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낸 자리에 꽃을 심지 않으면, 잡초가 자란다
저녁이 되면 집은 늘 조용해진다. 불을 끄고 나면, 그 적막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낯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은 누구의 집일까?” 내가 살고 있는 집이지만, 정작 그 안에 누가 머물고 있는지 깊이 묻지 않은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예수님의 비유가 불현듯 마음에 들어왔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서 물 없는 곳을 헤매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그 집이 비어 있고 청소되고 정돈되어 있었다.”(마 12:43–44) 비유 속 집은 겉으로는 말끔하다. 먼지가 없고, 바닥은 반짝이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 누가 보아도 훌륭한 집이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주인이 없다.
나는 문득 내 삶을 그 집에 비춰 보았다. 나는 얼마나 자주 “나쁜 것들”을 내쫓는 데만 몰두해 왔던가. 화를 줄이려고 애쓰고, 게으름을 몰아내려 하고, 비교와 질투를 억누르려 애썼다. 꽤 오랜 시간, 나는 내 마음을 ‘깨끗한 집’으로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집에 누가 살고 있는가?
예수님의 비유는 섬뜩하다. 악한 영이 돌아와 보니 집이 비어 있었고, 결국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온다. 문제는 더러움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악이 떠난 자리에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 빈자리가 더 큰 어둠을 불러온다는 사실.
나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초상 같다고 느꼈다. 우리는 많이 정돈되었다. 더 친절해지고, 더 합리적이 되고, 더 세련되었다. 상처를 관리하는 법도 배웠고, 감정을 다루는 법도 익혔다. 마음의 집은 꽤 깔끔해졌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허전할까. 왜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쉽게 흔들리고, 다시 옛 습관으로 미끄러질까.
비유는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집을 비워 두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죄를 몰아내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맞아들이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빈 방을 그대로 두지 말고, 그 자리에 손님이 아니라 주인을 모셔야 한다.
내 마음의 집에 예수님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단순히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내가 중심이던 집에 다른 주인을 모시는 일. 내 결정, 내 욕망, 내 두려움의 자리에 그분의 말씀을 들여오는 일. 나는 요즘 작은 기도를 연습하고 있다. “주님, 이 자리에 오셔서 머물러 주세요.”
화를 내고 싶을 때, 비교하고 싶을 때, 스스로를 움켜쥐고 싶을 때, 나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려고 애쓴다. 결국 비유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의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가? 청소된 집이 목표가 아니라, 사랑받는 집이 목표다. 그리고 사랑받는 집은 언제나 주인이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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