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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Aug 29. 2023

먹고사는 일, 결정은 내가 한다

내가 꿈꾸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살면서 열정이 뜨겁다 못해 흘러넘치던 시절을 떠올려보자. 초등학교 3학년 시절, 나를 찾는 일은 너무나 쉬웠다. 동네 친구들과 '깡통차기'를 하기 위한 놀이터인 좁은 골목길과 2분 거리에 있던 오락실만 가면 내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서 깡통을 차거나 '킹 오브 파이터즈'라는 오락을 하거나.


머리가 좀 크고 나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는 축구에 빠져 살았다. 축구화는 없었지만 만능 실내화 한 켤레면 농구공이던 탱탱볼이던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는 스타크래프트에 환장했다. 눈만 뜨면 게임 방송을 틀었고 내게는 스타리그가 월드컵보다 긴장감이 넘치고 가슴을 뛰게 만드는 스포츠였다. 부모님께서 밤새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풀어주셨다면 프로게이머가 됐을 수도....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카메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한 명은 시나리오를 쓰고, 한 명은 콘티를 짜고, 한 명은 붐마이크를 들고, 한 명은 카메라를 들고. 뮤직비디오, 단편 영화, 예능 쇼를 찍으며 꿈을 키웠다. 지금은 생뚱맞게도 물리치료사가 되어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나'를 나타내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왔던 일을 나열하고 보니 한 가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일 말고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었나?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미래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구체화하기 위해 현재, 그리고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려보았다. 현재의 나. 겉모습부터 볼까? 나는 170이 아주 조금 안 되는 키를 가졌다. 작은 키 때문에 콤플렉스라던지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살면서 몇 가지 불편한 점은 있다. 예를 들면, 바지를 사도 꼭 수선을 해야 입을 수 있다던지, 주방 수납장 꼭대기에 있는 라면을 꺼내려면 의자를 가지고 와야 한다던지, 만원인 지하철에 탔을 때 키 큰 사람에게 둘러쌓이면 시야가 매우 답답할 때 불편하다. 그렇다고 키가 컸으면 하는 아쉬움은 딱히 없다.


불편함이 없는 외면과 달리 현재 나의 내면은 조금 불편하다. 뒤죽박죽, 각종 감정이 뒤얽혀있는 상태다. 나이를 먹으면서 경력도 쌓고 삶에 대한 노하우도 늘었다. 하지만 덩달아 욕심도 살쪘고 고집도 세졌다. 여기에 겁까지 늘어나니 환장의 트리오다. 욕심은 커져서 남들처럼 돈도 벌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좋아 보이는 건 따라 하고 싶다. 그런데 고집이 세지니까 하기 싫은 일, 귀찮은 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러다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번에도 망했잖아.' 겁만 잔뜩 늘어서 엄두도 내질 못한다. 그런데 욕심은 누그러들지 않고 또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나를 들쑤신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지만 난 열정을 가진 소년이었다. 뜨겁다 못해 흘러넘치는 열정으로 학창 시절을 후회 없이 보냈다. 그럼 뭐가 문제였을까? 아니,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뜨겁던 시절에는 10년 후의 내가 이런 모습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평범한 공부가 아니라 영상을 공부하고 싶어서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다. 휴대폰이 너무 갖고 싶어서 휴대폰이 필요한 이유, 휴대폰을 얻게 됨으로써 생겨날 이익을 글로 적어서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직장인 3년 차 시절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비전이 없다고 판단해서 사표를 던지고는 자전거와 텐트만 달랑 들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직을 하도 많이 해서 남들이 '이력서 쓰려면 한참 걸리겠다'라고 놀려도 아니다 싶으면 자리를 박차고 이직을 했던 나다. 그런데 지금은 눌러앉고 싶다.


어렸을 때 일 외에 내가 꿈꾸던 나의 모습은 이랬다. 깨끗한 집에 나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일하고 그만한 대우를 받고 싶었다. 돈 걱정 없이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겨울에는 후끈하게 보일러를 틀고 싶었고, 여름이면 땀 한 방울 나지 않게 에어컨을 틀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하루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꿈이 너무 소박한 게 문제였을까? 어쩌면 나는 어렸을 때 꿈꾸던 모습을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대로 꾸준하게 살고 싶은 건 아닐까?


그런데 왜 마음속에 욕심이 자라고 남들을 부러워하는 걸까? 사람은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성장한다. 성장하는 속도에 걸맞게 꿈을 담기 위한 그릇도 넓혀야 하고 꿈도 키워야 했다. 그런데 난 그러질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잘 알아서 나를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무엇에 기쁨을 느끼고 슬픔을 느끼는지 잘 감각할 수 있는 사람. 외부가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 그래서 나를 보는 많은 타인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나를 사랑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어렸을 때 열정이 흘러넘칠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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