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 처리된 삶

그리고 기꺼이 실력을 갖춘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

세상이 소리를 지워버린 사람, ‘묵음 처리’된 영혼


오늘 아침, 책장을 넘기다 '묵음 처리된 사람'이라는 문장에 발목을 잡혔다. 혈루병을 앓던 여인에 대한 대목이었다. 당시의 율법과 질서라는 이름 아래, 그녀는 타인과의 접촉이 금지된 '부정한 자'였다. 존재하되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아픔을 호소할 수도 없는 상태. 세상이 정해놓은 거대한 시스템이 한 개인을 어떻게 지워버리는지, 그 서늘한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장 뜨거운 장소에서 느낀 가장 시린 외로움


사실 고백하자면, 요즘 내가 머무는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자주 묵음 모드가 되곤 했다. 사랑과 환대가 가득해야 할 그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장 깊은 소외감을 느꼈다. 모두가 뜨겁게 찬양하고 빈틈없는 종교적 열심을 내보일 때, 그 활기찬 에너지 속에서 나는 자꾸만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만 왜 이럴까' 하는 자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어느새 나는 신앙의 변두리를 서성이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인사이더의 성벽 안에는 ‘내일’이 없다


그러다 어제,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가 내 닫힌 마음을 거칠게 흔들었다. 목사님은 우리가 그토록 선망하는 '인사이더(Insider)'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셨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욕망, 권력을 향한 지향성,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자신들의 성을 공고히 하려는 종교적 열심들...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견고한 주류의 질서 속에는 정작 '생명'을 새롭게 하는 힘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지키느라 정작 담장 너머의 신음 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었던 것이다.



"기꺼이 실력을 갖춘 아웃사이더가 되십시오"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기꺼이 실력을 갖춘 아웃사이더가 되십시오."라고. 이 문장이 가슴에 박혔던 이유는 그저 밀려난 자로 남으라는 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갖춘다는 것, 그것은 인사이더들의 비겁한 카르텔에 기대지 않고도 홀로 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그들의 도움 없이도, 그들의 인정 없이도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되라는 그 준엄한 명령이 나를 다시 깨웠다. 아웃사이더라는 자리는 낙오지가 아니라, 실력을 무기로 삼아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최전방이었던 셈이다.



변두리의 옷자락 끝에서 비로소 해제된 묵음


예수님 역시 그 시대의 가장 철저하고도 '실력 있는'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던가. 종교적 권력자들이 묵음 처리해버린 이들의 작은 떨림을 듣기 위해, 그분은 기꺼이 성문 밖으로 걸어 나가셨다. 혈루병 여인이 그 무거운 묵음을 뚫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았을 때, 그녀는 비로소 인사이더들이 만든 거짓된 질서에서 벗어나 진짜 '삶'의 소리를 되찾았다.


나 역시 이제는 억지로 인사이더의 대열에 끼기 위해 발꿈치를 들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기꺼이, 아주 실력 있게 아웃사이더의 자리에 머물고 싶다.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낮은 곳의 목소리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조용히 화답하시는 예수님의 온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영혼은 치유받고 있으니까. 어쩌면 진정한 신앙이란, 인사이더가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실력을 갖춘 채 예수님이 계신 그 낮은 변두리를 향해 기꺼이 걸어 나가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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