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을 지나, 먼저 내밀어 주신 손을 붙잡기까지

그저 막막한 기다림뿐일 줄 알았습니다. 15년이라는 시간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길고 무거웠습니다. 그중 10년을 세상과 등을 지고 지냈던 내 막냇동생.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우리 가족에게 매번 같은 겨울이었습니다. “주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이 질문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얼어붙던 밤들이 셀 수 없이 흘러갔습니다.



기적은 고백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10년의 침묵을 깨고 동생이 다시 사회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출근길과 일상의 산책이, 우리 가족에겐 숨을 삼키며 바라볼 수밖에 없던 회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치유라는 말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오늘 문득 성경을 읽다 베드로의 장모 이야기에 멈춰 섰습니다. 그 장면이 이상하리만큼 내 동생의 회복과 겹쳐 보였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증명하지도, 간절히 애원하지도 않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다가가 손을 잡으십니다. 주님은 고백을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조건을 묻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지금 당장 몸을 태우고 있는 열병부터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은 열이 내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곧바로 일상으로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다시 생각해도 놀라운 장면입니다.



거부감, 어둠 속에 있던 영혼이 빛을 만났을 때의 비명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동생은 이 사실을 아직 모릅니다. 사회로 돌아왔지만 복음 이야기가 나오면 강하게 밀어내고, 때로는 날카로운 논쟁으로 맞섭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상한 적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모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과거의 나 역시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강렬한 거부감이 무관심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빛에 오래 노출되지 않았던 눈은 조금만 밝아져도 본능적으로 외면합니다. 어쩌면 동생의 거부감은 자신도 모르게 성큼 다가온 사랑 앞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비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너진 일상 위에서 다시 시작될 사명


무관심보다 더 뜨거운 그 거부감 너머에서 나는 오늘도 베드로의 장모 손을 먼저 잡으셨던 그분의 체온을 떠올립니다. “그래, 지금 많이 눈부시구나.” 우리의 서툰 거절과 모난 마음조차 깊은 관심으로 받아주시는 그 손길이 결국 일상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열병이 떠난 뒤 곧장 일어나 주님을 대접했던 장모처럼, 내 동생 역시 그를 만드실 때부터 준비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은 여전히 논쟁 중이고, 대화는 자주 불편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이 시간마저 설렘으로 견뎌보려 합니다.


주님의 손길은 이미 동생의 손목을 놓지 않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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