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교회

고흐가 남긴 가장 고독한 저항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빛이 없는 곳


가끔 마음이 복잡할 때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찬찬히 뜯어보곤 합니다. 요동치는 밤하늘의 소용돌이와 강렬한 노란 별들은 언제 봐도 압도적이죠. 하지만 그 역동적인 아름다움 아래, 마을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작은 창문에는 따뜻한 노란 불빛이 하나둘 켜져 있는데, 마을 한가운데 가장 높이 솟은 교회의 창문만은 칠흑처럼 어둡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발견했을 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더군요. "왜 고흐는 신의 집이라 불리는 곳을 이토록 차갑게 비워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거든요. 어쩌면 그 어둠은 고흐가 세상에 던진,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슬픈 고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남루한 선교사의 진심을 외면한 품위라는 이름의 장벽


사실 고흐는 화가가 되기 전,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전도사였습니다. 벨기에의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그는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택했죠. 광부들과 똑같이 얼굴에 숯검댕을 묻히고, 입고 있던 옷과 잠자리까지 내어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교단은 그런 그를 파면했습니다. 이유는 기가 막히게도 '선교사로서의 품위가 없다'는 것이었죠.


가장 낮은 곳에서 신의 사랑을 실천하려 했던 사람을, 정작 '품위'를 따지는 사람들이 밀어낸 겁니다. 그 상처가 얼마나 깊었을까요. 그래서였을까요? 그림 속 교회는 마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빛을 잃은 채, 그저 권위적인 실루엣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대신 고흐는 땅과 하늘을 잇는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를 통해, 그리고 소동치는 밤하늘의 성령을 통해 직접 신성(神聖)에 닿으려 했던 것 같아요.



바리새인의 위선,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이 대목에서 문득 마태복음 12장의 바리새인들이 겹쳐 보입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셔도, 그들은 그 본질은 보지 못한 채 "저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귀신을 내쫓는거다"라며 비아냥거렸죠. 형식에 갇혀 진리를 보지 못하는 눈, 그것만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역시 오늘날의 교회에서 고흐가 느꼈을 법한 그 차가운 어둠을 보곤 합니다. 건물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말은 유려해지는데, 정작 그 안에서 '남루한 고흐'를 품어줄 수 있는 온기는 찾기 힘들어졌거든요. 겉모습과 형식에 치중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랑의 불을 꺼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아픈 질문이 마음을 찔러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쪽을 보고 있을까요? 화려하게 치장된 교회의 닫힌 문일까요, 아니면 고흐가 발견했던 저 요동치는 밤하늘의 생명력일까요. 비어 있는 교회 창문을 보며, 제 마음속 신앙의 불씨는 안녕한지 조용히 되묻게 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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