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쪽 오랑캐를 일본 조총으로 맞서라!

by 구경래

생각하기)


흔히 역사에는 ‘만약에 ~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이 없다고 해요.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만약, 그때 비단이나 인삼을 팔아서라도 조총을 많이 사 왔더라면 조선과 중국,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조선이 조총부대로 청나라군대를 막을 수 있었다면 조선과 중국의 역사도 많이 바뀌었겠죠? 또, 조선이 앞선 일본의 조총기술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익혔더라면 조선과 일본의 역사도 많이 달라졌겠죠? 결국, 조총을 둘러싼 이 외교 활동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크게 뒤바꾼 셈이에요. 하여튼, 나라의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실리와 명분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겠죠? 오늘날에도 이처럼 실리와 명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 이 세상에는 비일비재해요. 그렇다면 북한 핵 문제나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남북관계 그리고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한일관계와 한러관계가 민감하게 돌아가는 지금, 우리는 실리와 명분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실리와 명분 외 또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

생각 셋)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뭔가요? 신라면? 진라면? 아니면 불닭볶음면이나 짜장라면? 저도 라면을 매우 좋아하는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그때 그걸 했었더라면(혹은 하지 않았더라면)’입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이번 글은 가벼운 유머로 시작해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이런 생각 자주 하지요? ‘그때 이런 말을 했다면, 그날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것 말고 저걸 골랐다면…….’ 우리 삶을 돌아보면 작은 일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숱한 ‘라면’들로 꼬리에 꼬리를 물지요. 그런데 사실 역사학자들도 이 ‘라면’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영어로 if, 가정이라고 하는 걸 말이죠.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면 안토니우스가 그 미모에 현혹되어 아내를 버리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처남인 옥타비아누스와 전쟁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악티움 해전에서 패배하여 자살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클레오파트라가 우연히도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확대하면 역사에서 필연적인 법칙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모두 헛수고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유시민, 푸른나무, 개정판 p176


역사상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건들일수록 우리는 그 사건 사이마다 끼어든 우연이라는 불청객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잘 알려진 사례 하나만 더 보태볼까요?

「‘지금 당장.’ 독일의 통일은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한 실수였습니다. 동독의 여당 관계자가 주민 여행 자유화 조치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동독 주민이 서독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죠. 언제부터냐고 묻는 기자들 질문에 당황한 그는 즉흥적으로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했고 ‘베를린 장벽 무너지다’라는 속보가 전 세계로 타전됨과 동시에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습니다.」

『JTBC 뉴스 앵커 브리핑』, 손석희, 2017.5.23.


어떤가요? 만약, 동독의 한 정치인의 말실수가 없었다면 독일은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한반도처럼 여전히 동서로 분단된 국가로 남아있을까요? 역사의 우연과 필연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머리에 두고서 세 번째 사건을 살펴봅니다.


임진왜란을 거치며 나라 힘이 약한 사정인데 명나라보다 더 강성해진 여진을 적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네요. 그렇다고 중화 문화의 정통성을 가진 나라로 사대의 예를 갖추어 온 데다가 임진왜란 때 파병하여 도움을 준 명나라와의 신의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단단하고 오랜 ‘명분’이군요. 현실은요? 여진은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워 이미 명나라를 충분히 치고도 남는 힘을 가졌습니다. 명분을 쫓다간 당장 조선부터 날아갈 판이네요. 먼저 살고 볼 일이지요. 나라의 명운이 달린 ‘실리’입니다. 당시 왕이던 광해군은 이른바 중립외교로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고 했던 거겠죠. 그걸 꼬투리 삼아 당시 주도권을 노리던 서인이라는 당파가 반정을 일으켰고요. 명나라와의 신의가 자신들 임금과의 신의보다 더 높게 받들어야 할 명분이었단 거네요. 자세한 건 광해군의 일생과 인조반정을 따로 공부하면서 권력(실리)를 두고 벌이는 목숨을 건 명분 싸움을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식의 권력다툼이란 게 지금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잖아요.

이제 명나라와의 사대를 더 중요한 명분으로 삼은 당파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다 죽어가는 명나라를 도와 북쪽 오랑캐인 여진을 물리치면 되겠네요. 힘의 적고 많음과 상관없이 이제 그들에게 명분과 실리가 한편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엉뚱한 명분이 이를 가로막습니다. 역사로 보나 문화로 보나 왜놈이라고 업신여겨 온 일본한테 호되게 당했잖아요. 그런 신의도 없는 적국한테 조총을 비싸게 사와 조선의 국방을 튼튼히 하는 건 또 명분에 어긋난다는 거지요. 자존심인가요, 체면 때문인가요? 여기서 내세우는 명분은 궁색해 보이지요. 반정에 성공하고 조정을 장악한 인조와 서인 세력이 정세를 보는 안목에서 알고도 눈감은 것이라면 직무 유기인 셈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일 테니 어느 쪽이라도 지도자로서 실격인 셈입니다. 결국, 조선은 다시 전쟁에 휩싸이고 정묘호란을 거쳐 병자호란 때는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지요.


「조선 왕이 말에서 내렸다. 조선 왕은 구층 단 위의 황색 일산을 향해 읍했다. 멀어서 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단 위에서 칸이 말했다. 말은 들리지 않았다.

정명수가 계단을 내려와 칸의 말을 조선 왕에게 전했다.


“내 앞으로 나오니 어여쁘다. 지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 나는 너와 더불어 앞일을 말하고자 한다.”


조선 왕이 말했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 중략 ……


조선 왕은 오랫동안 이마를 땅에 대고 있었다. 조선 왕은 먼 지심 속 흙냄새를 빨아들였다. 볕에 익은 흙은 향기로웠다. 흙냄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아득한 날들이 흔들렸다. 조선 왕은 이마로 땅을 찧었다.」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삼배구고두례.’ 청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모두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예입니다. 처음에는 반합(임금의 두 손을 묶은 다음 죽은 사람처럼 구슬을 입에 물고 빈 관과 함께 항복하는 의식)을 요구했다가 청에서 사정을 봐준 게 이 정도라 하니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지요.


지난번에 일곱 마리 쥐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고양이 얘기를 해볼까요. ‘흑묘백묘론’이라고 들어봤나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냉전 시대였던 1979년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미국을 다녀온 뒤 지방의 오래된 속담을 인용하면서 꺼낸 말이지요. 이후 중국은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 오늘날 1인당 GDP 기준으로 미국 다음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현실 안에서 실리를 맨 앞으로 내세워 대업에 성공한 사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겠지요.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게 외세(당나라)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사례가 아닐까요? 물론, 신채호 선생이 『조선상고사』에서 밝힌 것처럼 신라의 통일로 한반도 아래로 축소된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중국의 나라들과 대륙을 두고 경쟁하던 고구려의 영토까지 아우른 시각으로 보자면 달리 평가되는 일이지만 말이지요. 계속해서 확인하는 바대로 하나의 역사 사실을 가지고도 다양한 시각과 의미를 담을 수 있기에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가 눈먼 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는 게 좋겠지요.


이제 오늘의 주재료인 라면을 끓여볼 시간입니다. 만약, 일본에서 조총을 많이 들여왔다면, 그보다 앞서 만약, 인조반정이 실패하여 광해군의 현실을 헤아린 외교로 조선이 나아갔다면, 삼전도의 굴욕은 없었을까요? 또한, 명나라는 멸망하지 않고 여진이 세운 청나라도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의 역사와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을까요?


먼저 광해군 시대와 이후 반정으로 권력을 잡은 인조와 서인의 시대를 잠깐 들여다봅니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부터 권력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사화가 이어지는 조선입니다. 남인과 서인, 대북이니 소북이니 하는 자신의 이익과 명분으로 갈라진 당파 싸움은 형이든, 어린 동생이든, 임금이든 죽이고, 폐위시키는 그들만의 피비린내 나는 리그입니다. 명을 위협할 정도로 세력을 키운 후금의 성장과 히데요시의 죽음 후 도쿠가와가 다시 전국을 통일하고 힘을 키우는 일본과 상대해야 할 조선의 지도자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던가요? 임진왜란 후 화마가 지나간 땅을 다시 일구어야 하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은 그들이 권력을 두고 싸우면서 내내 입에 올리는 명분 가운데 어디에 자리하느냔 말이지요.


뿌리 깊은 중화사상으로 자신 외 주위 나라나 민족을 변방 오랑캐라 업신여기며 으스대던 명나라는 또 어떤가요. 임진왜란 때 이미 명은 ‘만력제’라는 황제가 나랏일을 돌보지 않고 환락에 빠져 자금성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고 하지요. 환관들이 왕 노릇을 하기에 이르렀고요. 왕권이 약해지자 우리나라처럼 당쟁과 권력을 잡은 세력이 저지른 부정부패와 온갖 패악으로 국운이 이미 기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이 겪은 굴욕과 명의 멸망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일어났을 필연이 아닐까요?


「역사에서의 우연이라는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실제로 역사가들이 작업해 나가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 중략 …… 역사가는 자기가 관찰한 수많은 사실의 산더미에서 쓸데없는 것은 버리고 의미 있는 것만을 골라 합리적인 인과관계로 이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인과관계의 사슬이 바로 역사이다. 역사에서의 우연한 사건이란 이러한 인과관계의 사슬을 단절시키는 사건, 다시 말해 다른 역사적 사실과 합리적인 인과관계를 맺지 않는 사건을 말한다.」

유시민 작가의 같은 책, 209~210p


끝으로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재료로 라면을 끓여볼 시간입니다. 이 라면은 눈물이 쏙 나올 만큼 매울 수도,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국물처럼 싱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필연은 어떤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났나요? 당신이라는 사건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가고 있나요?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3. 북쪽 오랑캐를 일본 조총으로 맞서라!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은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어. 왜냐고? 북쪽에 자리한 여진족의 움직임이 심상찮았거든. 그게 왜 고민이냐고? 예로부터 이웃한 땅에 강한 나라나 민족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거든. 그러니 보통 문제가 아니지. 일본의 힘이 세지면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중국의 힘이 세지면 중국의 침략을 받았잖아? 그런데 이번엔 여진족이 점점 만주에서 힘을 키워가고 있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렇지! 언제 여진족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조선은 여진족에 대한 대책을 마땅히 세워야 했어.

“장군! 아직 우리는 여진족의 기마병을 물리칠 방도가 없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겠소?”

“대감! 여진족 기마병의 공격을 물리치려면 마을을 버리고 산성으로 옮겨 싸우면 됩니다. 산에서는 말이 힘을 쓰지 못하는 데다, 뛰어난 활이 우리한테 있으니 능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위력을 보인 일본의 조총을 가져와 싸우면 물리칠 수 있습니다!”


조총은 1543년 포르투갈 사람이 일본 규슈 남쪽 다네가시마로 가서 화승총 두 자루를 전한 데서 비롯된 거야. 때마침 일본은 그때 여러 다이묘가 서로 죽기 살기로 다투고 있던 전국시대였어. 그래서 다이묘들은 손재주가 괜찮은 대장장이를 시켜 화승총을 본떠 만들도록 했는데, 이 화승총이 ‘다네가시마총’이라는 이름으로 사카이(오사카 옆에 있는 무역항) 상인을 통해 일본 곳곳으로 퍼지게 돼. 이 조총의 덕을 가장 크게 본 일본 다이묘가 있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오다 노부나가(1534~1582)’야!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부대를 만들어 기마병 전술을 주로 쓰는 다이묘를 무릎 꿇렸어. 그러니 일본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기마병을 무찌를 수 있는 부대를 양성해온 셈이지. 이렇게 조총을 바탕 삼은 전술로 무장한 오다 노부나가는 마침내 일본을 통일하는 기틀을 다지게 돼.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군은 명장이라고 일컬어지던 신립(1546~1592) 장군을 비롯해 여러 장수가 왜군의 조총 앞에 맥없이 무너졌어. 그런 터라 조선에서는 여진족의 기마병이 제아무리 강하더라도 일본 조총으로 맞서면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지. 사실 여진족은 임진왜란 때도 큰 위협이었거든. 오죽했으면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에도 여진족이 사는 마을에 첩자를 보내 그 움직임을 샅샅이 살펴보고 왔겠어? 아무튼, 상황이 이러니 1607년 ‘회답 겸 쇄환사’로 일본에 간 사절단은 일본의 사정을 살펴보고 피로인을 데려옴은 물론 새로운 임무를 하나 더 떠맡게 된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에 가서 조총을 많이 구해 와야 북쪽 여진족의 기마병에 맞설 조총부대를 만들 수 있소! 알다시피 임진왜란 전후에 본래 일본인이었으나 우리 조선의 백성이 된 향화왜인이 있잖소. 그들 중에 조총을 만든 경험이 있거나, 조총을 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있으나, 아직은 일본에서 만든 조총이 더 뛰어나다 하오. 그러니 일본 조총을 소문나지 않게, 최대한 많이 구해 와야 할 것이외다!”

한편, 명나라도 이미 조총 비슷한 무기가 있었거든. 그런데 왜 조선에 그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황제 폐하! 조선 또한 오랑캐의 나라이옵니다. 만약, 조선에 총포 생산법이나 화약원료인 염초제조법을 알려준다면 이는 오랑캐의 힘을 키우는 결과가 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가르쳐 주지 말아야 하옵니다!”


사실 오늘날도 그렇잖아. 우리가 암만 우방이니, 혈맹이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니 하고 떠들어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나 러시아가 자기 나라의 최고 무기를 우리한테 쉽게 줄 리가 없지. 그건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조선은 일본을 통해 조총과 염초제조법을 받아들이려 한 거지.


실제로 광해군(1575~1641) 때인 1617년에 일본으로 회답 겸 쇄환사를 보냈을 때는 조총을 어느 정도 구해왔어. 물론,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1623년 광해군이 쫓겨나고 인조가 즉위했지. 때마침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새로 쇼군이 된 거야. 그래서 서로 축하 인사도 나눌 겸 1624년에 일본으로 회답 겸 쇄환사가 떠나게 된 거지. 하여튼, 1624년 회답 겸 쇄환사도 당시 사정에 따라 처음엔 조총을 많이 구하려 했대.


“대감! 광해군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와 명나라가 다투는 데도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지 않소? 명나라는 어버이의 나라이고,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이참에 광해군을 내쫓고 새로운 임금을 세우도록 합시다!”

“어허, 거 참! 어쩌면 장군은 내 뜻과 그리도 똑같소이까? 빨리 뜻이 맞는 사람을 더 모으도록 합시다!”


1623년(광해군 15년), 조선의 당파 중 하나인 서인의 이귀(1557~1633), 이괄(1587~1624) 등이 주도해 새로 인조를 용상에 앉힌 사건이 발생해. 이름하여 인조반정이야. 인조반정의 결과 광해군은 임금 자리에서 쫓겨나고 조선의 외교는 ‘명나라를 따르고 청나라를 물리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돼.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길까? 맞아, 새로 힘이 막강해진 청나라가 조선을 곱게 볼 까닭이 없지. 그래 청나라는 명나라를 치기 전에 조선부터 치겠다고 단단히 벼르게 됐어. 사정이 이렇게 되자 조선은 남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일본과 평화롭게 지낼 필요가 있었지. 그러니 겸사겸사 서둘러 일본으로 사절단을 보내게 된 거야.


“전하! 비변사의 주장에 따르면 명나라로 가는 사은사에게는 화약을 만드는 원료인 염포를 사 오도록 하고, 일본으로 가는 사신에게는 비단 수천 필을 팔아서 조총 수천 정을 사 오도록 해 경기도 군사를 조총으로 무장하자고 하옵니다!”

“전하! 그렇지 않아도 북쪽 국경에서 조총을 더 사 오라고 보채고 있고, 때마침 명나라 장수 모문용(?~?)까지도 여진족의 위협을 물리치려고 조총을 구해달라 합니다. 게다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을 겪으면서 병기도감에 있던 무기가 다 흩어졌기 때문에 당장 병사들이 싸울 무기조차 구하기가 어렵사옵니다!”

“전하! 게다가 쓰시마의 심술도 여간 아니니 이번에 조총을 왕창 사 오는 것이 옳을 성싶사옵니다. 우리가 조총이 모자라는 것을 안 쓰시마가 글쎄 조총 1백 정을 달랑 보내주고는 그 대가로 인삼을 무려 5백 근이나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조총을 많이 사 오라 함이 가당하옵니다!”

“전하! 당치도 않사옵니다! 부모의 나라인 명나라로 가서 무기를 거래하거나 무역하는 것은 괜찮지만, 원수의 나라이자 오랑캐의 나라로 가서 무기 거래를 한다면 섬 오랑캐가 우리 조선을 깔보게 되므로 이는 옳지 못한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 가서 조총을 사 오자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이옵니다! 통촉하옵소서!”

이처럼 통신사 파견을 앞두고 조총 문제로 조선 조정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어.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지. 결론은 일본에서 조총을 사지 않기로 했어. 그 바람에 인조 때인 1624년에 떠난 회답 겸 쇄환사는 조총을 아예 구하지도 못했지. 그나마 광해군 때인 1617년에 일본으로 떠난 회답 겸 쇄환사는 조총을 얼마라도 사 왔지만, 워낙 그 양이 적어서 조선의 국방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어. 그 결과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나 마나지, 뭐. 조선은 청나라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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