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1–12절을 건축으로 읽다
건축에서 가장 위험한 문제는 눈에 보이는 결함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지워버린 문제다.
처음에는 분명 문제로 인식됐다. 회의에서 언급됐고 수정안도 한 번쯤 그려졌다. 그러나 일정, 예산, 관계. 그 앞에서 도면의 선 하나는 쉽게 사라진다. 도면에서 지우면 현장에서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주석이 빠지고 설명이 생략되면 문제는 없던 일이 된다. 최소한, 보고서와 미팅 안에서는 그렇다.
헤롯도 그랬을 것이다. 세례 요한은 왕좌를 무너뜨릴 구조적 하중이 아니었다. 다만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이건 옳지 않습니다”라고 짚어낸 사람이었다. 설계 기준을 들고 나타난 불편한 감리자에 가까웠다. 헤롯은 알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는 것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러나 그는 고치지 않기로 선택한다. 철거 대신 가림막을, 수정 대신 감옥을 선택한다.
겉은 정리됐다. 잔치는 계속됐고 사람들 앞에서도 불편한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건물이 안전해졌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결함은 사라 지지 않는다. 밖에서 안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외벽에서 지운 문제는 벽체 속으로, 천장 위로, 구조체 깊숙이 숨어든다. 도면에서 지운 문제는 삭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구조체가 그 하중을 떠안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예수에 대한 소문이 들려올 때 헤롯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이 말은 신앙 고백이 아니다. 매립된 문제가 마침내 진동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온도가 변할 때, 하중이 이동할 때처럼 예기치 않은 시점에 문제는 신호를 보낸다.
회개하지 않은 양심은 항상 이런 방식으로 나타난다. 폭발이 아니라 미세한 흔들림으로. 요한은 침묵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예수라는 더 큰 구조를 향해 기초를 넘겨주고 물러난다. 사람 하나는 제거할 수 있어도 기준 자체는 철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제를 도면에서 지우고 있는가. 어떤 진리를 “지금은 아니야”라는 말로 구조체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가. 건물은 당장 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건축 도면을 그리는 사람은 안다. 숨긴 결함은 언젠가 반드시 건물의 중심에서 말을 건다는 것을.
도면에서 지운 진리는
사라지지 않고
구조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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