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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처럼 소설처럼 Jul 28. 2019

커피와 함께

커피와 함께 3회

SHB등급

 SHB 등급, ‘Strictly Hard Bean’의 줄임말로 굳이 해석하자면 ‘엄격하게 단단한 콩’이란 뜻인데, 사실 ‘콩(Bean)’이란 표현은 옳지 않고, ‘씨’가 맞다.

 커피는 체리처럼 생긴 작은 과일로 그 크기는 약 15 mm에 불과한데, 빨갛게 익은 체리는 새콤달콤한 맛으로 과일로써 손색이 없는 좋은 맛이다.  그러나, 체리 안에 체리 크기 대비 지나치게 큰 2개의 씨가 마주 보고 앉아 있어 과일로 먹기엔 역부족이라고 할까?  우리의 손이나 입이 수고한 만큼 적정한 양의 과육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데, 커피 체리는 우리의 수고에 비하면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어쩌면 인류는 커피의 체리가 아닌 씨를 먹는 방법을 발전시켜왔는지도 모르겠다.

 커피는 북위 20도 ~ 남위 20도 지역, 즉, 열대지방에서 재배되는데, Robusta보다 Arabica가 훨씬 고급이라는 것은 지난 회에 설명했고, Arabica는 일반적으로 해발 900 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까다로운 조건 하에 재배된다.  상상해보자, 열대지방인데 고산지대라면, 햇볕이 뜨거우나 날씨는 그리 덥지 않을 테고, 우기와 건기가 존재하는 곳 아닐까?  바로 이러한 지역의 해발 1,200 m가 넘는 곳에서 재배된 커피를 SHB(Strictly Hard Bean) 등급으로 분류하며, 1,100 ~ 1,200 m를 GHB(Good Hard Bean)등급, 900 ~ 1,100 m를 HB(Hard Bean)등급이라 한다.

 해발 1,200 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데, 낮에는 강한 햇볕, 뜨거워진 흙과 대기에 의해 커피체리도 뜨거워지고, 밤에는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흙과 차가운 대기에 의해 커피체리는 차가워진다.  물론, 커피체리 자체도 짧은 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고 깨알 만한 알갱이에서부터 시작하여 아주 천천히 그 열매가 자라나며, 커피체리 안에 있는 씨는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매일 반복되며 밀도가 높아지고 단단해지는데, 그래서, ‘Hard’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며, 단단해질수록 맛과 향이 뛰어나다.

 저지대에서 재배되는 Robusta는 이러한 등급이 책정될 수 없고 씨가 단단하지 않고 작으며, 과일의 향이라던가 단맛 또는 신맛의 조화가 없어 주로 인스턴트 커피, 캔커피 또는 블렌딩(Blending: 주로 Arabica커피와 혼합함)에 사용되는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커피꽃

 Arabica는 일단 고급이지만, 나무의 종류, 재배 방법, 해발고도, 기후 및 농장의 특성 등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다양한데, 1년에 2회 수확하는 곳도 많은 반면 코스타리카에서는 1년에 1회만 수확하므로, 씨가 단단해질 수 있는 시간이 매우 길다는 장점이 있다.  코스타리카는 지리적으로 북위 8 ~ 11도에 위치해있고, 커피농장들이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우기는 5 ~ 10월, 건기는 11 ~ 4월인데, 북반구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12 ~ 2월 고산지대는 날씨가 제법 쌀쌀하며 이런 날씨를 거치면서 다소 움츠러졌던 커피나무가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인 3월 초에 젖을 정도로 내린 비에 기지개를 켠다.  비를 맞고 약 열흘 후,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듯한 아름다운 수채화가 펼쳐진다.  바로, 커피꽃.  약 2 cm 크기에 여러 꽃잎으로 구성된 하얀색 꽃이다.


커피농장 그리고 예술

 대부분의 커피농장들은 매우 보수적이라 외부인의 출입을 반기지 않는 편인데, 약 5년 전 필자는 운 좋게도 커피농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아들 친구의 조부가 운영하는 농장이었는데, 알록달록 수국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농장 입구에서부터 멋진 말을 탄 노신사(농장 주인)가 필자를 반겨주었고,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마침 커피꽃이 하얀 눈송이처럼 가지마다 만개해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설렌다는 표현 외에 적절한 단어는 없을까’라고 잠시 멍한 상태로 있을 때 노신사로부터 들은 설명은 커피꽃이 핀 후 보통 1 ~ 1.5일이면 모두 낙화한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부끄럽게도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이미 작고하신 선친의 모습도 함께 맺혔다.  노신사는 순간 필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런 설명을 듣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꽤 많다고 짧게 격려한 후, 코스타리카의 커피는 생산이나 경제적 가치 위에 위치한 Arte(예술)라고 힘주어 말했다.  노신사의 코스타리카 커피에 대한 긍지, 자신감 그리고, 커피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전해짐을 느꼈다.

 커피꽃이 낙화하면 깨알만한 연두색 열매가 맺히고, 길고 고된 여정을 시작한다...,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을 수백 번 지나면서, 건기에서 비 내리는 우기로, 또 다시 건기로 천천히..., 외유내강이란 말처럼 겉은 부드럽지만 속엔 단단한 2개의 씨를 만들어내며, 정열적인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마음처럼 빨간 체리로 익어간다.

 수확 시기는 코스타리카의 커피 재배 지역에 따라 상이한데, 낮은 지역(물론, 해발 900 m 이상)은 10월부터 시작하고, 해발 1,800 m에 이르는 높은 지역은 이듬해 2월까지 수확이 진행된다.

 법에 의해 Arabica만 생산하며, 커피 품질의 중요 척도인 SHB 등급(해발 1,200 m 이상)이 매우 많은 코스타리카 커피, 게다가 1년에 1회만 수확하기에 열매가 천천히 익으며 씨가 단단해질 수 있는 기간이 무척 길고,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비옥한 화산토양에서 200년 이상의 전통과 경험 위에 커피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정성과 긍지에 의해 재배되는 세상에서 가장 품질 좋은 커피라고 필자는 믿는다.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약 2cm 크기로 작지만, 눈부시게 하얗고 아름다운 커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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