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왕님께 제사를 지낸다고?

by 구경래

생각하기)


통신사 사행을 보면 사신은 조선을 떠나기 전 챙겨야 할 물품과 인력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처럼 어떤 일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할 때 사전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는 계획은 오늘날과 다를 게 없지요. 사실 요즘도 어떤 작업장이나 행사장 또는 여행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게 준비 부족에 따른 어려움이에요. 그건 개인도 마찬가지죠. 집을 나선 뒤에 ‘아차!’ 하고 무엇인가를 빠트렸음을 알아차린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다 있을 거예요. 그런데 처음이면 몰라도 하루, 이틀, 사흘 그런 일이 계속 이어진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어떤 행사를 진행하거나 아니면 어디로 여행을 떠나거나 할 때 평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준비물을 빠트리지 않고 잘 챙겨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요?


생각 넷)


「인당수 용왕님이시여, 유리국 도화동에 사는 열다섯 살 효녀 심청을 재물로 드리오니 사해 용왕님은 고이고이 받으소서. 동쪽 바다 신 아명이시여, 서쪽 바다 신 거승이시여, 남쪽 바다 신 축융이시여, 북쪽 바다 신 옹강이시여, 칠금산 용왕님, 자금산 용왕님, 개개섬 용왕님, 영각대감 성황님, 허리 간에 화정성황, 이물고물 성황님네 다 굽어서 살펴 주옵소서. 물길 천 리 먼먼 길에 무사하게 길 떠나게 도와주시고 장삿길에 억십만 금 이문 남겨 기뻐 돌아오게 해 주소서.」

『인당수에 빠진 심청』, 생각의 나무


여러분도 잘 아는 이야기 속 한 대목이지요? 그렇습니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 전 뱃사람들이 바다에 제를 올리는 중이네요. 이들은 먼 바닷길의 안녕과 대박을 기원하며 심청이를 제물로 준비했지요. 자신들의 안전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 사람 목숨을 셈하다니요! 사람의 생명(명분)보다 자신들의 이문(실리)를 위해 청이를 데려간 뱃사람과 장사치들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생업으로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는 어부든, 바다 건너 나라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치든, 망망대해에 제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지내는 제사가 얼마나 간절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제 목숨은 물론 자신이 책임지는 가족의 생계도 걸린 일이니까요. 왜란을 겪고 안팎으로 혼란스러울 때, 막중한 임무를 받고 일본으로 향하는 통신사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일본으로 떠나는 조선통신사의 준비와 노고를 읽으면서 저도 제게 맡겨진 크고 작은 과업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놀고, 먹고, 자고, 싸는 가장 바탕이 되는 일부터 학교나 학원 가서 하는 공부, 몸을 단련하는 운동, 심부름이나 방 청소처럼 부모님을 돕는 일도 있을 테고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있을 것이고, 시키니까 하는 일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대개 나이를 먹으면서 그때그때 맞게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보통 과업이라고 하지요. 과업은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다시 나뉘게 됩니다. 아무래도 공적인 일은 여러 사람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기도 해서 그런 일은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하지요.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其次致曲(기차치곡)이니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曲能有誠(곡능유성)이니,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誠則形(성즉형)하고,

겉으로 배어 나오면 이내 뚜렷해지고 形則著(형즉저)하고,

뚜렷해지면 곧 밝아지고 著則明(저즉명)하고,

밝아 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明則動(명즉동)하고,

남을 감동시키면 변하게 되고 動則變(동즉변)하고,

변하면 생육한다. 變則化(변즉화)니,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唯天下至誠(유천하지성)이야,

나와 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爲能化(위능화)니라.

『중용』, 23장 치곡(致曲)


정조의 암살 사건을 다룬 영화 『역린』에 사용되어 제법 알려진 중용 23장의 구절입니다. 정조는 자신의 아비가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자 오랜 시간 절치부심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였다지요. 결국, 보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자신을 흔들던 정적 노론이 조정을 장악한 상황이었습니다. 군주는 폐위된 아버지를 복권하여 왕으로서의 정통성(명분)을 회복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싶습니다. 또한, 개인의 원한을 삭히고 현실을 받아들여 노론을 인정하면서 탕평책(실리)로 나라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그런 그가 성리학을 근본으로 삼아 나랏일을 하는 조정 대신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워 읊을 줄 아는지를 묻습니다. 공부하길 좋아하는 군주로 성리학의 대가이기도 한 정조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는지를 잘 내어 보인 장면입니다.


다시 조선통신사 얘기입니다. 먼 뱃길은 수백이 되는 일행의 목숨과 임금님이 부여한 임무의 성패가 달린 일이지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하나 살뜰히 챙긴다 해도 전염병이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은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사라도 정성을 다해 올려야지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는 태도입니다.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에서 겸허한 태도가 생깁니다. 겸허한 자세로 정성을 다하면 바다 신도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요. 아마 바다 신만 감동하는 게 아닐 겁니다. 예산을 마련하고, 길한 날을 정하고, 깨끗한 제기와 좋은 음식을 가려 준비하고, 제를 지내는 모든 사람은 물론, 이러한 정성을 보고, 듣고, 겪은 백성들의 마음도 움직일 테지요.


어디 조선만 그럴까요? 이렇게 애써 먼 길을 찾아준 사신을 맞이하는 일본 또한 나라 재정을 걱정할 만큼 예를 다하겠지요. 두 나라의 이런 지극한 마음이 모여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으로 상처 입은 두 나라를 다시 이어주며 ‘생육’합니다. 제에 쓸 돼지를 잡는 일, 그릇 하나를 닦는 일, 먹을 갈고 제문을 쓰는 일 따위는 따지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정성이 모여 ‘나와 이 세상을 변하게’ 합니다. 비록 조선과 일본은 저마다의 잇속을 따져 사절단을 보내고 환대하였겠지만, 이를 수행하는 사람 대부분은 저마다의 책임감과 충성심으로 자신에게 내려진 과업을 수행했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과정이 비단 나랏일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요.


정성(精誠). 정(精)은 쌀(米)이란 글자에 푸르다(靑)는 글자를 합해 만들어졌다지요. 푸른(깨끗한) 쌀을 얻으려면 모를 심고, 벼를 키워 수확하고, 낱알을 탈탈 털고, 도정까지 마쳐야 비로소 우리가 먹는 쌀이 됩니다. 우리 몸을 살찌우는 쌀을 얻기 위한 일이니 얼마나 귀한 일이었겠습니까. 정성 어린 일이지요. 성(誠)은 말(言)이라는 글자에 이루다(成)는 글자가 더해 만들어졌어요. 말을 이룬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말로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옛사람들은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성(誠)에는 정성이란 뜻과 진실이란 뜻이 함께 있습니다. 쌀을 얻기 위한 노동과 진실을 향한 말이 합쳐진 글자가 정성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하나는 육신을 살찌우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을 살찌우는 일이라고 말이죠.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하략……」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2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사람이 발명가라면, 시인은 너무 흔하거나 보잘것없이 존재하던 대상을 새롭게 발견하여 되살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는 사소한 행위 하나가 전 지구 차원으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위에 인용한 시의 앞머리에 저는 ‘정성’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는 일은 대개 이런 마당을 쓰는 일입니다. 걷는 일, 자전거를 타는 일,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일, 수학 문제를 푸는 일, 친구와 노는 일, 여행을 가는 일, 책을 읽는 일, 엄마를 돕는 일……. 어쩌면 먹고, 자고, 싸고, 놀고, 공부하는 생활 가운데 시인의 마음으로 보면 어떤 작은 행동이 우주를 밝게 비추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작고 소소한 일에 정성 어린 마음이 깃든다면 말이죠.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마당을 쓰는 일이 변화의 시작임을 믿는 사람이 여러분들 가운데에도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4. 용왕님께 제사를 지낸다고?


“유세차 을미년 오월 경술일, 통신사 정사 조형(?~?), 부사 유창(?~?), 종사관 남용익(1628~1692)은 삼가 맑은 술잔, 갖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바다 신에게 제사 드리나이다. 지금 우리는 먼 나라로 어명을 받들어 떠납니다. 배 떠날 좋은 날을 받아 오백 사람이 여섯 척 배에 나누어 탔습니다. 잔잔한 물결에도, 놀란 물결에도 목숨이 털끝과 같습니다. 신의 은혜가 아니면 어찌 무사히 건너겠습니까? 정성을 다하여 술잔을 올리오니 신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소서!”


무엇을 하는 모습일까? 맞아! 통신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제문을 읽는 모습이야! 1655년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종사관 남용익이 쓴 『부상록』의 「해신제」 제문 중 일부지. 통신사는 조선을 떠나기 전 늘 바다 신에게 제사를 모신 뒤 떠났어. 그만큼 통신사가 떠나는 길이 멀고 험했다는 거지. 요즘이야 일본으로 가려면 비행기로 가까운 곳은 사십 분, 먼 곳은 두 시간 반 정도면 가는데, 옛날에는 일본으로 가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야. 한마디로 고생길이지. 가는 방법도 오직 하나, 배 타고 가야 해. 그러니 이래저래 죽을 맛이야.


그럼 통신사는 어떤 길을 따라 일본으로 갔을까? 그 길에는 어떤 어려움이 놓여 있었을까?


“아버님! 소자가 통신사로 뽑혀 일본으로 갑니다. 돌아올 동안 몸 성히 잘 계십시오!”

“오냐! 집안일은 염려 말고 잘 다녀오너라. 위로는 임금님을, 아래로는 백성을 생각하며 사행길에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처신하거라. 그래, 이번에 가는 길은 어느 정도 먼 길이냐?”


한양을 떠나기 전 통신사는 임금님이 사는 궁궐에 들러야 해. 임금님도 뵙고, 조정의 여러 신하도 만나야 하거든. 통신사로 가는 사신 가운데 가장 높은 세 사람을 삼사라 해. 곧 정사, 부사, 종사관이야. 이처럼 삼사로 뽑힌 사신은 임금님께 잘 다녀오겠다는 작별 인사를 하고, 종묘사직에도 잘 다녀오겠다는 의식을 마친 뒤 한양을 떠나게 돼.


한양을 떠난 통신사는 충주와 상주를 거쳐 남으로, 남으로 꾸준히 내려가 마침내 부산에 닿게 되지. 그런데 부산으로 내려갈 때 말을 타고 막 달려가는 게 아니거든.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때가 아니라서 삼사는 때로는 가마를 타기도 하고, 험한 길은 때때로 말을 타거나 걸어가야 해. 그러니 다 같이 호흡을 맞춰 가려면 시간이 엄청 걸릴 수밖에 없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지금이야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보름도 더 걸렸거든. 왜냐하면, 아랫사람의 경우에는 하루 내내 걸었으니 무척 피곤할 것 아냐? 그러니 머무는 곳에 따라선 통신사 일행이 푹 쉬도록 묵기도 했거든. 또,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는 고생길이라 생각한 당시 조선의 관리들은 통신사가 자기 고장을 지나가면 초청해 거나하게 한 상 차려주곤 했어. 이래저래 부산까지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야.


아무튼, 그렇게 부산에 닿은 통신사는 어떤 일을 했을까? 그냥 먹고 놀지는 않을 거 아냐.


“여봐라!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서 마련해 온 특산물과 예단이 빠진 게 없는지 하나하나 살펴보아라! 만약, 틀림이 있다면 얼른 바꾸도록 할 것이다!”

“여러 도에서 뽑혀 온 사람은 다 있는지 확인하라. 일꾼이나 노꾼, 군졸과 하급통역관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확인해야 할 것이다!”

“준비가 다 되었으면 배 떠날 날짜를 정해야지. 출항은 언제가 좋다고 하더냐?”


자, 드디어 일본으로 떠나기에 좋은 날이 정해졌어. 이제 인력도, 준비물도 죄다 챙겼으니 남은 일은 용왕님께 정성껏 제사를 올리는 거야. 통신사가 조선에서 올리는 마지막 제사는 영가대에서 모시게 돼 있어. 그 제사가 바로 해신제야. 즉, 통신사로 떠나는 일행이 아무런 탈 없이 국서를 잘 주고받고, 일본을 무사히 오갈 수 있도록 바다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말해. 그러니 해신제는 통신사가 부산을 떠나기 전 반드시 갖춰야 할 의식이야.


그 진행 방법과 순서는 『국조오례의』에 잘 나와 있어. 『국조오례의』는 1474년(성종 5년)에 펴낸 책으로 길(吉), 흉(凶), 가(嘉), 빈(賓), 군(軍)의 다섯 가지 예법에 관해 정리해 놓은 책이야. 예법을 중시한 조선이니 마땅히 그런 예에 따라서 차례도 모시고, 제물도 꼼꼼히 준비해야 했어.


“종사관 어르신! 해신제를 올리려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요?”

“먼저 제단부터 마련해야 하니까 영가대 높은 곳에 제단을 모시도록 하게!”


조선 때만 하더라도 둘레에 높은 건물이라곤 관청으로 쓰던 기와 건물이나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인 ‘루’ 건물밖에 없었거든. 그런 까닭에 바다 저 멀리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높은 곳에다 제단을 세우는 일이 가장 먼저 할 일이었대.


“제사에 쓸 제물을 깨끗이 장만하는 것, 잊어선 안 될 것이네. 먼 길을 무사히 오가도록 비는 제사니만큼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야!”

“감히 여부가 있겠습니까! 상처 입은 짐승은 없는지, 상한 과일이나 음식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사에 쓸 그릇도 더럽지는 않은지, 머리카락은 묻지 않았는지 하나하나 깨끗이 훔치도록 했으니 마음 푹 놓으십시오!”


그렇게 갖은 정성을 다해 상차림이 끝나면 옷을 깨끗이 차려입은 통신사절단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바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돼. 그때 바다 신에게 바치는 제문을 읽고,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통신사 삼사 중 제술관이었어.


어떠니? 바다라는 대자연 앞에 고개 조아리고, 공손한 마음가짐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리는 우리 선조의 모습에서 뭔가 스치는 게 없니? 없다고? 그러면 알려줄 테니 일러주는 대로 한번 따라 해 봐. 먼저 옷매무새와 옷차림부터 바로 하고, 마음가짐도 차분히 다잡는 거야. 다 되었으면 목청을 가다듬고 따라 해볼까.


“유~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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