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은 문제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기술

어제는 기적을 먹고, 오늘은 폭풍 속에 서 있는 당신에게


배가 부르면 모든 게 평온할 줄 알았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갓 구운 떡의 고소한 냄새와 생선의 온기, 그리고 배불리 먹고도 남은 열두 바구니의 풍요로움.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인생의 모든 숙제가 풀렸다고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배고픔이라는 원초적인 공포로부터는 해방되었다고 확신했겠죠.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기적 같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이 몰아칩니다. 방금 전까지 기적을 먹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채만 한 파도 앞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설탕 인형처럼 떨고 있습니다. 떡으로 배를 채웠다고 해서 영혼의 허기나 죽음의 공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통장 잔고가 든든해지고 걱정거리가 하나 해결됐다 싶으면, 꼭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생의 풍랑이 불어오곤 하잖아요.


이 대목에서 제가 주목한 건 예수님의 '무심한 듯 다정한' 등장 방식입니다. 제자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칠 때, 그분은 떡을 한 바구니 더 들고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자, 여기 비상식량이다"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죠. 심지어 배에 올라타자마자 바람을 잠재우신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거친 파도 위를 뚜벅뚜벅 걸어오시며 딱 한 마디를 던지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위로입니다. 상황은 여전히 최악인데, 그저 '나 여기 있다'는 존재의 확인만으로 안심하라고 하시니까요. 우리는 보통 '문제 해결'을 기적이라 부르지만, 진짜 기적은 풍랑 한가운데서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베드로처럼 호기롭게 발을 내디뎠다가 3초 만에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물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 저라면 아마 배 밖으로 발을 내밀 엄두조차 못 냈을 거예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파도를 타느냐보다 중요한 건, 빠져가는 손을 잡아채는 그분의 손길을 신뢰하느냐에 있으니까요. 결국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승리하는 법은 파도를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파도 위를 걸어오시는 그분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의 고집'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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