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대통령님, 오늘 오후 2시에 타이탄 새서울시로 출발하실 예정입니다. 타이탄 테라포밍 200주년 행사가 있습니다."
"출발 장소는 늘 거기겠죠, 김실장?"
"네, 대통령님. 편도 하루이상 이동시간이 필요한 모든 곳은 시간관리 효율성과 보안, 안보를 고려하면 무조건 크리스탈 게이트를 쓰시는 게 유리합니다."
"매번 그렇지만, 억지로 잠드는 느낌이 썩 그리 유쾌하진 않아요. 잠든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죽는 거잖아. 진짜 죽는 거 맞는데 죽지는 않다니 거 참 썩 깔끔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없군요. 신기술이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 사회 문화 윤리가 기술의 속도를 못 따라온다구."
"아직 대중에게 보편화된 기술이 아니니까요. 대통령님도 아시다시피, 크리스탈 게이트는 특수한 목적에만 허용된 국가보안기술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아직도 저게 순간이동 기술인줄 알지요."
"저게 만능복제기술인 게 알려지면 이 사회는 끝입니다. 진품도 복제품도 구분도 없어지고 누가 진짜인지도 모르는거죠. 저게 정말 판도라의 상자가 아닐까 나는 늘 의심이 됩니다."
"다른 나라 수장들이 다 쓰는 기술인데, 그렇다고 우리만 안 쓸 수도 없지 않습니까. 비밀유지조직인 TZP가 세계적 공조하에 일을 잘하고 있으니 설사 비밀이 대중에게 조금 샌다고 해도 그들이 깔끔하게 정리할 겁니다."
"국가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군요. TZP가 나 역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죠?"
"감시가 아니라... 밀착 경호지요, 대통령님."
신세기 201년(서기 4799년).
인류는 다수의 태양계 행성과 위성들을 정복했다. 달과 화성을 기점으로 우주 식민지를 차차 넓혀오다가 물로 이루어진 목성 위성인 유로파 정복을 기점으로 토성의 위성 타이탄까지 테라포밍을 완성했다. 인류는 타이탄 테라포밍이 완료된 서기 4598년을 신세기 원년으로 다시 정의하고 이때부터 모든 우주력을 시작하는 것으로 달력을 다시 세팅했다. 태양계 정복은 이제 끝났으니, 우주정복을 위한 원년이라는 의미다. 인류의 태양계 행성, 위성 정복에는 발달된 우주선 제작 기술과 우주 항해기술이 기반이 되긴 했지만, 크리스탈 게이트라고 하는 순간이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
크리스탈 게이트는 엄밀히 말하면 양자스캐너, 양자얽힘 통신기술과 양자3D프린터를 이용한 복제기술이다. 크리스탈 게이트의 작동원리는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그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국가 최고권력층과 비밀유지조직인 TZP요원 등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이 기술이 대중들에게 그냥 단순한 순간이동장치로 알려져 있는 이유는 복제되지 말아야 할 사물이 복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크리스탈 게이트는 인풋 게이트와 아웃풋 게이트로 구성된다. 사용법은 단순하다. 인풋 게이트에 물건을 넣고 작동시키면, 얼마 후 아웃풋 게이트에 동일한 물건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인풋 게이트에 넣은 물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복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크리스탈 게이트가 없는 질량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복제가 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원소는 공급해주어야 한다. 기본적인 원소통만 채워두면 분자단위의 구성은 알아서 한다. 즉, 수소와 산소만 담아두면 물(H2O)이든, 과산화수소(H2O2)든 아웃풋 게이트가 알아서 만든다는 소리다. 같은 이유로, 금덩이를 인풋 게이트에 넣는다고 금덩이 두 덩이가 생기지는 않는다. 인풋 게이트에 금송아지를 넣고, 아웃풋 게이트에 금송아지를 꺼내고 싶으면, 아웃풋 게이트 원료통에 금 원소를 가득 담아두어야 한다.
인풋 게이트와 아웃풋 게이트는 양자얽힘 기술로 통신한다. 양자얽힘 통신이란 한 번 얽힌 양자간의 관계는 시공간을 뛰어넘어도 그 정보를 공유한다는 현상을 적용한 통신기술로, 행성간 표준 통신기술로 자리잡았다. 행성간 거리는 멀어서, 지구에서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까지 거리는 평균 15억km로, 초속 30만km인 빛의 속도로 통신을 하려해도 단방향 통신에 80여분이 걸린다. 그런데, 양자얽힘 통신은 시간 지연이 없다. 왜 한번 얽힌 양자쌍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핀의 방향을 항상 반대로 유지하는지 그 원리를 이해한 사람은 없지만, 어쨌거나 물리학적으로 증명된 틀림없는 사실이며, 과학자들은 이를 응용한 통신장치를 만들었다. 몇 백 광년이 떨어져도 시간 지연이 0.000001초도 없는, 정말 꿈의 통신기술.
인풋 게이트에 들어온 사물은 양자 스캐너를 통해 스캔된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게이트 안에 있는 사물은 분자 내 원소 단위 하나까지 완벽하게 측정되어 기록으로 되고, 이 측정기록을 다시 아웃풋 게이트로 양자얽힘 통신기술로 전송한다. 아웃풋 게이트에서는 전송받은 측정데이터를 원소단위 하나까지 재구성해서 양자3D프린터로 동일한 사물을 만들어낸다. 없는 원소를 창조해 낼 수는 없다. 재구성을 위한 원소는 종류별로 모두 공급해주어야 한다. 이는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인류의 오래된 유물인 잉크제트 프린터에 색깔별로 잉크를 충전해 주던 일과 비슷하다 하겠다.
인공적인 사물은 어차피 사람이 만든 거니까, 설계도를 받아 3D 프린터로 재출력해내는 일이 별반 신기할 것도 없다. 신기한 것은, 이 첨단기술은 살아있는 생명까지도 완벽하게 출력해내며, 심지어 복사 대상인 원 제품... 아니, 원 생명체의 기억과 감정까지도 똑같이 재현해 낸다는 것이다. 신세기력 3세기가 시작되는 지금도 어떻게 분자생물학 관점에서 의식과 기억이 저장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자를 똑같이 배치하기만 해도 생명이 그대로 깃들고, 의식과 기억이 그대로 발현되는 것을 보면, 과연 생명이란 것이 신의 영역인지 정말 정교한 분자단위 로봇의 영역인지 모두를 헷갈리게 만든다.
크리스탈 게이트는 주로 사람을 우주 식민지로 보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총 에너지를 고려해보면, 일반 물건은 우주선에 실어 직접 이동하는 편이 싸게 먹혔는데, 사람을 우주선에 태워 보내려니 생명유지장치와 식량, 그리고 우주 식민지에 도달하기까지 시간 등을 고려하면 우주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비효율적으로 계산되었다. 그런데, 게이트를 한 번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워낙에 많이 들다 보니, 게이트의 가동계획은 국가자원을 고려하여 정부에서 통제하였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이 게이트를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고,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해 선발된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보내졌다.
오후 2시. 크리스탈 게이트에 대통령이 도착했다.
"캡슐베드에 누으시지요, 대통령님."
대통령은 모든 옷을 탈의하고 인풋 게이트 캡슐베드에 몸을 뉘었다.
"한 숨 푹 자고 일어 나면 타이탄에 도착해 계실 겁니다."
"자는게 아니라, 이 신체는 살처분된다는 거 압니다. 며칠 갔다가 도로 올 텐데, 그냥 죽이지 말고 잠시 냉동보관해두면 안 되려나요? 이 신체가 정이 들어서 처분된다니 영 서운하군요."
"대통령님. 원칙을 아시지 않습니까. 타이탄에 새 신체를 만들고 여기 신체를 보관하시면 대통령님이 두 분이 생깁니다. 그리고, 타이탄에서 일어난 기억을 지금 신체에 주입할 수 있는 기술도 없어요."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잖소.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그나저나 이번에 복제할 땐, 이 왼팔의 흉터는 빼고 복제하면 안 될까요? 어차피 돈 드는것도 아니지않소."
"100% 스캔 후 100% 복제하는 기술 특성상 그건 불가능합니다. 점심때 드시고 위장에 남아있는 백숙 고기조각부터 어제 물린 모기자국까지 100% 그대로 복제되어 타이탄에서 깨어나실 겁니다."
"하여간 김실장은 농담을 받아주는 적이 없구려. 그냥 립서비스로 '이번 신체는 한 3년 더 젊게 세팅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듣는 내가 그거 농담인 줄 모르나. 정확한 건 좋은데, 매번 너무 차가워~"
"대통령님 보좌하는 자리는 섣부른 농담도 허용되지 않는 자리입니다. 의도치 않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잘 다녀오십시오, 대통령님. 이틀 후에 뵙겠습니다."
지이이잉~ 캡슐베드 문이 닫힌다.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수면가스가 캡슐베드를 채운다. 대통령은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속보입니다. 대통령이 크리스탈 게이트를 이용하여 타이탄으로 전송되던 중, 갑자기 모든 양자얽힘 통신정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타이탄 새서울시에 있는 크리스탈 아웃풋 게이트에서 대통령의 신체는 78%만 만들어지다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양자얽힘 통신이 실패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이번이 처음으로, 전문가들이 그 원인을 밝히려 애쓰고 있습니다."
유례가 없는 크리스탈 게이트 오작동 사고가 일어났다. 그것도 대통령 전송과정에서. 양자컴퓨터와 AI로 자동제어되는 시스템의 특징을 고려할 때, 실수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지하자금을 색출하려는 의지가 워낙 강했던 대통령이라 사회기득권에 많은 적을 두고 있었고 자금과 기술을 꽉 쥐고 있는 그들에게 당했다는 음모론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 진실에 접근할 수는 없었다.
"부통령님. 지구에 남아있는 대통령 신체가 아직 살아있습니다. 도로 깨워야 하지 않을까요?"
"김실장님.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타이탄 크리스탈 게이트에 대통령 신체의 78%가 전송되다 말았어요. 대중들은 이곳 지구의 크리스탈 게이트에 대통령 신체가 22%만 남아있다고 믿고 있다구요. 만일, 지금 대통령이 다시 눈을 뜨고 건강하게 살아난다면, 크리스탈 게이트가 만물복제장치라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밝히는 꼴밖에 안 됩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이미 살처분 된, 우주식민지에 살고 있는 클론들의 원래 신체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럼..............?"
"원래 계획대로 실행하세요."
3일 뒤, 지구의 한국 서울시와 타이탄 위성의 새서울시에서는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장으로 열렸다. 각각 22%와 78%의 신체가 든 관을 장례식장에 모신 채.
그리고, 부통령이 보궐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역사는 이 날의 사고가 부통령의 쿠데타였는지 한국의 조만장자들이 사주한 테러였는지 단순한 기기 고장이었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한 채, "알수없는 사고"라고만 기록하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