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시간, 몸의 가치, 그리고 오래 갈 수 있는 관계에 대하여
인생 5.0을 함께할 취미가 필요했습니다.
20대에는 놀 것이 많았고,
30·40대에는 일하고 아이 키우느라 바빴습니다.
50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생 5.0을 준비하며
괜찮은 취미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컸고, 이제 집에는 부부만 남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취미만으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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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에게 취미가 없으면, 일상은 단순해집니다.
부부가 같은 취미가 없으면
일상은 금세 단순해집니다.
카페에 가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가끔 여행을 갑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는 않습니다.
혼자만 잘하면 의미 없는 것,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할 수 있는 것.
그런 취미가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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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선택지 끝에, 탁구가 남았습니다.
골프도 떠올렸고,
여러 운동이 후보에 올랐습니다.
같이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끝에 남은 것은 탁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탁구가 익숙했습니다.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재미로 쳐왔고,
다시 시작하는 데 큰 장벽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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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탁구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내는 탁구를 생각보다 훨씬 즐거워했습니다.
공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
리듬에 맞춰 반응하는 몸.
무엇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레슨을 하며 느리지만 분명히 늘어가는 과정에
큰 만족을 느꼈습니다.
탁구를 치는 동안에는
작은 공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니
퇴근 후에도 계속 맴돌던 회사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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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를 함께한 지, 4년째입니다.
탁구를 같이 시작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탁구클럽으로 향합니다.
매달 클럽 내 구장 리그전에 참가하고,
생활체육 대회에도 꾸준히 나갑니다.
이제 탁구는
운동을 넘어
우리 일상의 리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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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은,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 5.0을 준비하는 분들께
탁구를 포함한 생활체육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시간이 생기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재미있게 즐기려면
어느 정도의 기술은 필요합니다.
은퇴 이후에는
체력이 생각보다 빠르게 떨어집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
탁구를 랠리 위주로만 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탁구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상대를 해줍니다.
레슨을 받고,
기술을 익히고,
대회에 나가보고,
가끔은 입상도 해봐야
탁구클럽 생활이 재미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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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는 자존감을 회복시켜 줍니다.
50대 이후에는
호르몬의 변화,
직장과 가정, 사회적 역할의 변화가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런데 탁구장은 다릅니다.
선수를 필요로 합니다.
리그전에 나가자고 제안받고,
단체전이나 개인전에 출전하고,
소소하게나마 입상도 합니다.
작지만,
분명한 성취입니다.
자존감이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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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는 나이를 배반하는 스포츠입니다.
탁구는 라켓 스포츠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고,
힘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이길 수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이를 이길 수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젊은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짜릿함.
이 감각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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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는, 부부가 하면 가장 좋은 운동입니다.
탁구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상대가 필요하고,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저희 탁구클럽만 해도
부부 회원이 15쌍 정도 됩니다.
남편이 탁구를 꾸준히 하려면
아내가 함께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생활체육 대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 회식도 뒤따릅니다.
탁구를 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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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가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는 ‘관계’입니다.
은퇴는 단순히 직장을 떠나는 일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관계의 급격한 축소입니다.
매일 만나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갈 곳이 줄어들며,
부부만 남습니다.
이때 생활체육은
운동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고,
나이를 잊은 관계를 만들어 줍니다.
탁구장은 작지만,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사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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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일수록, 몸의 가치는 더 커집니다.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시대입니다.
속도는 빨라지고,
효율은 극대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몸을 쓰는 경험,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
같은 공간에서 웃고 움직이는 순간입니다.
생활체육의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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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에서, 역할로 이어지는 삶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체육 지도사 자격,
방과후 수업,
작은 탁구클럽 운영까지.
즐기면서도
노후의 소득이 될 수 있는 구조.
인생 5.0은
완전히 쉬는 삶이 아니라,
방식이 바뀐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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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5.0, 우리는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리모델링으로 공간을 바꾸었고,
탁구로 시간을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거창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입니다.
우리는 인생 5.0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시간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탁구를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