 무엇보다 배가 육지에 닿을 때는 엄하게 금지한다! 다섯째, 통신사로 온 사람에게 붓과 책, 글씨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어때, 대단하지? 내용을 살펴보면 그 무엇보다 통신사가 우선이고, 통신사에 대한 편의 제공이 먼저야. 하하, 세상에나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에게 이처럼 융숭하게 법까지 만들어서 맞이하는 나라가 있을까? 좀 더 살펴볼게.
그럼 통신사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까지 도달하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이거 큰일 났습니다, 가로님! 통신사가 묵을 방을 멋지게 꾸미려니 병풍이 없사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이웃 마을에 연락해 금은으로 수놓은 병풍을 가져오라고 해라! 그리고 몇백 명이 넘는 사람을 다 재우려면 산노세처럼 작은 항구로는 벅찰 터, 마땅히 백성의 집을 빌려야 할 것이다. 통신사가 오기 전 산노세 백성을 산으로 속히 이동시키고, 그 집에다 통신사 일행이 묵도록 하라. 우리 번의 명예가 달린 일인데 하룻밤 정도는 참고 견뎌야지!”
“그렇고 말고요! 그런데 통신사가 도착할 때쯤이면 날이 어두워지는데 밤바다를 배가 오가는 것이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라. 이미 통신사를 태운 배가 바다를 지날 때 대낮처럼 훤히 밝힐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만일을 대비해 등불에 불붙이기, 봉화로 통신사가 오는 것을 알리기, 배 100여 척으로 히로시마와 미하라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연습까지 싹 다 마쳤느니라. 통신사 삼사가 묵을 숙소와 관청도 무사가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고 있으니 안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 것이야!”
위 대화는 에도시대 다이묘의 가신 중 최고 지위의 관직인 가로가 통신사 접대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야. 심지어 통신사가 머물 동안 자기 백성조차 살던 집에서 내쫓을 정도지.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뒤 통신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야.
이윽고 통신사가 탄 배가 나타났어. 히로시마 번에서는 축포를 쏘고, 가로를 비롯한 무사가 선착장까지 나와 온갖 예의를 다해 통신사를 맞이했지. 사신이 탄 가마는 일본 사람이 매었으며, 숙소까지 이르는 길에는 유럽에서 들여온 진홍색 양탄자까지 깔렸어. 날이 어두울 때 통신사가 도착하므로 가는 길마다 등불을 환하게 밝혀 사신이 헛걸음을 내딛는 일이 없도록 했음은 물론이야! 상상만 해도 대단하지? 이런 데도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일까? 참고로 중국으로 간 연행사는 중국 대상 행렬이 지나가면 그 행렬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조공사절단의 설움이라 할 수 있지. 근데, 일본으로 간 통신사는 보다시피 전혀 다르잖아!
이번엔 통신사가 교토에서 머물 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1748년 사행을 살펴볼게.
“통신사가 세토내해를 곧 통과할 거란 말이지? 우리 교토에도 며칠 머물 건데 통신사 맞이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의견을 말해보시오!”
“일단 법규부터 만들어 통신사 접대의 기본 방침부터 세우는 게 좋겠습니다! 그 법규를 모든 백성이 지키고 따르도록 하면 통신사 맞이에 불편함이 덜할 겁니다. 그리고 교토의 일왕께서 바깥나들이 갈 때 먹는 요리를 그대로 바치면 됩니다. 그 정도라면 사신도 퍽 만족할 겁니다!”
일왕 즉, 일본 천왕이 먹는 요리를 그대로 통신사에게 접대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아? 조공사절단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환대니까 말이야. 게다가 교토에서는 통신사가 지날 때 다음과 같은 법규를 만들어 모든 백성이 지키도록 했어. 앞서 본 산노세보다 더 구체적이니 몇 가지 살펴볼 거야.
첫째, 통신사가 지나는 길에 있는 건물은 대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길을 마주하는 창에다 발을 쳐서 밖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통신사가 지나가기 사흘 전까지 끝내야 한다.
둘째, 동서쪽 다리 끝에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
셋째, 통신사가 지나는 날은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야 한다.
넷째, 통신사가 지나갈 때는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그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다니지 못하도록 길 양쪽에 표시판을 세워야 한다. 만약, 그때 거리를 오가며 통신사 행렬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면 엄히 처벌해야 한다.
다섯째, 네거리나 나무 아래, 울타리 사이에서 마을 사람이 한 발짝 물러서서 구경하는 것은 좋으나, 예의 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가게 앞이나 2층에서 구경할 때는 예의를 갖추고, 큰 소리를 내거나, 웃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며, 조용히 구경해야 한다. 안쪽에서는 주렴으로 가리지 않아도 좋으나, 남녀가 섞여서 구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 2층은 주렴으로 가리고 구경해야 한다.
이 정도면 국빈급 대우를 넘어서지? 사실 교토에서는 이보다 약 37년 전인 1711년에 통신사가 찾았을 때도 한바탕 난리를 쳤어. 오래된 동네에 있던 낡은 집을 싹 다 헐어야 했거든. 아울러 중요한 건물은 단청을 새로 칠하고, 청소까지 말끔히 다 마쳤지. 그러니 교토에서도 통신사 방문에 여간 정성을 쏟은 게 아님을 알 수 있어.
뭐, 이쯤만 해도 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간 사절단이라는 말은 더 따져볼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걸 느낄 거야. 그래도 좀 아쉽다고? 그럼 또 다른 보기를 들어볼까.
“통신사가 일본 땅을 오갈 때 청도 깃발을 들고 행진하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선생님,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라! 청도 깃발이란 황제나 왕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이 길을 나설 때 앞세우는 깃발 아니냐? 다시 말해 이 말은 청소도 깨끗이 하란 뜻도 있지만, 사람이나 짐승이 행차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미리 치워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즉, 쇼군 행차처럼 행렬이 나아갈 때 걸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통신사가 일본 에도를 오갈 때 늘 청도 깃발을 앞장세우고 오가지 않느냐 말이다. 이건 조선이 학문에 어두운 우리 일본의 약점을 헤집고 들어와 우리 일본을 비웃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말을 한 아라이 하쿠세키(1657~1725)는 통신사가 일본에 조공을 바치러 온 사절단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이 우러러 받드는 사람이야. 하쿠세키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역사학자로 18세기 초 도쿠가와 바쿠후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지. 도쿠가와 이에노부(1622~1712)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구(1709~1716) 쇼군 때 일본의 주요정책을 세운 사람이야. 무엇보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기강이 차츰 무너지고 관료 제도의 나쁜 점이 드러나자 이를 바꾸려고 무지 애쓴 인물이기도 해. 통신사 접대와 관련해서도 개혁안을 내놓아 조선과 외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어. 나중에 살펴볼 ‘빙례개혁’을 밀어붙인 장본인이지. 그런 하쿠세키의 눈에는 통신사 행렬이 눈에 가시야. 청도 깃발을 휘날리며 일본 땅을 오가는 통신사 행렬이 내내 못마땅했어. 왜냐하면, 청도 깃발을 그리도 당당히 내세우면 일본의 처지에서 볼 때 통신사가 마치 일본보다 높은 나라의 사신처럼 비치잖아! 그래서 하쿠세키는 청도기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 애쓴 거야. 하지만 하쿠세키의 이런 바람과 달리 통신사는 단 한 차례도 청도 깃발을 내린 적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