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은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이라고 합니다. 32살이고 서울에서 왔습니다.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담당하는 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나게 되어서 기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봄, 독서 모임에서 나를 소개했던 말이다. 나는 왜 자기소개를 할 때 자연스럽게 직업을 말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소개를 할 때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이와 사는 곳, 직업을 말한다. 잘은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은 ‘나’를 표현할 때 꽤 중요하다.
그렇다. 나는 10년 차 물리치료사다.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누적된 경험치가 있다 보니 사람이 서 있는 자세만 봐도 어디가 불편할지, 몸을 어떻게 썼을지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도수치료를 시작한 지 만 8년이고, 한 달에 평균 20명 정도의 신규 환자를 만났다. 지금까지 최소 1,900명이 넘는 새로운 환자를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몸에 관심이 없다.’ 아프면 아픈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산다. 그나마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병원에 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절대다수는 병원에 간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치료할 때 환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병원에서 병은 고칠 수 있지만 건강은 되찾을 수 없다. 건강은 직접 관리할 수 있고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처음에는 의지가 불타지만 이내 곧 이런 말을 남기며 처음으로 돌아간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귀찮아서, 너무 어려워서…”
이런 현실이 안타깝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 의학과 관련된 분야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당연히 수술을 요하거나 약물이 필요한 치료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물리치료나 도수치료로 좋아질 수 있는 불편함은 충분히 혼자서도 관리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관심이 없다. 어쩌면 주체적으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의존도가 높은 건 아닐까? 이건 건강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지난 10년을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천직으로 여겼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세례도 받았다. 나의 세례명은 라파엘이다. 라파엘은 치유의 대천사라고 불린다. 와우. 심지어 고등학생 때 내가 직접 고른 세례명이다. 한 때는 이 모든 조각들을 이어 붙여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니 천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천직으로 생각했어도 순탄하게 잘 풀렸던 건 아니다. 커리어 내내 10번이 넘는 이직을 했고 지금은 13번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퇴직금을 받은 건 고작 3번. 아무리 이직률이 높은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나 같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쯤 되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건 자기 암시가 아니었을까? 물론 이직을 많이 했다고 직업의 만족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이직을 거듭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나는 왜 밥먹듯이 이직을 했을까? 누구에게 질문을 던진 들 내가 아니면 답을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여기는 왜 그만뒀고, 저기는 왜 그만뒀어? 여기는 사람이 문제였고, 저기는 비전이 없었고, 거기는 총체적 난국이었어. 정리하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남 탓을 해대는 인간이었구나’라는 것을.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았다. 나는 문제가 없었을까?
제대로 된 질문을 하니 제대로 된 답이 나왔다. 문제는 나한테 있었다. 처음부터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미래에 물리치료사는 없었다. 아니, 물리치료가 뭔지도 모르고 물리치료과에 진학했다. 심지어 물리치료사가 되고 나서야 치료를 처음 받아보았다. 그럼 천직으로 여겼던 건 어떤 근거였을까? 첫 번째는 안정적이다. 마음이 잘 맞는 의사를 만나고 괜찮은 입지에 입소문이 잘나면 고수입에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지금도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마음 편히 책을 읽어도 누가 간섭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직업이다. 처음 물리치료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도 할아버지의 권유 덕분이었다. 세 번째는 일 하면서 얻는 보람이 크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네 번째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싶었다. 물리치료사가 된 이후에도 학회 교육비로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썼고 쉬는 시간 틈틈이 공부하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스터디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내 꿈은 뭐였을까? 나를 소개할 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말하고 싶은 걸까?
중학교 1학년 때는 프로게이머를 꿈꿨다. 게임 실력도 꽤 좋았다. 만약 집에서 밤새 게임 연습하는 걸 허락했다면 프로게이머가 되었을 수도…
중학교 3학년 때는 휴먼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즐겨보지만 그때부터 인간극장은 넋 놓고 볼 정도였다. 그래서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선언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영상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로 갈게요.’ 그렇게 상고 계열의 영상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고등학생 때 독립 영화를 만들어 청소년 영화제에도 출품하고 뮤직 비디오도 제작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예능 프로그램을 카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다 떨어지고 할아버지의 권유로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한 물리치료과에 합격해서 진학했다. 내 직업은 이렇게 결정됐다.
32살이 된 지금,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주체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안타까워하는 환자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먹고사는 일, 이제는 내가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생각을 나누고 서로 응원하고 싶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된다. 욕심은 살쪘고 편한 게 좋으니까. 하지만 또다시 이직하고 고민하는 삶을 반복하는 멍청이가 되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보고 싶다. 지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꿈을 찾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 나도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도 나를 응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