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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규동 Feb 19. 2019

올바른 삶에 대한 고뇌를 관망하다

'굿플레이스(The Good Place)'/ '도그빌(Dogville)'

주제는 도덕철학,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는 몰입감 


 최근 몇 년은 우리나라에서 ‘인성’이란 단어가 가장 활발하게 쓰인 시기일 것이다. 물론 90% 이상은 게임 등 인터넷 공간에서 타인이 얼마나 비열한 행동을 했는지 조롱하기 위함이지만 말이다. ‘인성…’ 이라고 점 3개만 찍어도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다


 ‘인성’이란 단어가 본래의 목적으로 쓰이게 되면 급격하게 따분하고 어려워진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봐도 도덕 수업은 점심시간에 축구를 한 후 더위 식히는 시간 정도였다. 심지어 수능에는 ‘윤리와 사상’이란 과목이 있었는데, 가뜩이나 지겨운 ‘윤리’를 ‘사상’과 접목시킨 최악의 네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굿플레이스'의 에피소드 중의 윤리학 수업 장면.

 공교롭게도 ‘굿플레이스’와 ‘도그빌’ 모두 윤리와 사상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고리타분한 주제를 플롯에 녹여내는 방식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에, (또한 어마어마한 반전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지루함0 몰입감100’의 밸런스 붕괴가 나타날 수 있었다.





독특한 세계관 연출과 낯설게 하기


 앞서 표현한 ‘몰입감100’은 독특한 세계관 설정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주의 영화에서는 ‘몰입감 = 주인공과의 동일시 강화’라는 공식이 대부분 성립한다. 그렇지만 ‘굿플레이스’와 ‘도그빌’에서 관객들은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는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낯설게 하기’ 기법을 통해 화면 상의 상황들이 픽션 임을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굿플레이스’의 배경은 사후세계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생전 행동이 점수화 되는데, 상위 1%가 굿 플레이스에, 나머지는 배드 플레이스에 보내진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전통적인 천국/ 지옥의 개념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시리즈에서 묘사되는 사후세계의 모습은 B급 감성 그 자체이다.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부서들은 인간세계의 회사를 한껏 과장한 것 같고, 배드 플레이스의 형벌들은 기상천외하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이러한 요소들과 더불어 시트콤 특유의 횡적인 인물 배치, 카메라를 직접 쳐다 보는 일부 인물들은 극 중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낯설게’ 한다.

'굿플레이스' 중 사후세계의 로봇 비서 '재닛'. 재닛의 B급 감성은 관객들을 '낯설게' 한다.


 ‘도그빌’은 배경을 연극무대처럼 표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외딴 마을인 도그빌은 마치 평면도처럼 그려지는데, 마을 건물들은 분필로 구역이 표시되어 있을 뿐 벽이나 지붕은 일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카메라 역시 연극을 녹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며, 전지적인 3인칭 나레이터가 상황을 계속 설명해준다. 이에 시청자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도그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관망할 수 있게 된다.

'도그빌'의 배경은 뻥 뚫린 연극무대 같이 설정되었다.


 이와 같은 ‘낯설게 하기’를 통해 관객들은 극중의 상황 또는 인물의 행동에 대해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관객이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동일시하게 되면, 주인공의 행위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의 두 작품 모두 도덕 원칙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주인공을 설정하고, 그의 모순적인 행동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낯설게 하기’ 기법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던지는 같은 질문, ‘도덕은 절대적인가?’

 

지금 다루고 있는 두 작품의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굿플레이스’는 코미디 시트콤이고, ‘도그홀’은 암울하기 그지없는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그렇지만 두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딘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두 작품에는 모두 철저한 도덕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굿플레이스’의 치디 아나곤예는 윤리학 교수로써 도덕적인 강박관념(특히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는)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치디의 우유부단함(aka. 결정장애)을 유발하여 그가 배드 플레이스에 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치디가 '배드플레이스'에 오게 된 이유는, 도덕 원칙을 따지다가 간단한 선택조차 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때문이다.


 ‘도그홀’의 톰 에디슨 역시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며 마을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맡는 청년이다. 그 역시 마을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바친다. 그러나 톰은 결국 마을 사람들의 타락을 방조하고, 그 자신마저 그레이스에게 ‘도덕’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밀게 된다.

톰은 자신의 욕망과 도덕 원칙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파멸한다.


 이와 같이 ‘굿플레이스’와 ‘도그빌’은 도덕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주인공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행동들이 불러일으키는 파국들을 보여줌으로써,  ‘선한 의도 -> 선한 행위 -> 선한 결과’ 라는 도덕률이 인간 사회에 완벽하게 적용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
내 행위와 판단의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모든 판단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맡기는 것이 최선일까? 


‘굿플레이스’와 ‘도그빌’의 문제제기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일 것이다.




Cf) 앞서도 말했듯이 ‘굿플레이스’와 ‘도그홀’은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지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굿플레이스’는 대중적인 B급 감성으로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았을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러나 ‘도그홀’은 작품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드리워져 있고, 다소 적나라한 묘사가 수반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굿플레이스 (The Good Place)'

마이클 슈어(Michael Schur), NBC (Netflix), 

현재 시즌3까지 공개.





'도그빌(Dogville)'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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