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쓰시마 사람은 예로부터 장사와 이재에 눈이 밝았다고 해요. 그러니 조선과 일본의 국가적 행사인 통신사 호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실제로 통신사 행렬을 책임지고 끝까지 호위하는 건 쓰시마예요. 그래서 쓰시마의 지도자는 통신사의 방문을 빌미로 온갖 돈벌이에 혈안이 되었지요. 이탈리아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프란체스크 알베로니는 『지도자의 조건』이란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지도자에 대한 구분을 제시했어요. ‘창조적 기업가형 지도자’는 원대한 계획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예요. ‘직업 정치인형 지도자’는 높은 자리를 꿰차고 권위를 누리는 데 권력을 추구하는 지도자예요. 이런 구분은 우리 사회 여러 분야의 지도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기 둘레나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서 ‘창조적 기업가형 지도자’와 ‘직업 정치인형 지도자’로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그런 사람의 장단점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토론을 즐기는 건 어떠세요?
생각 아홉)
통신사 방문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에 오간 힘겨루기와 저마다의 정치적 셈은 뒤로하고요, 긴 여정 끝에 드디어 에도에 도착한 조선통신사 일행입니다. 이번 글에선 당시 통신사의 장엄한 행렬과 이를 보기 위해 몰려나온 에도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 남아 있는 사료, 사절단이 남긴 기록들로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지요.
대개 인류 역사를 말할 때 문자 기록이 남아 있느냐, 없느냐로 선사(先史)시대와 역사(歷史)시대로 구분하잖아요. 인류의 역사가 곧 기록의 역사인 만큼 기록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길(道)이기도 합니다. 제가 사는 수원에도 기록의 가치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어요. 사건 하나를 잘 기록한 덕분에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해마다 마음만 먹으면 그 행사를 구경할 수 있거든요. 물론, 책으로도 언제든 접할 수 있고요. 바로 『원행을묘정리의궤』입니다.
「대체로 배다리의 제도는 한복판이 높고 양쪽은 차차 낮아야만 미관상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실용에도 합당하다(작은 배는 얕아야 하고 큰 배는 깊어야 한다). 높고 낮은 형세를 살피려면 먼저 선체의 높낮이를 산정해야 한다. 가령 중앙에 있는 ‘갑’이라는 배의 높이가 12자라면(2발로 계산한다), 좌우에 있는 ‘을’이라는 배의 높이는 11자 9치가 되며, 그 좌우 ‘병’과 ‘정’의 배 또한 각각 몇 푼 몇 치씩 점차 낮아지게 함으로써 층차가 현저히 다르게 하지 말아야 한다.」
『정조, 어머니와 원행을 다녀오다』, 김흥식, 태학사, 2022
원행을 나온 왕과 그의 어머니를 모신 일행이 한강을 건너야 하는데요, 긴 행렬이 안전하면서도 품위 있게 건너기 위해 배를 이어서 만든 다리가 ‘배다리’입니다. 의궤에 기록된 배다리에 관한 부분을 일부 가져온 건데요, 이렇게 정확히 남긴 기록 덕분에 그 많은 인원이 어떻게 한강을 건넜는지 미루어 짐작할 뿐 아니라 오늘날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있지요.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은 1797년(을미년)에 사도세자의 능을 찾은(원행) 회갑연 행사를 당시 정리소(책을 준비하고 펴낸 곳)에서 날짜별로 자세히 기록한 책(의궤)입니다. 이 책에 기록된 걸 바탕으로 매년 수원에서는 ‘정조대왕 능행차’라는 이름으로 원행을 재현하고 있지요. 경기도에서는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을 거쳐 화성 융릉까지 이어지는 이 행차를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려고 준비 중이라네요. 능행차의 일정과 과정은 물론, 세부 예산, 원행에 참여한 사람 수부터 동원한 말과 사용한 가마의 수까지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그 가치가 충분하거든요.
앞에 말한 배다리를 만들어 한강을 건너는 장면도 김홍도가 한 폭의 멋진 그림으로 남긴 덕에 배다리도 얼마든지 되살리는 것이 가능했고요. 한국 전쟁을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무너졌다가 근래에 복구한 수원 화성도 당시 성을 쌓을 때 전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경험이 있어요. 이처럼 이런저런 까닭으로 사라진 유형, 무형의 문화재도 기록만 제대로 남아 있다면 오늘날 다시 만들거나 되살린다고 해도 역사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는 셈이지요.
조선통신사의 여정은 정조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원행에 비하면 훨씬 더 길고 멀었잖아요. 두 나라의 공식 기록만으로 그때 일을 모두 다 생생하게 되살리긴 어렵겠지요.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듣고, 겪은 개인 기록들이 남아 있다면 이런 공백을 채워줄 수 있을 텐데요. 책에서도 언급했어요. 나가사키에 살던 네덜란드 상인의 기록 같은 거 말이에요. 나라에서 공식으로 펴낸 역사 못지않게 개인의 시각이 담긴 이러한 기록들은 빛바랜 과거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지요. 이렇게 시간을 견뎌 살아남은 기록들은 오늘날 되돌아볼 때 얼마나 귀한 사료인지 모릅니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할아버지는 더 이상 풍선들을 꼭 붙들고 계시지 않아요.”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어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단다.”」
『기억의 풍선』, 제시 올리베로스 글, 다나 울프카테 그림, 나린글, 2019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의 한 장면입니다. 아마 소년의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모양이지요. 여기서 풍선은 사람들의 기억, 소중한 추억을 의미해요. 주인공 소년은 할아버지의 풍선이 하나씩 날아가는 게 속상합니다. 할아버지는 해지는 강둑에서 소년과 함께 낚시했던 기억의 풍선마저 놓아버리지요. 이제 할아버지의 풍선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요.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년이 자신한테 새로 생긴 풍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려줍니다.
아무리 소중한 기억도 붙잡고 있지 않으면 놓아버린 풍선처럼 저 멀리 날아가 사라져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할아버지가 기억의 풍선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소년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을 테지요. 여기서 이야기는 바로 기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주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기억의 풍선’이 날아가 버리기 전에요. 나라에서 벌어지는 큰일도 좋고, 자기 동네, 혹은 우리 가족의 특별한 날에 일어난 일도 좋습니다. 기록이 계속 쌓이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자산이 없거든요. 시간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고들 하지만, 기록을 통해서 모아둘 수는 있어요. 자세히 묘사할수록, 글이 진실할수록, 기록해 둔 그 시간의 가치는 훗날 더 빛날 테지요. 돈을 저축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을 저축하는 편이 지금 우리한테는 더 쉽고 의미 있는 일일 거예요.
자, 다시 에도에 들어간 조선통신사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국서를 전달하는 의례를 볼 참입니다. 통신사 삼사는 물론 따르는 사람들의 복장부터 시작해서 성문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는 예법을 보면 서로 하나하나 여간 신경 쓴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어요. 일본의 최고 권력자인 쇼군을 만나 조선 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과정은 서로 미리 약속한 그대로를 따라야 해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러한 절차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지키려고 애쓰는데요, 이를 보통 의전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번거롭고 돈이 많이 드는 의전을 예나 지금이나 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의전(儀典)이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를 뜻해요. 여러분도 학교에서 여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에 참여해 본 적 있지요? 보통 연차가 있는 부장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식순에 따라 사회를 보잖아요. 교장 선생님부터 학부모 대표, 행사를 축하하러 오신 손님(내빈)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지요. 여는 말(개회사)를 하고, 국민의례, 순서에 따라 축하의 말을 이어서 하고요. 누구를 부르고, 어디에 앉고, 어떤 순서로 말하는지 따위가 모두 의전에 포함되지요. 한편, 따분한 행위일 수도 있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그런 의전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의전이 바로 왕이나 대통령이 움직이는 행사일 거예요.
「전통적으로 대통령 의전은 대내외적으로 ‘국가 간 또는 조직 및 개인 간 서열을 정하고 조직화하여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정무 및 정책적 기능뿐 아니라 행사 기획 및 집행을 통한 홍보 기능을 포함해 ‘총체적 행동 양식의 기획 및 집행’이라는 종합적 행위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의미에서 대통령 의전은 대통령의 이미지 형성 및 홍보를 포괄하는 PI(President Identification)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
『대통령 의전의 세계』, 김효겸, 알에이치코리아, 2013
어려운 말이지요? 핵심만 추리면 의전은 그 자체로 ‘서열을 정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는 거잖아요.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누가 힘이 센지, 약한지가 의전을 통해 다 드러난다는 말이에요. 상대보다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싸우지 않고도 상대에게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거든요. 앞선 장에서 빙례 외교 갈등도 이러한 의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누가 더 힘이 센지 서로 치열하게 다툰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이가 좋고 이해가 얽혀 있지 않다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원만하게 일이 진행되겠지만, 세상사 일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배가 고플 때면 누가 먼저 먹느냐 혹은 많이 먹느냐에 따라 심지어 형제자매끼리도 다툴 수 있습니다.
일본의 최고 권력자 쇼군을 만나 조선 왕의 국서를 전달해야 합니다. 쇼군이 바뀔 때처럼 일본에 큰 경사나 변화가 있을 때 조선통신사가 갔으니까 일본 입장에서는 자칫하면 조선 왕에게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처럼 내비칠 수 있잖아요. 반대로 조선 처지에서는 새로운 쇼군에게 각종 선물을 바치러 간다고 내비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어떤 예물을 어떻게 주고, 누가 어디서 사절단을 맞이하며, 쇼군이 머무는 성에 들어갈 때 예는 어떻게 하고, 조선 왕의 국서는 어떻게 전달하는지 따위의 세세한 절차 하나하나가 서로 약속한 바에 따라 진행되어야 하고, 이는 곧 각 나라의 체면은 물론이요, 실리에도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이 되는 거지요.
오늘날에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의전은 힘의 우열을 드러내거나 권력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한편,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시대에 대통령이 권위와 힘으로만 의전을 앞세우면 국민이 좋아할 리 없겠지요. 따라서 오늘날 의전은 약자를 배려하고 자신을 되레 낮추는 방식을 통해 보통 사람, 서민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이바지하기도 해요. 왜냐하면, 대통령도 결국 우리들의 표로 만들어지니까요. 위에서 말한 PI(President Identification)는 이러한 뜻으로 생각하면 쉽겠지요.
앞으로 학교에서나 나라에서나 어떤 행사에 참석하게 되면 너무 지루해만 하지 말고 누가 어디에 앉고, 어떤 순서로 말하며, 어떻게 인사하는지 따위를 잘 관찰해 보세요. 그리고 왜 저런 형식을 갖출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요, 어떻게 하면 무례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유쾌하게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지 궁리도 해보는 거예요. 대부분 실제 행사의 주인은 앞에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아닌, 그 앞에 앉아서 듣고 있는 여러분일 경우가 많을 테니까요.
9. K-문화의 선조, 조선통신사 행렬!
통신사가 들리는 마지막 도시는 오늘날의 도쿄 곧, 에도야. 에도에 사는 쇼군에게 조선 국왕이 보낸 국서를 전해야 하니 마땅히 에도가 마지막이 될 수밖에. 통신사가 오간 기간은 전쟁이 없던 때라 에도는 도시 문화가 발전했고, 늘 사람들로 붐볐어. 오늘날 도쿄처럼 말이야. 그러니 조선에서 온 통신사를 구경하려고 에도 백성이 몰려든 것은 말할 것도 없지! 일본 바쿠후는 일본 백성이 통신사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함부로 접근하는 것 등은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통신사 행렬은 마음껏 보도록 했어.
왜 그랬을까?
“통신사가 일본을 찾아오는 것은 쇼군 전하가 살아있을 동안 딱 한 번뿐인 크나큰 행사이고, 무엇보다 쇼군에 오른 걸 축하하러 오는 외교사절이니만큼 그 접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통신사 접대에 소홀함이 없도록 여러 번에 명령을 내리고, 통신사가 에도에 닿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백성이 통신사 행렬을 구경해야 합니다! 그러면 통신사에게도 에도의 힘을 보여줄 수 있고, 에도 백성에게도 바쿠후와 쇼군의 권위를 드높이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이제 왜 그런지 알겠지? 사실 통신사 일행만 해도 때로는 오백 명쯤 되거든. 그런데 통신사가 가져온 짐을 나르는 일본 일꾼에다, 쓰시마에서부터 따라온 호위무사까지 합치면 그 인원은 수천이 넘어. 그 많은 사람과 수레가 통신사 삼사를 뒤따르는 거야. 수많은 깃발을 나부끼며 음악 소리에 발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장관이겠지? 그게 얼마나 큰 구경거리였는지는 그 당시의 에도 백성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어.
“자네는 정말 좋은 곳에 자리 잡았구먼. 혹시 집안에 바쿠후와 친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삼촌이 바쿠후에서 일하거든! 일찌감치 길목 좋은 곳에 자리 하나 얻었지! 자네도 올 줄 알았으면 미리 힘을 좀 써 둘 걸 그랬네, 그려!”
에도 백성이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는 데는 한나절이나 걸렸어. 미리 자리까지 잡으려면 하루 내내 길에서 머문 셈이야. 마침, 통신사가 지나는 장면을 적어놓은 기록이 있으니 같이 살펴볼게. 다음 글은 1636년 1월 4일 에도에 와 있던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인이 쓴 글이래. 그러니 조선과 일본의 시선이 아니라 제삼자의 눈으로 통신사 행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조선 사절 두 사람이 통신사 행렬과 더불어 많은 일본 귀족을 뒤따르게 하고, 쇼군이 있는 에도에 도착해 숙소로 향했다. 무용대가 앞서고, 피리와 북의 연주가 있고, 짐꾼 오륙십이 짊어진 가마가 그 뒤를 따랐다. 가마는 붉은 비단 장막으로 둘러쳐 있었다. 잠시 뒤 악기 연주가 시작되었고, 푸른 깃발을 손에 들고 말을 탄 젊은이가 뒤이어 왔다. 끝으로 조선 사절의 예물과 짐을 운반하는 말이 일천 필쯤이나 지나갔다. 이 행렬이 모두 지나가는 데 다섯 시간쯤 걸렸다.”
어때, 대단하지? 사실, 일본인 처지에서 보자면 언제 또 이렇게 조선이란 나라에서 온 외교사절단이며, 빼어난 솜씨를 지닌 무용수, 음악대, 마상재 등을 만나보겠어? 요즘 말로 K-문화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것이나 다름없거든. 그러니 서로 앞다투어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려고 한 게지.
반면, 일본이 아니라 조선의 사신이 본 에도와 에도 백성은 어땠을까? 다행히 통신사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사절단이 남긴 기록도 있으니 그걸 한 번 볼까. 먼저, 1763년 통신사 정사로 일본을 다녀온 조엄(1719~1777)의 말을 들어볼게.
“에도 거리가 구경꾼으로 가득해 마치 사람으로 벽을 쌓은 듯하다!”
표현도 참 멋지지 않니? 사람으로 벽을 쌓은 듯이 인파가 몰린 것을 시적으로 표현했어. 다른 분의 말도 들어볼게. 조엄보다 약 백삼십 년이나 앞선 1636년에 통신사 정사로 나선 임광(1579~1644)이 한 말이야.
“색을 칠한 주렴 자리는 무사의 자리이며, 길 양쪽에는 창과 검을 세우고 무릎을 꿇고 있는 병사가 줄을 지어있고, 길에는 봉을 가진 사람이 열을 지어 늘어서서 구경하는 사람이 함부로 지나갈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임광은 그 많은 인파를 일본에서 어떻게 통제했는지도 자세히 내보였지? 왜, 오늘날도 거리에서 무슨 축제나 행사 같은 게 열리면 경찰관이나 자원봉사자가 안내 지시봉을 들고 도로를 건너는 시민을 통제하잖아. 그것이랑 똑같은 모습이야. 재미난 것은 그 당시에도 길을 통제하는 사람이 배치될 만큼 인파가 엄청 몰렸다는 거지. 오늘날 K-POP 인기랑 딱히 다를 게 없어. 이번엔 시대적으로 임광과 조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1719년에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유한(1681~?)이 쓴 『해유록』을 통해 일본 상황을 살펴볼게.
“구경하는 남녀가 길 양쪽을 가득 채웠고, 무사를 위한 자리도 구경꾼으로 가득 차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오사카나 교토에 견주어 세 배는 넘어 보인다.”
신유한의 말에 따르면 오사카나 교토에서도 통신사를 보려는 행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에도에 비하면 견줄 바가 아니지? 그보다 세 배나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하니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어. 오늘날 도쿄 신주쿠를 떠올리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물밀듯이 오가는지 쉬 알 수 있잖아. 도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본 제일의 도시로 손색이 없으니 구름 인파가 몰릴 수밖에 없지. 신유한의 입을 빌리자면 당시 통신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한 자리 즉, 관람석은 일반 백성을 위한 좌석과 무사를 위한 좌석으로 따로 구분했나 봐. 그런데 신분이 높은 무사 자리까지도 일반 백성이 꽉 메운 것을 보면 통신사만큼 인기몰이에 성공한 K-연예인도 없다 싶어. 당연히 엄청난 인파에 통신사 사신들도 놀란 표정이고 말이야.
자, 이렇게 에도에 닿은 통신사는 수개월 동안 이어진 여독을 풀 겸 며칠을 머물게 돼. 휴식도 취하고, 찾아오는 일본인도 만나면서 한숨 고르는 거지. 그런 다음에 일본과 국서를 전달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종료되고, 국서를 전달할 날짜가 확정되면 일본 쇼군이 사는 에도성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럼, 지금부터 에도성으로 가는 날, 통신사는 어떻게 에도를 행진하는지 알아볼 거니 두 눈 동그랗게, 두 귀 쫑긋하고 잘 들어봐!
국서를 전하는 날이야. 정사와 부사, 종사관 세 사신은 금관과 옥패, 조복으로 옷차림을 단정히 해. 나머지 일행도 마찬가지로 저마다 필요한 복장을 하지. 군관은 마땅히 군복을 입을 테고, 관리나 수행원도 각자 입어야 할 관복을 입고 에도성으로 향하는 거야.
숙소를 빠져나온 통신사 행렬은 에도 시내를 가로질러 에도성으로 향해. 마침내 에도성에 이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게 정문인 오테몬이야. 거기서부터 더욱 엄격한 예법에 맞춰 통신사 행렬이 움직여야 해. 옛날엔 조선이나 중국, 일본 모두 성으로 들어갈 땐 신분에 따라 순서에 맞춰 말이나 가마에서 내렸어. 그다음부터는 걸어서 움직이고. 그러니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말이나 가마에서 늦게 내리는 것이 당시의 예법이야.
정문인 오테몬에 이르면 통신사 관리 중 상관이 말에서 내려야 해. 여기서부터는 행진에 흥을 돋우었던 군악도 멈추는 거야. 관리 중 통신사 하관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기다려야 하고.
이제, 인원이 줄어든 통신사 행렬이 성벽 아래에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성한 큰 못인 해자를 건너 다음 문에 닿았어. 그러면 그곳까지 가마를 타고 온 사람도 내려야 해. 에도성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들어가는 사람 수도 줄고, 가마에 탈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드는 거야.
다시 다음 문에 이르면 당상역관도 내리고, 이윽고 맨 마지막으로 나카고몬이란 문의 돌담 가까이에 가면 통신사 관리 중 가장 높은 세 사신도 수레에서 내려야 해. 그러면 그때 일본 바쿠후의 고위관리인 셋다이부교와 메츠케가 통신사 사신을 맞이하러 와. 그때 국서는 당상역관이 받들고 나아가고.
국서를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는 건물 현관 앞 마루에는 바쿠후의 주요 관리가 모두 나와서 사신을 맞이해. 삼사는 앞장서 가다가 마침내 쇼군이 기다리는 방으로 가서 쇼군을 만날 거야. 요즘도 중요한 행사가 열리면 참석자의 좌석 배치가 미리 다 되어 있잖아. 그때도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가 마주한 광경은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의 실권자인 쇼군 곧 오늘날 일본 총리의 관저에 들어선 거나 진배없지.
국서는 방의 서쪽에 두고, 세 사신은 서쪽을 바라보며 앉고, 쓰시마 영주는 검은 옷을 입고 삼사 옆에 앉아. 그 뒤로 붉은 옷을 입은 여러 번의 다이묘가 왼편으로 줄지어 앉는 거지. 그러면 곧 국서를 전하는 의식인 빙례가 시작되는 거야.
빙례를 마치고 무사히 국서를 쇼군에게 전달한 통신사는 쇼군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한 다음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거지. 요즘도 외국 정상이나 국빈이 찾아오면 오찬이나 만찬을 하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연회까지 마쳤으니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데, 에도성을 나갈 때나 들어갈 때나 그 행렬은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통신사 행렬은 대체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통신사 행렬의 맨 앞에는 장엄한 깃발을 든 젊은이가 성큼성큼 걸어가. 길을 깨끗이 하고, 길에서 물러나라는 ‘청도’ 깃발을 선두로 여러 깃발이 펄럭이는 거지.
그 뒤를 퉁소와 대금, 징과 꽹과리를 앞세운 악대가 따르는 거야. 에도 하늘에 조선의 악공이 연주하는 힘차고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겠지?
이어, 씩씩하고 날쌔게 생긴 무관이 힘차게 걸음을 내딛고, 그 뒤로 국서를 모신 가마가 뒤따르게 돼. 국서는 은장식과 붉은 옻칠을 한 상자에 들어있는데, 상자에는 황금빛 찬란한 용이 마치 하늘로 치솟을 듯 힘차게 그려져 있어.
국서가 든 가마를 따라 정사와 부사, 종사관이 탄 가마도 줄지어 에도성으로 향하게 돼. 가마와 가마 사이에는 조선 병사와 일본 무사가 호위하고, 말을 탄 사람도 수도 없이 이어진대.
이처럼 통신사에 참석한 인물의 행렬이 끝나면 뒤이어 일본 쇼군과 바쿠후 관리에게 전할 예물 행렬이 이어져. 수레마다 한가득 싣고 행렬에 동참하는 거지. 참고로 쇼군에게는 말안장과 호랑이 가죽 같은 고급 짐승 가죽, 인삼과 종이, 비단과 모시, 삼베와 꿀, 매처럼 고급 예물을 선물로 전한대.
어떠니? 청도기를 휘날리며 걸음걸이도 씩씩하게 에도 길을 행진하는 통신사 행렬! 생각만 해도 뿌듯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