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조선통신사 배가 홀라당 탔다!

by 구경래

생각하기)


오늘날에도 수많은 참사가 벌어지고 있어요. 그 가운데 일부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재해지만, 상당수는 사람의 힘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인재였지요.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주요 참사만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2022년 이태원 압사 참사 등이 그 대표적인 보기지요. 그 결과 우리 국민의 충격도 엄청났지만,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사회가 그런 참사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분열의 후폭풍에 휘말렸다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그런 사정은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고요. 따라서 통신사 부사가 탔던 선박 화재 사건을 그저 다 지난 옛날 일로 치부하며 지나칠 수 없음을 알 수 있죠. 그럼, 어떤 인재로 인한 참사로 인명을 잃거나, 사람이 다치고, 재물을 잃는 일이 되풀이해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적어도 특정한 사건, 사고를 예방, 관리, 수습, 운영할 체계와 그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끄는 지도자 즉, 책임자가 있어야겠죠? 당연히 그 책임자는 지난 역사를 통해 뭔가를 특히 더 배워야 할 거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통신사 선박 화재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책임자로서 발뺌하는 걸 배울까요, 책임지는 모습을 배울까요?


생각 다섯)


오늘은 조용하고 내향적인 데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한 모범생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혼자 놀기를 좋아한 소녀는 불을 붙였을 때 일어나는 불꽃에 매료되었다지요. 그 신기한 불꽃을 보기 위해 어른들 몰래 불장난을 종종 하곤 했다네요.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집 근처 남의 밭에 건초더미가 쌓여있었고요, 무언가에 홀린 듯 성냥을 갖고 그 밭으로 갑니다. 건초더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성냥 불을 켜고 끄며 놀아요. 어디선가 ‘훅~!’ 하고 겨울바람이 불었고요, 그만 건초더미에 불이 ‘확~!’ 하고 일었어요. 놀란 소녀가 급하게 ‘후~!’ 하고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불은 벌써 바람을 타고 밭과 붙어 있는 언덕배기까지 옮겨붙기 시작했대요. 덜컥 겁이 난 소녀는 그길로 집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눈 위까지 끌어올리고는 벌벌 떨었다네요. 혼이 날까 봐 부모님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말이죠. 아무도 소녀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되려 평소 장난꾸러기였던 소녀의 오빠만 의심을 샀고요. 다행히 불은 빨리 진화되었다고 하네요. 불이 옮겨붙었던 언덕배기 그 자리는 봄이 오고 다시 풀로 뒤덮일 때까지 검게 그을린 채 있었대요. 소녀는 그 밭과 언덕 근처를 지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바삐 걸음을 옮겼답니다. 이렇게 동네 건초더미 방화사건은 까닭도 찾지 못한 채 미제 사건이 되었다는 뭐 그런 얘기입니다.


여러분도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거나, 그런 일을 보고, 듣고 하겠지요? 어떻습니까. 그때마다 잘못한 일만큼 벌을 받거나 자기가 한 일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나서던가요?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요.


일본에 도착한 사행선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 셋이 목숨을 잃고, 인삼을 비롯해 애써 준비한 예단이 모조리 불에 탔어요. 이건 동네 꼬마가 불장난하다 태워버린 짚단이랑은 차원이 다르잖아요. 누군가 책임을 져야죠.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불이 난 사건은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는 거잖아요. 임금님을 따라다니며 그의 말과 행동을 모두 기록하는 사관을 둘 정도로 기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알았던 조선입니다.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는 사행록이라는 기록을 남긴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사건 기록이 빠졌다면 일부로 이 일을 감추려고 했다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할 텐데요.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이 사건이 슬쩍 넘어갔다는 게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네요. 불행하게도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어요. 특히, 이번 일처럼 나라를 대표해서 임무를 맡고 나선 사람들이나 책임자들이 그 결과에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우리 사회 전체에 긍정 혹은 부정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연히 살아서 돌아와야 했던 내 아이와 가족, 내 친구들이 ‘왜’ 죽어가야만 했는지, 즉, 선원들은 왜 조직적으로 도망쳤고 ‘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집요하게 했는지, 해경(국가)는 ‘왜’ 선원들만 빼돌렸는지, ‘왜’ 선내상황 파악을 안 했는지, ‘왜’ 구조요청을 외면했는지, ‘왜’ 구조를 위해 가장 손쉬웠던 ‘퇴선 지시’조차 하지 않았는지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2021년 자료집』, 「Q&A 시민들의 질문에 유가족이 답합니다」, 11p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더 흘렀습니다. 배가 바다에 가라앉는 장면이 방송을 타고 실시간으로 보도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온 사회를 뒤덮은 슬픔과 공분 사이로 온갖 말들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가라앉았습니다. 배를 버리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 구조를 맡은 해경, 이를 보도하는 언론, 법을 만들고,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보인 당시 모습에 대해 여러분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사행선이 불탄 사건처럼 역사 기록이 충분치 않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으니까요.

다만, 기록이나 정보가 넘쳐난다고 해서 사건의 실체, 모두가 바라는 진실의 바다에 우리가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어쩌면 저마다의 입장과 생각으로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진실을 건져 올리는 일은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역사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요.


「역사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사실을 만들고, 자신의 사실에 따라서 자신의 해석을 만들어 내는 과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중략 ……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도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 상호작용은 또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 중략 ……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김승일 옮김, 범우사, 52~53p


여러분은 수많은 ‘사실’이라고 일컫는 과거의 기록들을 선택하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힐 겁니다. 이러한 무수한 선택의 가능성 앞에 우리는 그간 ‘명분과 실리’, ‘입장의 동일함’, ‘우연의 옷을 입은 필연’, ‘정성’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던 것이지요. 이는 현재를 사는 여러분이 지난 과거 사건과 대화할 때 헤아려볼 수 있는 관점이자 태도인 셈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이 어떤 눈으로, 어디에 서서 대화를 나누는지 끊임없이 관심을 지니고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려 들지 모릅니다.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 책임을 지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기개가 우리에겐 필요하지요.


모두가 역사가가 될 수 있다는 전제로 현재를 사는 제가 세월호를 둘러싼 숱한 말과 기록들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면 배가 좌초하고부터 가라앉는 순간까지 반복된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입니다. 이 말은 세월호의 비극을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처럼 되어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남겼어요.


「기다리래.

6835톤 배가 뒤집히는 동안,

뒤집힌 배가 선수 일부분만 남기고 가라앉는 동안,

…… 중략 ……

기다리래.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지친

컴컴한 바닷물이 먼저 밀려 들어와서 울음과 비명을 틀어막고 발버둥을 옥죄어도,

…… 중략 ……

질문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 중략 ……

기다리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맹골수도 물속에서 기다리래.」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기다리래」 중, 김기택, 현대문학, 2018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던가. 누군가는 의심했고, 누군가는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가만히 있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까 봐 그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세월호참사는 피해자들이 가만히 있었기에 당한 사고가 아니라, 저마다 살아내려는 삶의 의지와 도전을 짓밟은 선장과 선원, 나아가 정부가 만들어 낸 사건이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416 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2016


사필귀정(事必歸正). ‘어떤 일이든 결국에는 바른쪽으로 되돌아간다’란 의미입니다. 옛이야기에선 대개 이런 결말이잖아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는. 세상일이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일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법이나 질서 따위가 필요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법을 만들 필요도, 갈등을 조정할 권위나 집행할 공권력도 필요 없잖아요. 보이지 않는 자연 질서가 세상사를 바로 잡을 테니까요. 내세를 말하는 종교도 지금보다 힘이 없겠지요. 자신이 벌인 일에 맞게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 결과가 나올 텐데 천국이나 지옥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세월호참사나 사행선이 불탄 사건은 옛이야기만큼 통쾌하고 명확하게 일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그렇다면 ‘바른쪽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 바르다(正)는 말의 의미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아마 이 질문의 대답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여러분의 선택과 행적이 말해줄 테지요.


역사라는 긴 시계열 안에서 여러분이 역사가라는 사명으로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닌다면 좋겠습니다. 때론 관찰자로서, 때론 당사자 또는 참여자로서 말이지요. 한 사건을 두고도 관찰자일 때와 당사자일 때는 발 딛고 선 곳이 다르고 바라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이때, 책임이라는 무게도 달리 다가올 겁니다. 관찰자의 처지에서는 왜 저렇게 무책임하냐고 쉽게 따져 물을 수 있는 일이 당사자라면 완전히 다르게 느낄 거란 말입니다. 사필귀정의 ‘정(正)’의 의미는 그때 여러분이 하는 저마다의 ‘행동’으로 증명될 겁니다.


볏집 방화사건을 일으켰던 모범생 소녀의 이야기를 마저 해드리겠습니다. 소녀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나요? 마치 불에 탄 자리처럼 소녀의 마음도 겨우내 검게 타들어 갔습니다. 들키면 어쩌나 전전긍긍, 남의 밭과 동네 언덕에 불냈으니 그 죄책감은 또 어땠을까 말이죠. 봄이 오고 검게 그을린 자리는 다시 초록이 되어 소녀가 감춘 진실을 덮었어요. 소녀는 다짐합니다. 다시는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요. 그 후로 소녀는 누구보다 성실한 모범생으로 살았다네요. 어떻게 아냐고요? 나중에 그 모범생 소녀와 결혼한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그리고 그 소녀를 꼭 닮은 아이가 지금 제 앞에서 책이 되기 전의 『사건 사고로 보는 조선통신사』 원고를 읽고 있습니다.



5. 조선통신사 배가 홀라당 탔다!


1748년 사행 때야. 통신사를 태운 배가 2월 16일 쓰시마 악포란 곳으로 들어갔어. 통신사 배는 대체로 통신사의 세 사신인 정사, 부사, 종사관이 각각 배 한 척씩에 올라타고, 그를 따르는 예물선으로 구성돼. 그러니 보통 사행선은 6척 남짓한 거지. 하여튼, 통신사가 악포에 머물던 2월 21일 새벽, 부사의 배가 불길에 휩싸인 거야. 그런데 좀 의아한 일이 하나 있어. 통신사가 일본을 다녀온 뒤 사신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적어 조정에 보고해야 하거든. 그런 종류의 글을 ‘사행록’이라 해. 하지만 희한하게도 통신사 사신이 적은 사행록에는 화재가 일어난 까닭을 써놓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통신사 배가 불에 탄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건 쓰시마에서 기록한 자료에 있기 때문이야. 그것을 보면 통신사의 배가 불에 탄 까닭을 그나마 자세히 적어놓았거든.


“우리가 보낸 술을 마시고 조선의 하관이 취했을 때, 촛불이 배 안의 도롱이로 옮겨붙어 부사가 탄 배가 홀라당 다 타버렸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게. 통신사절단은 부산에서 여러 날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일본으로 향하는 뱃길에 나섰어. 혹시라도 바람이 심하게 불지는 않을까, 행여 배가 뒤집히지는 않을까 조바심을 치면서 나선 뱃길이야. 하지만 바다 신이 굽어살피신 덕에 다행스럽게도 쓰시마까지는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어. 쓰시마에 닿으니 쓰시마에서는 험한 바닷길을 헤쳐 오느라 애썼다며 맛나게 빚은 술과 입에 쩍쩍 달라붙는 안주를 많이 보내 왔지. 술과 음식을 신분이 높은 사신은 물론이고, 가장 낮은 신분인 하관 즉, 풍악수나 뱃사공에게도 나눠 준 거야. 그러니 배꾼으로선 긴장을 풀고 실컷 먹고 마실 수 있었나 봐.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러다 술에 거나하게 취하게 된 거고. 그런 상태에서 촛불을 다루다 그만 짚으로 된 도롱이에 불이 붙고, 불어오는 밤바람을 타고 배 전체로 불이 옮겨붙었을 거야.


하지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나 사신이 타고 간 배가 홀라당 타버렸다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잖아! 아무리 힘들게 바닷길을 건넜다 해도 다음 날 일정이 있을 것이고, 국서 전달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마친 것도 아니잖아. 심지어 조선을 떠나 이제 막 사행을 시작할 참인데 말이야. 뭔가 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 않니? 그런데 실제로 이 사건에는 살짝 의심쩍은 게 있거든. 자, 아래 이야기를 듣고 잘 생각해 봐.


“지난 사행 때 통신사 사신 가운데 가장 높은 사신인 정사가 사행을 잘 이끌지 못해 무관이 제멋대로 움직였고, ‘일부러 부사가 탄 배에다 불을 질러 조정을 속였다’란 사람도 있다.”


이 글은 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통신사를 비판한 말 가운데 하나야. 이에 따르면 사행을 이끈 정사 홍계희(1703~1771)가 사절단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음을 알 수 있어. 또, 아랫사람 또한 윗사람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음이 드러나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게다가 만약, 위에 소개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건 엄연한 범죄행위잖아. 그렇다면 마땅히 배에 불을 지른 범인을 찾아내 엄벌하여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우리 사신의 기록에는 사행선이 불에 탄 이유가 기록되지 않은 걸까? 결국, 애꿎은 사람만 죽고, 재산만 피해 본 거잖아. 아무튼, 의문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거든.


“일본 뱃사람은 흐트러짐 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 조선의 수행원은 대체로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았다.”


이 말은 당시 통신사절단으로 다녀온 종사관 조명채(1700~1764)가 한 말이야. 적어도 이런 대목을 살펴보면 사행선이 불에 탔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통신사의 기강에 문제가 있었음은 틀림없어.


그렇다면 그 당시에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 사이에 어떤 기강의 차이가 있기에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 그걸 한 번 살펴봐야겠지?


“모든 관원과 백성, 뱃사람은 잘 들어라! 만약,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맞이할 때 한 점 흐트러짐이 있다면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통신사가 오면 쥐 죽은 듯 조용히 해서 통신사가 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하라! 걸음을 걸을 때도 살금살금 걸어 통신사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이 점 명심하고 명심해 애꿎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어때? 섬뜩할 만큼 엄한 명령이지? 어느 쪽 말일까? 그렇지. 일본 쪽에서 조선통신사를 맞이할 때 내린 행동지침이야. 명령만 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명령을 어기면 엄하게 처분했어. 그러니 일본인은 상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명령에 잘 복종한 거야. 하지만 조선은 좀 달랐어. 조선 수행원은 일본에서 볼 때 손님 처지인 데다 설령, 잘못을 했더라도 몇 대 맞으면 그만이거든. 그러니 조선 수행원과 일본 수행원 사이에는 기강이 무척 달랐던 거야. 규율이 엄격했던 일본과 규율이 느슨했던 조선의 차이지.


물론, 단순히 그것만 비교해서는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른지를 판가름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사람은 때에 따라선 어느 정도 규율을 잘 지킬 때 행복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선 어느 정도 자유로울 때 능력을 더 잘 발휘하기도 하니 말이야. 그러니 규율의 엄한 정도를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는 없지.


다만, 여기서 규율을 생각해 보자는 것은 규율의 차이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기준으로 삼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행선에 불이 난 까닭 중 하나로 규율도 포함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해 보자는 거야. 규율이 엄하면 기강도 엄할 것이고, 그러면 아무래도 처음부터 술에 취해서 행동하는 일은 없었을 것 아냐? 그런 걸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한번 짚어보자는 거지.


또, 당시 조선의 근무환경도 무시할 순 없어. 요즘도 직장인의 경우 임금이나 근무환경에 아주 민감하잖아. 그건 그때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당시 통신사 하관에 대한 처우와 관리가 어땠는지도 알아보면 좋겠지?


사실, 일본으로 떠나는 통신사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정사, 부사, 종사관도 일본으로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일단 다녀오면 그 대접은 나쁘지 않았어. 사행 중에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사행 후에 고생한 만큼 그 대가를 충분히 받았거든. 그렇다면 지위가 낮은 사공은 어떨까? 그들도 마찬가지였어. 사행을 마치면 정사와 부사, 종사관이 나눠 준 재물, 일본으로부터 받은 재물 등을 합쳐 수익이 짭짤했다고 전해져. 정사와 부사, 종사관 등은 자기가 가진 재물을 대개 사행을 마칠 때 아랫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했거든. 또한, 일본 현지에서도 대접이 융숭했으니 사실 임금이나 근무환경은 큰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돼.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안 가지? 왜 통신사 사행에서 규율이 잡히지 않았을까? 그것이 또 하나의 의문점이야.


그 외, 사행을 떠날 당시 분위기는 어땠는지, 대한해협을 건너 쓰시마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도 따져보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 그러나 그런 점까지 굳이 짚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행 시작부터 배에 불이 났다는 것은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지?


아울러 그렇게 중요한 배가 순식간에 홀라당 타버렸다면 ‘그 불을 끄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화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졌는지?’ 따위를 낱낱이 따지고, 뚜렷이 밝혀야 하잖아? 그런데 사행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난 사건이라 그런지, 정사나 부사가 사행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탓이라 그런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의문을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히지 못했어. 사실 불난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야.


자, 안타까움은 이쯤에서 덮어두고 다시 불에 탄 사행선으로 돌아가 볼까.


그나저나, 부사 배에는 사람도 많이 탔을 것이고, 일본 쇼군에게 갖다 줄 예단도 제법 많았을 텐데 그건 다 어떻게 됐을까?


“일꾼 셋이 불에 타 죽고, 화상을 입은 사람도 열이 넘습니다! 그리고 인삼 72근, 하얀 무명 20필, 부용향 310매가 다 타버렸습니다!”


거봐. 공연히 죄 없는 사람만 목숨을 잃거나 화상을 입었어. 재산상 피해도 어마어마하고. 이런 보고를 들은 통신사 세 사신은 앞이 캄캄해. 하지만 뭐 어쩔 수 있어? 정신을 차린 사신은 부랴부랴 조정에 연락해서 도움을 청해. 그러자 이번에는 조선 조정에 비상이 걸렸어.


“통신사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는데, 부사가 탄 사행선이 불에 타 버려 사람도 여럿 죽고 예물도 다 잃었다 합니다. 당장 쇼군에게 보낼 예단이 문제라 합니다. 무엇보다 인삼이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뭐요, 그게 사실이오? 어허, 이런 낭패가 있나. 그런데 인삼이라면 호조가 관리하니 그쪽에서 잘 알 것 아니오? 그래 인삼은 어느 정도나 남았소?”

“안타깝게도 호조에 남은 인삼이라곤 겨우 10근뿐입니다. 심마니를 시켜 인삼을 캐라 하더라도 지금은 인삼을 캐는 철이 아니어서 그것도 어렵습니다!”

“어허, 이를 어쩐다. 할 수 없지. 그럼 대궐에서 쓰려던 인삼이라도 보냅시다!”

“그건 아니 됩니다. 어찌 전하가 쓸 인삼을 함부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인삼을 캐는 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돈만 제대로 쳐주면 70근 정도는 모을 수 있습니다. 대신 은자가 1만 5천쯤 필요합니다만…….”

“뭣이라, 은자 1만 5천? 어허, 이거 조정의 재정이 바닥나겠구먼, 바닥나겠어!”


결국, 조정에서는 일본에 추가로 보낼 예단이며, 인력을 서둘러 마련해 보냈어. 그것으로 통신사 사행은 다시 이어지지만 아무래도 씁쓸한 뒷맛이 남지.


사행선이 불타버린 이 사건은 세월이 흐르며 점점 기억에서 사라졌어. 하지만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새삼 떠올릴 필요가 있지. 왜냐하면, 지금이라도 그때 일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거든! 첫째, 실수로 그랬건 일부러 그랬건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까닭이나 배경은 무엇인지 뚜렷이 밝히는 것을 배워야 해. 둘째,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를 줄이려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일을 처리했는지 따위를 바르게 배워야겠어. 셋째, 어떤 일에 대한 뒤처리를 다 끝낸 뒤 그 일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가 분명히 지는 것도 배워야 할 거야. 이건 마땅히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책임이 무겁다 할 수 있겠지!


이런 기준에 따라 다시 통신사 일행이 탄 배가 있는 그 당시로 되돌아가 몇 가지만 더 궁금한 점, 토론할 점을 생각해 볼 거야.


첫째, 불이 난 까닭은 밤늦도록 술 마시다가 촛불이건, 담뱃불이건 누군가의 실수로 불이 붙었을 거 아냐?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가 일부러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사람도 여럿 있는데 어찌하여 그토록 쉽게 불이 붙을 수 있었을까?


둘째, 일본에서 통신사를 맞이할 때 일꾼까지도 그 숙소가 마련돼 있는데 왜 하필이면 한밤에, 그것도 배 안에 배를 지키는 사람 말고 그리도 많은 사람이 같이 있었을까? 게다가 일본 사람도 한데 섞여 있었다는데?


셋째, 실제로 쓰시마 사람은 우리랑 달리 불이 난 과정을 훤히 알고 있잖아! 그렇다면 일본 사람은 왜 불이 나는 걸 막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불이 일어난 과정이나 까닭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지 않니?


넷째, 당시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선뜻 나선 이가 없다는 것도 문제야. 정사나 부사, 종사관 그 누구도 자기 책임이라며 썩 나서지 않았거든.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고민해 보면 조선통신사의 미스터리인 사행선 화재 사건을 좀 더 소상히 밝힐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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