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5.0을 준비하며, 집부터 고쳤다
집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했습니다.
이번 겨울, 25년 된 집을 올수리했습니다.
집이 무너질 듯 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한 체리색 방문과 문틀, 엔틱한 가구들. 발코니에는 초록색 화분이 가득했고, 어항 속 구피들은 늘 자유롭게 헤엄치던 집이었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흔적과 나름의 품격이 공존하던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세월은 정직했습니다.
마루 바닥에는 시간이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북쪽 발코니는 비만 오면 바닥에 물이 흥건했습니다. 화장실 실리콘에는 곰팡이가 어김없이 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그동안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었습니다. 43평 집은 여백 없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아내는 새집을 원했습니다.
체리색이 아닌, 화이트 계열의 밝고 정돈된 집. 물건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모두 수납장 안으로 들어가는 공간.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정리됨’이 느껴지는 집을 말했습니다.
현재 집을 전세로 주고, 새 아파트로 전세를 들어가는 선택지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집 주변에 대규모 택지 개발이 시작되면서 전세를 놓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답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고쳐서, 다시 사는 것.
이 시점에 저는 ‘인생 5.0’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더 넓은 집이 아니라, 더 정돈된 삶.
더 많이 가지는 단계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지 선택하는 단계 말입니다.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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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새 부대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습니다.
공사는 작년 10월 말에 시작해 11월 말에 끝났습니다. 정확히 5주.
거실과 아들방을 확장했고, 전체 창호를 교체했습니다. 마루와 도배, 문과 가구, 주방 싱크대와 냉장고 장까지. 집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작업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일은 공사보다 짐 정리였습니다.
팔 수 있는 것은 당근마켓으로 정리했고, 옷은 무게로 판매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것들은 폐기물로 분류해 이삿날 경비 아저씨와 상의해 처리했습니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감정 노동이었습니다. 기억까지 함께 정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보관이사를 하고, 공사 기간 동안 머물 집은 ‘삼삼오투’ 앱으로 원룸을 구했습니다. 단기 임대는 비쌌습니다. 그래도 아내와 단둘이 원룸에서 살아본 5주는, 다시 없을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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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는 일은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테리어는 턴키 업체에 맡겼습니다.
여러 곳의 견적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소통.
다만, 컨셉을 명확한 언어로 정리하지 못한 대가는 컸습니다. 중간중간 소통의 오류가 생겼고, 그 이후로는 자재 하나까지 직접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사실이 있습니다.
리모델링의 완성도는 비용보다, 결정의 밀도에 달려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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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대는 따뜻하고 조용합니다.
5주 공사는 빠듯하게 끝났습니다.
집은 화이트 계열의 밝은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거의 새집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디테일한 마감에서는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집들이에 다녀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달라진 집에 감탄하고 돌아갔습니다.
새 부대는 따뜻합니다.
창호를 바꾸고 로이유리를 적용하니, 겨울이 달라졌습니다. 낮에는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반팔로 지낼 만큼 따뜻합니다. 화장실에는 휴젠트 환풍기를 달아, 씻는 시간마저 편안해졌습니다.
확장을 했음에도 집은 조용합니다.
고속도로 옆이라 늘 감수해야 했던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북쪽 발코니로 물이 새는 일도 더 이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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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 자리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제 공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중창 중 한쪽을 크게 내 개방감을 높였고, 시야에는 풍경이 들어옵니다. 홍대 디자인에서 맞춘 원목 책상과 책장, 이케아의 사무용 의자. 그리고 쉬는 시간을 위한 안마기 하나.
집 안을 떠돌던 자리가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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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새로워졌지만,
사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이 공간을 대하는 제 태도입니다.
인생 5.0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새 부대에서, 조금 더 가볍게.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