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남의 허물을 찾아내고, 세상의 부조리를 손가락질하며, '저건 틀렸어'라고 단정 짓던 그 손말이죠.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제 마음속에 아주 날카로운 가위를 하나 품고 살았습니다. 내 기준에 어긋나는 것들을 가차 없이 잘라내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내 삶에서 배제하는 일. 그게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서슬 퍼런 확신이 가끔은 저를 참 외롭게 만들더군요.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밭을 가꾸며 삽니다. 그 밭에 불쑥 솟아난 가라지를 발견할 때면, '아, 이걸 당장 뽑아버려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피어오르죠. 내 인생을 방해하는 것 같은 사람들, 내가 믿는 가치를 훼손하는 사건들... 그런 것들을 보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심판자의 자리에 앉곤 합니다.
"저 사람은 저래서 안 돼", "이건 분명히 잘못된 거야."
그런데 말이죠.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참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요.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아니, 나쁜 건 빨리 치워야 좋은 것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건 제 오만이었습니다.
"함께 자라게 두라"는 명령은 어쩌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선과 악을 깔끔하게 분리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사실, 뭐가 진짜 밀이고 뭐가 가라지인지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존재들이잖아요.
가라지를 뽑으려다 밀까지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그 말씀은, 우리의 섣부른 정의감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심판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저 '보류'된 것뿐이었습니다. 그 시점과 방식은 온전히 그분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말이죠.
더 무서운 사실은, 선과 악이 저 바깥세상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곳엔 밀보다 더 무성하게 자란 가라지들이 있더군요. 남을 정죄하던 그 서늘한 잣대가 나 자신에게 향할 때, 비로소 저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과 악은 내 안에서 늘 엉킨 채로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무엇이 밀이고 무엇이 가라지인지, 제 스스로도 가끔은 헷갈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날카로운 가위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다림'이라는 조금은 지루하고 어려운 연습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건 어쩌면 눈앞의 '악'보다, 불완전한 내 판단을 '완벽한 정의'라고 믿어버리는 그 위험한 확신이 아닐까요? 끝내 추수 때가 오면, 모든 것은 그분의 공정한 손길 아래 제 자리를 찾게 될 테니까요. 그전까지 제가 할 일은 그저 겸허히 나를 돌아보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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