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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09. 2022

문어(1/4)

4부작 단편 SF소설

 본 소설은 SF입니다만, 각종 Data 및 수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니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장님. 스윙바이 2단계 돌입합니다."


"모두 안전벨트 매고, 모든 사물은 고정하세요. 중력 방향이 바뀔 겁니다."


크루들은 선장의 말대로 묵직하고 뻐근하게 느껴지던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김크루, 진행좌표 확인해봐요. 스윙바이 2단계는 언제 끝나죠?"


"화성 중력영향에서 99.99% 멀어지는 지점을 통상 스윙바이 종료지점으로 잡습니다. 현재 속도 기준으로 2시간 16분 후면 라그랑주점을 벗어나 영향권에서 멀어집니다."


"연료와 엔진 상태는요?"


"좌측 7번엔진을 12분간 자동 가동했습니다. 진행방향을 x785 y201 z41 절대벡터 수정했고 수직축으로는 541Ns 에너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예상 범위 이내입니다. 연료잔량 92.1%."


"역시 100% 예측은 없군요. 양자컴퓨터를 쓰면 혹여 오차가 없지나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초조건은 결국 인간이 설정하는 거라서요. 측정하기 전까지는 지구에선 모르는 거죠. 그래도 이만하면 엄청나게 정교한 거 아닐까요, 선장님?"


"정교하게 예상했는데 정교한 범위 안에서 오차가 생겼으니 놀랄 것도 없죠. 기대가 높을수록 기대 이상 해 내기 어려운 거 압니다. 그래도 더 완벽하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이네요."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2시간 16분 후. 해모수 탐사선은 화성 라그랑주점을 통과하며 스윙바이를 마쳤다. 스윙바이는 행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기술. 우주선이 속도를 높이는 만큼, 행성은 운동에너지를 잃게 되지만 상대적 질량 차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공학적으로 속도 계산은 우주선에만 초점을 맞춘다. 최종 연료잔량은 91.4%. 스윙바이 진로 교정까지 최대 10%의 연료를 설계했지만, 절반은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태선장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chsshim, 엘랑의 Launch Window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가감속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작용 반작용 법칙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중력장을 일으켜 공간을 비틀어 나가는 방법이 이론적으로 제시되긴 했지만, 해당 기술이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면 10세기는 더 있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탐사임무는 보급선이 별도로 없다. 실패하면 그대로 미션 종료. 모든 크루들은 지구에서 출발하기 전 영정사진도 다 찍어놓고 유서도 남겨놓고 왔다. 태선장이 연료 잔량에 신경쓰는 이유는 계획범위 이상으로 연료를 사용하면 당연히 지구로 귀환도 못할뿐더러, 여유분의 연료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탐사할 유로파 위성에서 돌발적 변수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선장은 어린 시절부터 달과 별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천문학과에 가지는 못하고 실용 공학의 영역인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복수전공했지만, 결국 행성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것에 성공했고, 학문간 융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서 행성탐사공학이라는 신 영역을 개척한 장본인이다. 누구보다 우주를 동경했던 그는, 만 40세까지 지원이 허용되는 우주인 선발 공모전에 단 이틀의 생년월일 차이로 가까스러 비집고 들어온 최고령 지원자였는데, 우주청은 그의 우주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기계와 전기를 아우르는 공학적 지식, 경항공기 운행자격을 가진 그의 믿음직한 경력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해모수 우주선의 선장으로 그를 임명했다.

 



 지구에서 이번 탐사의 목적지인 목성 위성 유로파까지 도달하는 데는 지구시간으로 총 715일이 걸린다. 11년마다 오는 최근일점에 맞추어 출발했으니 망정이지, 원일점을 기준으로는 1,679일이나 걸린다고 하니 유로파의 유인 탐사는 정말 더 빠른 엔진이 개발되지 않는 한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화성의 스윙바이를 거쳐, 지구를 떠난 지 지구시간으로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인공중력은 여전히 너무나 이질적인 느낌이라 발바닥은 바닥에 착착 잘 붙는데 머리는 공중에 둥둥 들려있는, 발바닥만 접착제로 붙여 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우주선을 더 크게 만들면 괜찮다는데, 이 우주탐사선은 예산이 대폭 깎여서 승무원 주거실의 회전반경이 중심축을 기준으로 최초 설계의 절반인 34m밖에 안 된다. 우주청에서는 옛날엔 무중력 우주선도 있었다며 이 정도면 초호화 설계라고 만족하라지만, 왕복 4년에 가까운 시간을 탐사우주선에서만 기거해야 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자연스러운 인공중력을 고려한 설계는 많이 아쉽다.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조 단위의 돈을 투입하는 건 아깝지 않으면서 우주 개발에 돈을 쓰는 건 제약이 너무 많다. 어차피 유한한 지구에서의 삶인데, 우주에 투자하는 게 왜 그리 아까울까. 현세대가 살아있을 때 까지는 지구가 인류의 삶을 견디어 줄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그나마도 이번 탐사가 미래인류를 위한 대체거주행성 탐사계획에 반영되어 추진된 일이지, 국민 여론은 우주 탐사에 여전히 인색하다.


이미지 출처 : https://cafe.naver.com/kerbalforum, AGST인공중력 우주정거장


 인공중력에 최대한 잘 적응하는 방법은 회전하는 원주방향에 몸을 일치시키는 일이다. 쉽게 말해, 바닥에 눕는 느낌이 가장 지구에서 느끼던 중력의 느낌과 비슷하다. 지구중력과 비슷한 1G에 맞춘 기준은 바닥면이며, 바닥을 기준으로 똑바로 서게 되면 키 175cm의 크루 평균신장 머리부분이 느끼는 중력은 0.85G로 차이가 나게 되니, 상당한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주선 내에서의 생활은 매우 따분하며 지루하다. 아직 인류의 기술은 냉동동면을 완성하지 못했다. 실험적 시도가 있긴 했지만, 동면 이후 높은 확률로 깨어나지 못했으며 동면 후 깨어난 사람들도 혈액 응고, 말단조직 괴사, 단기 기억상실 등 부작용이 심했다. 냉동을 하지 않는 상온 수면기술은 최장 15일까지 성공했는데, 상온 수면은 어차피 중간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주인이 장거리 여행에 도움되는 기술은 못 된다. 즉, 어쩔 수 없이 아직까진 우주선 안에서 먹고 자고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태선장을 포함한 총 승무원은 4명이다. 24시간 항행을 하는 우주선이므로 승무원 4명은 각 2명씩 교대근무를 한다. 교대근무의 파트너는 한 달에 한 번씩 바뀐다. 우주선의 생활구역은 절반은 낮 구역, 절반은 밤 구역으로 운영된다. 지구의 자전 한 바퀴가 하루니까, 분당 2.7회전을 자전 주기로 갖는 이 우주선의 하루는 22.2초가 되어야 맞지만, 그건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그런거고 우주선 내부의 승무원은 시계 없이 하루가 얼마나 지나는지 자각하기 어렵다. 시간 개념을 체감할 수 있도록 낮 구역 생활구역의 중앙등은 신체의 바이오리듬을 고려하여 자동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조절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근무조의 임무는 단순하다. 운행시스템 및 생명유지장치 점검, 예방정비 및 필터교체, 항해일지 작성, 식사준비, 운동. 모든 일을 다 고려해도 하루 한 시간 일거리도 안 된다.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나 다름없는데 우주청은 이를 고려하여 4명의 승무원 모두에게 우주대학원 입학을 강제토록 했다. 우주대학원이란 심우주로 보내지는 승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원격 교육시스템으로 과정 이수 시 실제 학위가 수여되도록 행정 절차를 마련하였다. 탑승 승무원의 무료한 일상을 방지하며, 동시에 우수한 자원을 길러내고자 하는 의지가 잘 맞물려 개발된 개념이다. 


 태선장은 메타데이터학, 민크루는 우주생물학, 한크루는 행성지질학, 김크루는 심우주항법학을 각각 우주대학원의 심화 교육과정으로 택했다. 평온한 일상에 공부까지 시켜주고 학위까지 준다는데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잠시 일하고 공부하고 숙제하고 운동하고 먹고 잠자다 보면 하루하루가 금방 금방 흘러갔다.




 항해 709일째.


 감사하게도 큰 탈 없이 목성의 중력권에 진입했다. 12시간 전부터 태선장은 모든 크루들이 동시에 근무하도록 근무명령을 하달했다. 앞으로 궤도천이가 끝나게 될 51시간까지는 아무도 편하게 잠들 수 없으며 조종석에서 선장의 승인하에 교대로 짧은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기간만큼은 에너지드링크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는 사흘 동안 안 자도 큰 문제없지만, 집중도 저하를 막기 위해 15시간마다 30분씩의 수면을 취하도록 매뉴얼에 규정되어 있다.



 이제부터는 행성 간 항행 궤도를 수정해서 목성에 공전토록 우주선의 항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목성을 5바퀴 돌며 감속해야 한다. 적당히 감속이 된 후에는 유로파의 공전궤도로 다시 천이항행을 해야 한다. 엔진은 거들 뿐 모든 항로에는 행성과 위성간의 중력이 세밀하게 작용해야 한다. 마치 유도 기술처럼, 상대방의 힘을 내 기술인 양 뺐어 쓰는 형상이다. 현대 기술로 우주선을 더 빨리 항행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목적지인 유로파에서 멈추는 것이 중요한데, 처음부터 너무 빠르게 항행하면 여기서 제대로 멈추는 것이 무척 어려워진다. 그래서 화성에서 스윙바이하며 속도를 높였던 것처럼, 목성의 중력을 이용하여 감속하는 것이 이번 탐사우주선 항행의 필수요소이다. 목성의 중력에 제대로 올라타기 위해 감속엔진을 사용하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중력궤도에 안착하기 위함이며 감속과정의 대부분은 목성과 목성의 위성이 가진 중력의 힘이 중요하다.


 기회는 단 한번뿐.

 감속엔진이 너무 급격히 감속하면, 탐사우주선은 목성의 중력에 빨려들어 잡아먹히고 말 것이며, 너무 천천히 감속하면 목성을 그대로 지나쳐 토성까지 곧장 가고 말 것이다. 이 우주선은 토성까지 가도록 설계되지 않았고 연료도 없으니 그랬다간 영원히 우주미아가 되는 거지.


 




 항해 711일째.


"선장입니다. 모두 함교에 모이세요. 목성 공전을 위한 궤도 안착 과정에 돌입할 겁니다."


민크루, 김크루, 한크루 모두 선장의 지시대로 함교 컨트롤룸에 착석했다.



"현재 이심률이 얼마죠, 김크루?"


"기준 이심률 8.740 +- 0.02, 현재 이심률 8.711. 궤도 수정조작이 필요합니다, 선장님"


"이심률 조작에 필요한 총 에너지와 최적 타이밍을 계산해보세요. 한크루"


"어떤 기준으로 할까요? 에너지를 덜 쓰는 쪽? 목적지에 빨리 가는 쪽? 아무래도 연료를 아껴야 되겠죠?"


"연료를 아낄 수만 있다면 목성 공전은 두세 번 더 돌아도 괜찮습니다."


"48분 7초 후 목성 제2라그랑주점을 돌파하자마자 7번 자세제어엔진과 12번 역분사엔진을 71% 출력으로 12초간 동시에 가동하는 것이 가장 에너지 사용이 적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준이심률 +0.01 이내 범위로 맞출 수 있습니다, 선장님"


"좋습니다. 조작 승인합니다. 스케쥴링 하세요."




 48분 7초 후, 정확히 엔진이 점화되었다가 12초 후 꺼졌다. 승무원들이 느끼기엔 점화가 되다말고 꺼지는 듯한 순간적인 이벤트였지만, 안정적인 궤도로 우주선을 밀어넣기에는 충분한 조작이었다.


"김크루, 연료 잔량은?"


"87.2% 입니다. 현 기준 80% 이상만 있으면 되는 지점입니다. 충분히 아꼈습니다."


"다행이군요. 연료는 우리가 지구로 귀환하기 위한 마지막 구명보트임을 모두 잊지 말기 바랍니다."


궤도에 올라탄 탐사 우주선은 목성을 크게 한 바퀴 타원형으로 공전하더니,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공전 횟수를 거듭하면서 점점 원형궤도를 찾아가며 속력이 빨라졌다. 이제 감속의 마지막 단계 및 유로파 위성으로의 궤도천이 조작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다.


"자, 모두 시뮬레이션을 백번도 더 해봤을 겁니다. 실전이에요.

 민크루, 유로파와 목성의 라그랑주 점 근일포인트 접근 시점을 계산해줘요."


"지금부터 7시간 24분 15초 후 입니다."


"라그랑주 점 근접점에서 궤도천이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드럽게 올라타요. 김크루. 해당 시점에 감속 스케쥴링 하세요. 엔진 출력곡선은 3번 천이패턴을 사용하세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천이궤도 변경토록 엔진 스케쥴링 하겠습니다."




천이궤도 변경을 위한 엔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경고, 경고. 5번 엔진 점화불가. 경고, 경고. 5번 엔진 점화불가. 경고, 경고. 5번 엔진 점화불가."


모니터에 온통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


"뭐...뭐야....무슨 상황이야?"


민크루가 알람경보기를 끄며 답한다.


"천이조작 엔진 두 개 중 하나가 점화가 안 됩니다. 점화계통이 고장이에요. 이대로는 궤도 이탈합니다."


"수동조작! 5번엔진 정지! 보조엔진 켜!"


"5번엔진 정지. 보조엔진 가동!"


우주선이 진동하며 보조엔진이 가동되었다. 모든 크루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궤도 추적그래프 띄워. 오차범위 이내로 수동조작. 연료낭비하지마!"



민크루는 우주선 속도를 봐 가며 엔진 출력을 조작하고 한크루는 추력편향노즐을 작동해서 목표궤도와 벡터를 일치하는 조작을 동시에 한다. 정밀하게 사전 프로그래밍 되었던 5번 천이궤도 조향엔진에 비하면 에너지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다.


"휴... 선장님. 궤도 천이 완료했습니다. 기준속도보다 2% 빠르지만, 임무가능 수준에 듭니다."


"안심할때가 아냐. 연료량 보고바람"


"아.... 선장님. 연료잔량 67%입니다. 미션기준 75%에 한참 못 미칩니다. 어떡하죠?"


"아니, 수동조작에 그렇게 연료가 많이 들어갔나? 어떻게 된 거야?"


"추적 그래프를 추종하려다보니 상하좌우 피치를 맞추느라 낭비가 있었습니다. 5번 엔진이 작동되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아.... 어쩔 수 없지요. 이후 미션을 좀 변경하면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김크루. 유로파로 궤도천이 성공했다고 지구에 보고해주세요."


지시, 명령조의 태선장 음역이 평소 톤으로 내려오며 존댓말로 바뀌었다. 승무원들은 이런 태선장의 언어습관에 매우 익숙하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긴장도를 올리며 임무에 집중하는 말투이고 평상시에 승무원을 배려하는 말투라는 것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지구 출발 715일째.


유로파. 이미지 출처 : NASA.gov


전망대 창으로 유로파가 선명히 육안으로 보인다. 예정대로 유로파 공전궤도에 안착했다. 임무기준 연료량 69%, 현 연료 잔량 62%. 태선장은 생각했다.


"임무 계획을 바꿀 수밖에..."


- 2편으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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