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에도까지 간 통신사는 쇼군 앞에서 직접 국서를 전달하는 ‘빙례’를 진행해요. 빙례 후에는 잔치가 벌어지고요. 이런 행사는 두 나라가 유교 예법의 영향을 받은 탓에 하는 의례가 아니에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 사이에는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외교의례가 대부분 있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형식이 무척 중요한 거죠. 왜, 새 술은 새 부대에 따르라는 성경 말씀도 있잖아요. 그 말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말이에요. 가만히 따져보면 형식의 중요성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생활을 돌아보면 이런 형식에 치우친 나머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보기로 돌잔치, 생일잔치, 결혼식을 들 수 있지요? 그렇다면 형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그 내용을 한층 빛나게 하면서도 본래의 목적에 어긋남 없이 바람직한 모습을 지닐 수 있을까요?
생각 열)
여러분은 친구를 사귈 때 누가 힘이 센지, 누가 더 인기가 많은지, 아니면 이 친구가 공부를 잘하는지, 그런 걸 따지나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까마귀 있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어른은 대개 그렇거든요. 까마귀랑 어울리면 까마귀가 된다고 가능하면 자기 수준과 비슷하거나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상대와 가까이하기를 바라지요. 친구 여럿이 모인 자리에도 직업이나 직위, 재산에 따라 알게 모르게 그 안에서 위계가 생겨나기도 하고요. 어른이 된다는 건 이것저것 셈하고 눈치 볼 게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여러분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친해지는 모양이 유치원 때 다르고, 초등학생 때나 중고등학생 때 또 달랐을 거예요. 지금 여러분 가까이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떠올려보세요. 우리는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에요.
통신사가 오가던 조선 시대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는 친구가 어떤 의미일까요?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백로 같은 친구, 까마귀 같은 친구가 있을까요?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입장에 따라 어렵거나 무서운 친구가 있을 수 있겠죠. 서로 도움이 되거나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는 것도 같고요. 여러분이 다른 친구와 관계를 트고, 이를 유지하고, 깊어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문제를 겪는 것처럼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해야 싸우지 않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로 발전할까를 고민하는 게 외교거든요. 대부분 나라는 이웃 나라와 서로 ‘신의를 통하며’ 평화롭게 지내고 싶을 거예요. 이런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말만 한다고 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통신사를 보내는 것이고, 통신사가 오가는 과정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약속하고 협의한 내용을 바탕 삼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지요. 이 모든 약속, 절차가 바로 지난 시간에도 다룬 의례, 의전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자, 그럼 지난 글에 이어 다시 에도로 가보도록 하지요. 아직 에도를 떠나지 못한 우리 조선통신사 일행입니다. 쇼군이 있는 에도성에 들어가 국서를 전달하고 다시 답서를 받는 과정이네요. 지난 글에서 살펴본 의전 문제가 파견 내내 통신사 일행의 골칫거리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예(禮)로 두 나라의 위계를 판가름하는지라 사신들은 자신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중・일 삼국의 외교관들이 만나 외교의례 때문에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여러 번 발견하였다. 조선 측과 중국 측의 논쟁은 『대명집례』와 같이 동일한 전례서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확실한 근거만 찾으면 쉽게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조선 측과 일본 측은 양측이 가진 과거 기록을 가지고 일일이 대조하면서 합의를 하였기에, 사소한 절차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논쟁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필자는 이런 논쟁이 결국은 자국과 상대국의 국가적 위상을 따지는 것이며, 자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첨예한 문제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조선왕실의 외교의례』, 김문식, 세창출판, 머리말 중
조선왕실의 외교의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 김문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두 나라 외교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신경전을 관찰합니다. 지난 글에서 의전을 눈여겨보면 누가 더 힘이 센가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죠? 어찌 보면 유치하잖아요. 서로 유리한 사료를 찾아서 저마다 누가 형이었고, 누가 아우였는지 가리는 모습처럼 비치기도 하니까요. 김문식은 그 일이 자기 나라의 명예와 실리가 걸린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이해하고 있어요.
사실 조선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면서 문화로나 국력으로나 동아시아 패권을 쥐고 있던 중국과 사대 관계를 맺어온 게 분명하잖아요. 서로 자기 자리를 파악하고 인정하는 셈이니 오늘날에도 그리 다툴 게 없어요. 반면, 조선과 일본 두 나라는 (당시 사대부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필요에 따라 가까이 지내거나 멀어지거나 한 사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원래 힘이 비슷할 때 다툼은 더 많이 일어나는 법이잖아요. 각 나라의 최고 권력자 사이에 국서를 주고받는 과정은 힘의 우열에 따라, 각 나라가 처한 사정과 필요에 따라, 저마다 지닌 문화와 체면에 따라 엄격하게 따져서 서로 협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외교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니 손자병법에 나온 대로 싸우지 않고 이기려면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지어 사소해 보이는 의전 문제조차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모여 국가의 위상을 결정할 테니까요.
「나는 결정했소, 비록 칼을 뽑아서 내게 겨눈다 해도 예를 고치지 않는다면 도주를 보지 않겠소.
…… 중략 ……
지금 들으니 그는 글을 모른다는데 한갓 자기 지위와 뇌물만을 믿고 내가 자기 앞에 나가 굽실굽실 절하고, 시를 짓고, 글을 짓게 하는 것이오. 이에 분주스럽게 재주를 내보이고는 상급을 받아서 돌아간다면, 이는 대마도주의 존엄을 나라 임금에게 비기는 것이 되고, 조정의 관원으로 오랑캐 관리에게 총애를 사는 것이 될 것이오.」
『해유록 조선선비 일본을 만나다』, 신유한(김찬순 옮김), 보리, 2006, 72-73P
서얼 출신으로 중앙 요직에 나아가진 못했지만, 문장만큼은 최고라 인정받은 신유한 선생이 숙종 때 사행을 다녀와서 남긴 해유록의 한 대목입니다. 전례가 그렇다며 대마도주 앞에서 절을 하고, 글과 시를 읊고, 이에 상응하는 포상을 받으라는 말에 신유한은 그건 격에 어긋난다며 단호히 거절하지요. 결국, 대마도주는 연회만 열고 그 자리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원래 목적이었던 신유한의 글을 청하지도 못하지요. 에도성에 들어가 국서를 전달해야 하는데, 첫 관문인 대마도에서부터 이렇게 따져야 할 게 많습니다. 통신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용을 들여다보면 두 나라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과 피곤함이 말이 아니지요.
나라의 위상을 두고 벌이는 의전 싸움과 달리 학문이나 문화 수준에서만큼은 일본도 조선을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사신을 만나 시와 글을 주고받으려고 줄을 섰다는 거잖아요.
「통신사의 일본 방문이란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일생일대의 큰 경사였다. 따라서 사관(使館)은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8세기 후반에 소설가로 활약했던 ‘우에타 아키나리(1734∼1809)’는 그의 수필집인 『탄타이고심록』에서 ‘조선인을 두 번 보는 것은 나이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하이쿠(俳句/일본의 단형시가)를 인용하면서 그도 세 번은 보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토록 통신사의 방문은 일본인들에 있어서 최대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1』, 박경신 외, 휴머니스트, 2006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경험한 횟수로 자신의 나이를 가늠하기도 하잖아요. 당시 일본인들한테 조선통신사를 보는 일은 나이를 잊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면서 시간의 이정표로 삼을 만큼 귀한 사건이었던 거지요. 이러한 일본인들의 관심에 호응하면서도 조선의 사신들은 조선의 우월한 문(文)으로 칼 쓰는 걸 좋아하는 오랑캐 나라를 교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조선이 받들던 명나라가 청에 의해 멸망하고 전국을 통일한 일본에게 준비 없이 된통 당했으면서도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시각에 머물러 있었다는 건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신의를 나눈다는 통신사의 이름이 무색해지잖아요.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상대와 어떻게 친구가 되겠어요.
물론, 임금에 대한 충성과 사명감으로 사행길에 나선 사신들도 수개월에 이르는 여정 중에 점점 생경하고 독특한 일본 문화에 관심을 조금씩 가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신유한 선생의 『해유록』에도 오사카, 교토, 에도에 이르는 번화한 도시를 방문하면서 느낀 당시 조선 사대부의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거든요.
친구(親舊)란 말은 한자 그대로 서로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사이란 뜻이지요. 친(親)이란 글자를 눈여겨보면 보다(見)는 뜻의 한자가 들어있어요. 눈에 보일만큼이니 아주 가까이 있다는 거지요. 가까이 있으면 절로 알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친(親)이라는 글자는 사랑한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재미있는 건 라틴어에서 친구라는 말의 어원이 ‘사랑하다’에서 나왔다고 하거든요. 알게 돼서(가까워져서) 사랑하게 된 건지, 사랑해서 알게 된 건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느 쪽이든 그 관계가 여물려면 오랜(舊)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본은 중국을 빼고 나면 거리로도 가장 가깝고 관계를 맺은 지도 오래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두 나라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이지요. 통신사를 파견했던 조선이든, 오늘날 대한민국이든 두 나라 사이에는 해묵은 감정이 쌓여 있잖아요. 물론 얻어맞은 쪽은 우리지만요.
「“이 꼬마 녀석!"
"넌 꼭 잡아먹고 말겠어!”
그때!
아이가 콰당!
넘어지고 말았어요.
시어도어가 아이를 한입에 꿀꺽 집어삼키려고 하자 갑자기 ……
아이가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러자 시어도어도 얼떨결에 따라 웃고 말았어요.
하하하하하! 으히히히히!
그리고 함께 웃음을 나눈 아이를
잡아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리 가! 잡아먹기 전에』, 애덤 레르하우프트 글, 스콧 매군 그림, 키즈엠
시어도어는 혼자 조용히 동굴에 사는 정체불명의 괴물입니다. 누가 다가오면 잡아먹겠다고 겁을 주어 모두 쫓아내지요.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요. 그러다 꼬마 한 명을 상대하게 됩니다. 암만 겁을 주어도 이 꼬마는 달아나지 않아요.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시어도어, 커다란 빨간 용이었군요. 꼬마는 시어도어를 마주하고도 무섭지가 않아요. 되려 코를 콕 찌르고 장난을 치네요. 화가 난 시어도어는 꼬마를 쫓고, 꼬마는 달아납니다. 위에 가져온 대목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이지요. 조용한 걸 좋아하는 괴물 시어도어와 시끄러운 꼬마는 이렇게 친구가 되지요. 자, 퀴즈 나갑니다. 성격도, 생김새도 완전히 다른 둘이 대체 어떻게 친구가 되었나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과 일본은 어렵사리 다시 교류가 시작되었습니다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잡아먹지요. 한쪽은 씻기 힘든 상처가 남았습니다. 물론, 다른 한쪽도 야욕의 대가를 치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위험한 폭탄이 두 번이나 떨어지지요. 두 나라 모두 아픈 상처를 끌어안은 채 시간이 흐릅니다. 가장 가깝고 오랜 사이의 두 나라는 과연 ‘신의가 통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까마귀이고 누가 백로인지 구분 짓는 어른들의 말은 가려들으세요.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 대부분은 스스로 까마귀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요. 까마귀든, 백로든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새일 뿐입니다. 까마귀 처지에선 여간 서운한 게 아닐 테지요. 백로가 되든, 까마귀가 되든 아무 상관이 없을뿐더러, 서로 친구가 된다고 백로가 까마귀가 된다거나, 까마귀가 백로가 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아요. 그런 일이 있다면 백로인 줄 알았던 새가 실은 까마귀거나, 까마귀인 줄 알았던 새가 백로였겠지요.
백로가 되었든 까마귀가 되었든, 조용한 걸 좋아한 괴물이든 장난치는 걸 좋아한 꼬마든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면 신의를 나누기 전에 먼저 ‘함께 웃음을 나누는’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함께 웃음을 나눈 당신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겠냐고요. 그런 건 말이죠, 괴물도 하지 않는 일이라고요!
10. 숨 막히는 문서전쟁, 국서 주고받기!
통신사가 에도로 가서 행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조선 국왕이 일본 쇼군에게 보내는 국서전달이야. 국서를 전하고 나면 일본 쇼군의 답서를 받아가야 하는데, 이때 국서를 전하는 의식을 ‘빙례’라 해. 국서를 전하고 회답서를 받을 때까지 사신은 에도에 머물러야 해. 양국의 최고 문서인 국서를 주고받아야 하니 서로 합의해야 하고, 서로가 만족하는 문안 작성이 이루어져야 하므로 시간이 제법 걸려. 그러니 자연스레 에도에 오래 머물지. 그럼 에도에 머무는 동안 사신은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낼까?
먼저, 바쿠후의 관료를 만나는 일을 해. 통신사를 맞이하는 관리인 관반 곧, 셋다이부교를 만나 서로 인사와 덕담을 나누고,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하지.
“반갑습니다!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시죠? 괜찮다면 하루나 이틀쯤 푹 쉰 다음 환영 잔치를 베풀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세 사신은 물론이고, 중관과 하관까지 죄다 한 상씩 두루 받게 될 테니 피로를 푸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이렇게 환영 잔치가 끝나면 그다음으로 일본 쇼군이 보낸 가신인 로주가 와서 조선통신사 세 사신을 만나. 만나서는 주로 양국 군주의 안부를 묻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지. 어떤 덕담을 주고받냐고?
“멀리서 오느라 애 많이 먹었소. 쇼군께서 조선 임금 전하도 잘 지내는지 물으셨소!”
“네, 잘 지내십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전합니다! 저희 전하께서도 쇼군 대군의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건 조선에서 가져온 인삼차인데 맛보시겠습니까?”
이렇게 서로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특사가 파견되고, 그 특사와 미리 친분을 쌓는 자리라 보면 돼. 왜냐하면, 이후에 할 일이 무척 많거든. 이 만남이 끝나면 사신은 일본 관리와 서로 실무적인 업무에 집중해야 해. 그러니 사전에 상대를 어느 정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거지.
앞으로 어떤 실무 일을 준비하냐고? 국서와 회답서에 대한 문구 작성을 해야 하고, 서로가 준비한 예물을 확인하지. 예물을 받을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에게 어떤 예물을 전해야 하는지, 예물의 품목과 수, 양 따위를 하나씩, 하나씩 죄다 점검해야 해. 그러니 이래저래 잡다한 일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지.
그렇게 지내다가 국서를 전하는 날이 다가오면 두 나라의 실무를 맡은 관리들 사이에선 긴장과 갈등이 펼쳐지기도 해. 국서를 전하기로 한 날의 바로 전날에는 빙례 의식 순서를 상세히 쓴 「의주」가 나와. 그러면 세 사신과 상상관이 이것을 살펴보고 이상한 게 있으면 일본 관리에게 묻고, 때로는 필요에 따라 고치기도 해. 그때 적지 않게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 거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1764년(영조 40년)에 통신사를 맞이한 일본 에도의 모습을 한번 볼까.
“귀국에는 미안하오만 이번 빙례 때는 빈 술병과 빈 술잔으로 빙례를 진행했으면 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빈 술잔으로 빙례를 진행하다니요?”
“지난 몇 년 동안 조선에서는 흉년이 잦아 곡식을 아끼기 위해 술을 빚거나 마시는 것을 금하는 ‘금주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부탁하는 것이니 양해를 구합니다.”
“아니, 그렇더라도 전례에 어긋나는 일인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 시대만 해도 어르신 잔치건, 손님맞이 잔치건, 제사를 모시거나 할 때면 으레 술잔에 술을 붓잖아. 그런데 그런 잔치나 제사에 술을 따르지 않고, 빈 술잔으로 흉내만 내자는 거야. 그럼 어떻게 돼? 그렇지! 김빠진 맥주처럼 흥이 나지 않잖아. 따라서 일본의 처지에서 보면 빈 술잔으로 빙례 의식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 그리고 외교에서는 예전에 행한 관례가 중요한데, 빈 잔으로 했다는 기록이 없어. 분명히 국서를 전한 뒤엔 서로 술잔을 주고받기로 돼 있는데, 그걸 어기자는 것이니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질밖에! 하지만 조선 사신의 뜻이 워낙 완고하니 부득불 조선의 의견을 받아들였지. 그래서 술을 주고받을 때 하는 의식인 ‘헌배’도 빈 잔으로 하도록 정했대. 가만히 생각하면 좀 그렇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조차 서로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선 당연한 것이 안 될 수도 있잖아. 특히, 모든 일을 정해진 기준에 맞춰 처리하는데 익숙한 일본으로선 꽤 당황했을 거야.
자,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드디어 국서를 전하는 빙례 의식이 진행돼. 그럼 국서를 전하는 빙례는 과연 어떻게 하는 걸까? 요점만 간단히 말하면 아주 단순해. 임금님의 국서를 일본의 쇼군에게 전하러 떠난 통신사지? 그러니 쇼군을 만나 국서를 전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쇼군이 세 사신에게 먼 길을 오가며 국서와 예물을 무사히 전해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하고, 임금님의 안부도 묻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거든. 그 당시로 한번 돌아가 볼까?
“세 사신이 모두 쇼군 전하 앞에 앉았으니 빙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행사를 시작하겠다는 개회사를 하는 거야. 그런 다음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사전에 합의된 순서와 방식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거지.
“사신 가운데 당상역관은 조선의 국서를 쓰시마 영주에게 전하시오!”
그러면 국서가 쓰시마 영주에게 전해져.
“쓰시마 영주는 국서를 받아 쇼군 전하 가까이 모시도록 하시오!”
이렇게 국서가 자리를 잡으면 이제 세 사신이 등장할 차례야. 빙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지. 국서와 쇼군에게 예를 표해야 해.
“삼사는 국서 앞에서 사배례를 하시오!”
이렇게 절을 네 번 하는 것을 ‘사배례’라 해. 그런데 이를 두고도 조선과 일본은 심하게 다투었어. 왜냐고? 절을 네 번 한다는 것은 신하의 예를 취할 때만 하는 것이거든. 그러니 국서 뒤에 있는 쇼군에게 신하의 예를 갖춘다는 것이 되므로 사배례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조선의 원칙이었지. 그러자 일본도 가만있지 않았어. 사신은 왕도 아니고 신하인데 어찌 사배례를 할 수 없냐고 따졌지. 그래도 삼사가 흔들리지 않자 회유를 해. 아니, 눈앞에 있는 조선 국왕의 국서에 대한 사배례인데, 사배례를 거부한다면 조선 국왕의 신하가 아니란 말이냐며 몰아붙였지. 결국, 일본 쇼군에 대한 사배례가 아니라 조선의 국서에 대한 사배례를 한다는 뜻으로 합의를 했어. 세 사신이 한발 물러선 셈이지. 그래서일까 통신사로 나선 삼사도, 그 밖의 관리도 사배례를 하면서 때때로 굴욕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해.
이렇게 사배례가 끝나면 술자리가 열려. 이 술자리는 오직 빙례란 의식을 위한 술자리일 뿐 정말로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자리가 아니야! 이는 그만큼 통신사가 오갈 때 유교적 형식이 중요했음을 뜻해. 하긴 유교 예법이 중요했던 때이고, 두 나라 또한 서로 평화가 필요한 때였으니 형식 또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법이야.
이제 통신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국서전달의 마무리, 빙례가 끝났어. 빙례가 끝나면 쇼군의 뜻에 따라 쇼군의 세자인 약군도 함께 하는 잔치가 화려하게 열려. 이 잔치는 통신사로 나선 사신이 그동안 애썼음을 달래고, 쌓인 피로를 풀도록 베푸는 잔치야. 그러니 신나게 악기도 연주했는데, 주로 아악을 연주했다고 해. 그 음악에 맞춰 춤까지 신나게 춘 것은 물어보나 마나지! 약군이 베푸는 잔치는 대체로 국서를 전하는 날에 열려. 한때 잔칫날을 바꾸기도 했지만, 대개는 국서를 전하는 당일에 잔치를 열었어.
이렇게 국서전달 의식과 잔치가 모두 끝나면 통신사는 로주를 비롯한 일본 관리의 정중한 배웅을 받으며 에도성에서 빠져나와.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면 일정이 비로소 끝나는 거지.
그럼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먼저 처음부터 통신사와 동행한 쓰시마 다이묘가 국서전달이 무사히 끝났음을 기뻐하는 인사를 하러 와. 일본에서 인사를 왔으니 다음은 누구 순서야? 맞아! 이번에는 조선의 차례니 통신사로 따라나선 당상역관이 로주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고관을 찾아가 국서전달이 잘 끝나도록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해. 그렇게 하면 국서를 주고받은 예를 어느 정도 한 셈이지. 이제 남은 일은 일본 쇼군이 조선 임금에게 전할 회답 국서를 기다리는 일뿐이야. 그때까지 며칠 동안 통신사는 에도의 유학자나 관리와 시를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의 사정을 파악하기도 하는 거야.
그러니 통신사 일행은 국서를 전달한 뒤에도 편히 잘 쉬지를 못했대. 실제로 통신사 행렬이 머무는 곳이면 일본 내 어디를 가나 늘 사신을 만나러 오는 일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거든. 그러니 어떡해? 오늘날 K-POP 스타를 보러오듯 오는데 문전박대할 순 없잖아. 그건 에도에서도 마찬가지야. 아니, 에도에서 가장 바쁘지! 며칠 동안 에도의 유학자와 그 제자, 자녀와 더불어 시와 글을 주고받는 일을 쉼 없이 되풀이하거든. 일본에서는 유학의 선진국인 이웃 나라 조선에서 온 사신을 통해 앞선 학문을 받아들이기도 할 겸, 자기네가 갈고닦은 실력을 검증받기도 할 겸 앞다투어 통신사 사신과 만남을 신청해. 따라서 사신은 목적지인 에도에 도착해 국서를 전하고 나서도 푹 쉬기는커녕 밤낮으로 고된 일정에 시달리는 셈이지. 그러다 통신사 일행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어.
“드디어 바쿠후 쇼군이 보내는 회답 국서가 도착했다 하옵니다!”
“그래요? 어디 봅시다! 회답 국서니만큼 글자 하나도 허투루 읽지 말고 눈여겨 잘 읽어야 할 것이오. 잘못된 글은 없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새로 고치도록 합시다! 아울러 전하와 사신, 수행원에게 주는 갖가지 예물 목록도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오!”
일본에서 주는 예물은 물품이 다 갖춰지면 에도성 안에 풀어놓고 쇼군이 몸소 하나씩 꼼꼼히 살펴봐. 그런 다음 국서에 딸린 문서로 예물 목록을 덧붙여 로주를 통해 통신사가 머무는 객관으로 보내게 돼. 그때! 때에 따라선 회답 국서에 적힌 글자를 두고 통신사와 바쿠후 사이에 다툼도 있지만, 대개는 갈등을 빚더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 문제를 풀곤 했대. 일본이 주는 예물은 목록을 전한 다음에 따로 보내줘. 이렇게 에도성에서 쇼군의 답서와 예물을 받고 모든 준비가 다 끝나면 통신사는 드디어 에도를 떠나게 되는 거야.
“이제 조선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에도에 머무는 동안 마음 써 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쇼군 대군께도 꼭 인사를 전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귀국으로 향하는 머나먼 길, 잘 돌아가길 빌겠습니다!”
국서전달을 무사히 마친 통신사는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조선 땅으로 발걸음을 서두르게 돼. 그리고 그 성과에 따라 발걸음이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