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12. 2022

문어(3/4)

4부작 단편 SF소설

 본 소설은 SF입니다만, 각종 Data 및 수치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으니 그냥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편에서 계속 -

https://brunch.co.kr/@ragony/147



 4시간 후. 


 드디어 지각 아래 해수면이 열렸다. 신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것이다.

 핵전지 드릴 덕분에 길이 열려 있지만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핵전지 가동이 멈추면 빠르게 도로 얼어붙어 문이 닫힐 것이다.



 비둘기 탐사차량에 달린 핵전지 드릴은 해양으로 들어가는 이 문을 열어두는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핵전지의 방사열을 이용해서 해양지각이 열린 공간을 영상으로 잠시 유지하는 기능이다. 이는 잠수정의 탐사시간을 고려해서 최장 6시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탐사시간은 안전률을 고려해서 4시간으로 제한되었다. 나머지 두 시간은 혹시 모를 사고나 돌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6시간이 지나면 어렵게 개방한 이 문이 다시 꽁꽁 얼어 닫힐 것이다.



"사령선 나오세요.

 김크루, 한크루. 우리는 이제 잠수합니다. 최장 네 시간 걸릴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네 시간이 지나도 잠수정이 부상하지 않으면 정확히 4시간 10분 후에 원격으로 와이어 인양하시기 바랍니다. 인양이 만약 실패한다면 구조작업은 꿈꾸지 마시고 사고 보고 이후 절차대로 지구로 귀환하시기 바랍니다."


"예, 선장님.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인류사에 남길 큰 발견을 하고 오시길 빕니다."


김크루가 대답했다.


"자, 민크루. 이제 내려가 볼까?"


"예. 선장님. 신세계로 가는 길을 환영합니다."


"좋아. 그럼, 잠수정 투입. 셋, 둘, 하나. 가자."


 덜컹.

 탐사차량의 캐노피가 상부로 1cm 살짝 들렸다. 탐사차량 캐노피는 곧 잠수정이다. 탐사차량의 차체와 분리된 캐노피가 와이어에 매달려 하부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탄소섬유 와이어는 매우 가늘지만 하부 1km까지의 하강을 버틸 수 있다.


사진 출처 : http://scubanet.kr


"선장님. 잠수 합니다."


 첨벙~


 200여 미터를 하강한 후 드디어 수면에 닿았다.

지각 아래가 완전 어두울 줄 예상했는데, 사방이 은은한 보라빛으로 가득하다. 이론으로만 있었던 해저면의 화산활동의 화학작용으로 해수면 아래쪽에서의 화구에서 빛이 방사되고 있었던 것. 지표 하 300여 미터에 다다르자, 바닷물의 온도가 무려 12도씨에 다다른다.


"민크루, 바닷물 분석 수치가 나왔나?"


"예, 선장님. 우와... 이럴수가. 놀랍습니다. 이건...이건..... 그냥 지구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세부 미네랄 수치가 조금 차이가 있을 뿐, 96.2% H2O에 3.5% 염화나트륨... 0.3% 미량원소.... 생물학적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바다생물을 그대로 옮겨와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산소는?"


"믿을수가 없네요. 용존산소도 풍부해요. 식물이 보이진 않는데 아마도 해저 화산의 활동으로 전기분해가 일어나서 용존되고 있나 봅니다."


"지구 밖에서 만나는 지구의 바다라니... 믿을수가 없군........ 그러면, 실제 생물도 없을리가 없지."


"아직은 생체신호가 안 잡힙니다. 더 내려보겠습니다. 현재 심도 해저 350m. 500m까지 계속 하강합니다."




 현재 심도 500m. 해수온도 15도씨.


 지구의 바다라면 하강할수록 해수온이 떨어져야 정상인데, 유로파의 바다는 신기하다. 내려갈수록 해수온이 점점 올라간다. 지구보다 중력은 낮지만, 어쨌든 중력으로 뭉쳐진 위성이니 더 더운 물일수록 밀도가 낮아 위로 올라가야 정상일 테지만, 상류표면 근처는 온통 얼음층이니 데워진 물이 얼음을 만나 급격히 식어 도로 하강하고 있는 것. 따라서, 해류가 상, 하부로 매우 활발하게 섞이고 있는 동적인 바다라 할 수 있다. 단, 대기가 없어 표층류의 영향은 전혀 없고 아직까지 심층부의 조류가 발견되지는 않고 있다. 태선장이 바닷물과 온도, 비중 데이터를 점검하고 있던 그 때, 알람이 울린다.


"선장님, 40m 앞에서 무언가 생체신호가 잡힙니다."


"그냥 조류 움직임이 아니고? 생명체가? 카메라 확대해봐요."


지이이잉~ 초음파 카메라가 반향을 분석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니 이건? 그냥 문어 아냐? 똑같이 생겼네?"


"아니 진짜.... 문.....문어네요....선장님......???? 이게 왜 여기?????"


 행성생물학자인 민크루는 놀랍고 황당함에 말을 잇지를 못했다. 외계 생물은 식물과 동물의 경계에 있을거라는 저명한 이론과 온갖 운석 원소의 분석과 가설들을 뒷받침하는 각종 연구를 수년째 해오고 있던 그는, 처음 만난 외계생명이 그냥 지구의 "문어"라는 사실이 그냥 충격 그 자체였다.


 문어가 사실 외계생명이었다니. 문어가 외계인이었다니. 그거, 그냥 지구에 있었는데. 문어 숙회, 연포탕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그게 외계인? 외계인???




 사실 문어가 외계인 또는 생체로봇이라는 가설은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문어, 오징어, 꼴뚜기 등의 두족류는 머리 하나, 팔다리 합쳐 넷, 척추가 있는 기본적인 지구 생물인 척추동물과 비교해서는 너무나 다르게 생겼다. 외모부터가 그냥 말이 안 된다. 머리에 다리가 붙어있는 생물이라니. 팔다리가 8~10개씩 되는 것도 지구 생물의 공식이 아니다. 정말 이 생물이 지구의 척추동물과 같은 계보에서 진화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문어, 오징어는 심지어 인간보다도 월등한 신체구조를 자랑한다.


 사람의 눈에는 맹점이 있다. 시신경 다발이 모여서 지나가는 통로를 만드는 바람에 망막이 형성되지 못하는 부분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어, 오징어는 맹점이 없다. 시신경 다발이 망막의 바깥쪽으로 형성되는 구조라 눈으로 받아들이는 화상정보를 손실없이 오롯이 뇌로 전달할 수 있다. 편광을 별도 식별할 수도 있어서 투명한 새우나 해파리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잘린 오징어나 문어 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것이다. 문어 다리에는 신기하게도 사람의 뇌에만 있는 뉴런이 뻗어있다. 이 때문에 뇌의 제어가 없이도 문어 다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8개나 되는 다리가 각각의 뇌를 장착하고 진짜 뇌의 지휘아래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 덕에 문어는 다리를 매우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현대의 어레이컴퓨팅, 병렬제어의 시초가 문어인 셈.


 놀라운 것은 다리만이 아니다. 한 마리 문어는 대략 1,000개가 넘는 빨판을 가지고 있는데, 문어는 이 빨판 하나 하나를 인간의 손처럼 제어할 수 있다. 빨판의 흡착력은 매우 강해서, 크기가 큰 문어는 1ton이 넘는 무게를 빨판으로 들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문어는 심장이 세 개다. 하나는 몸통에, 나머지는 아가미와 다리에 각각 피를 공급한다.


 지능도 매우 높고, 순식간에 몸의 색깔을 바꾸거나 위장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몸이 매우 유연해서 매우 좁은 틈만 있어도 빠져나가는 데 능숙한 명수이다.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보자.


 인간보다 더 좋은 카메라 눈을 가지고 있고, 여덟개의 다리와 세 개의 심장, 아홉개의 두뇌를 가지고 있고, 몸 색상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며 조그만 틈만 있으면 어디든 통과할 수 있는 이런 생물이, 지구의 생물이라고? 저게, 단세포에서 출발해서 자연 진화한 생물이라고? 무언가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선장님, 사실 문어는 외계'생물'이 아닐지도 몰라요."


"민크루, 갑자기 그게 뭔 말이야? 충격먹은건 알겠다만 저렇게 살아 움직이는거 안 보여?"


"행성생물학자들 사이에선 생물과 생체로봇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화두가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논의의 결론이 뭔지 아세요? '구분할수 없다'가 결론이에요. 생물과 로봇은 사실 분자 단위로 접근하면 그 기능이 똑같아요."


"그럼, 민크루 생각에는 저 생물이 생체로봇이란 말야?"


"문어 외계인설은 사실 고전 중 하나죠. 과학이라기보단 가십이나 소설에 가까운 영역이었는데, 그래도 몇 진지한 과학자들이 가설을 제기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문어가 외계인이 보낸 탐사로봇 또는 테라포밍 로봇일 것이라고 가설을 제기했어요.

 저도 그게 처음엔 뭔 개소리야 했는데... 지금 여기서 유로파 문어를 보고 있자니, 생체로봇이라는 가설의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크루의 설명은 이랬다.


 지구생물의 유사성과 진화메커니즘을 봤을 때 문어는 과거 생물 또는 다른 생물과 연결된 고리가 전혀 없다. 한 마디로 과거엔 없다가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생물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지구생물과는 너무도 다르게 생겼다.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신기한 생물이 어떻게 지구에 있는지 고민해 본다는 것. 이 생물의 계보를 찾기 위한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였고, 지구에 이런 신기한 생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로 외계인 또는 외계인이 보낸 생체로봇설이 거론된다는 것.


 그리고, 지구의 문어와 완벽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유로파의 문어가, 바로 그 생체로봇설의 결정적 증거라는 것. 왜냐하면 자연진화를 근거로 하면 서로 다른 행성/위성에서 이렇게 똑같은 외모와 기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거의 0에 가까우며, 이는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으로 일부러 설계하여 풀어놓았다는 것.


"그래, 흥미진진해. 다 좋아. 문어가 외계인이 보낸 로봇이라니. 그럼 그들은 왜 이 로봇을 지구와 유로파에 보냈을까?"


"선장님, 그것도 여러가지 가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두 가지 가설은 탐사로봇과 테라포밍로봇 두 개가 있습니다. 저는 테라포밍 로봇설이 좀 더 그럴싸하게 들리네요.

 탐사로봇은 이런 탄소기반 자가복제 생체로봇을 다량으로 행성에 풀어놓고, 나중에 외계인 본대가 도착했을 때 그들의 방식으로 탐사로봇이 수집한 Data를 거두어들이면 되는 거구요. 아마도 이 때는 문어 뇌에 저장된 각종 이미지라든지 지형지물이라든지의 Data를 생물학적으로 백업하는 기술이 사용될 거예요. 외계인이 지능이 뛰어난 수생생물이라면 충분히 말이 되죠. 바다에만 관심이 있을거니까요.

 테라포밍 로봇도 비슷합니다. 탄소기반 자가복제 생체로봇의 생리메커니즘을 이용해서 행성과 위성을 이 로봇을 설계한 외계인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죠. 정확한 메커니즘은 연구해봐야겠지만, 이 유로파 바다의 세부 조성 성분이 지구의 바다와 매우 유사한 이유는 이 문어 생체로봇이 테라포밍토록 프로그래밍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유로파 바다의 생태계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문어가 저서생물 또는 암석을 먹고 분해해서 미량원소 성분을 계속 지구의 상태와 유사한 상태로 만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지요."


"일리가 있어. 지구와 유로파에서 동시에 보이는 문어라니. 이건, 누가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거야. 그게, 인류가 아니라면 외계인일테지. 사실이든 아니든, 유로파의 바다가 지구와 똑같다는 것과 유로파의 바다에 문어가 산다는 것은 엄청난 발견이야. 민크루, 저 문어를 우리가 잡아서 지구까지 가져갈 수 있을까?"


"그건 어려워보입니다. 이 잠수정에는 3m 정도 뻗을 수 있는 두 개의 로봇팔이 다거든요. 저렇게 날쌘 문어를 두 개의 로봇 집게발로 잡기는 어렵습니다."


"탐사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이제 52분 남았습니다. 슬슬 복귀를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래요. 아쉽지만 Data 잘 챙기고, 하나라도 더 발견해서 가자고."




 태선장은 탐사차량 본체에 인양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핵전지 드릴은 방사열을 내뿜으며 유로파위성의 지각과 지각 내 해양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를 개방하고 있었다. 직경 0.3mm에 불과한 탄소섬유 와이어 두 줄이 잠수정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린다. 이 줄이 태선장과 민크루의 유일한 생명줄인 셈이다. 유로파의 해양 바닥면까지 닿으려면 현재의 우주선 한계질량을 고려해봤을 때 탄소섬유 와이어의 직경을 0.17mm까지 줄여야 가능한데, 현대의 기술로는 아직 무리이다.

 드럼에 감기는 탄소섬유 와이어 뭉치가 직경 0.5m에서 3m까지 증가하였다. 잠수정도 거의 인양이 끝났다. 인양의 막바지는 잠수정과 탐사차량과의 재결합. 태선장은 모든 체결포인트의 유격을 확인하고 도킹 스위치를 눌렀다.


 철컥, 철컥철컥~


 도킹 핀이 체결되고 컨트롤 와이어가 삽입되면서 다시 차량통제 제어화면이 열린다.


"휴... 첫번째 난관은 통과했군... 일단 착륙선까지 가는 건 문제없겠어.

 민크루. 핵전지 드릴 봉인하고, 식별 안테나 설치해주세요. 저건 여기 남겨두고 간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이 다음 후발 탐사대가 올 때 또 유용하겠지요."


"사령선, 여기는 비둘기. 우리 이제 돌아갑니다. 우리가 뭘 발견했나 본다면 놀랄겁니다~"


- 4편으로 계속 -


https://brunch.co.kr/@ragony/149





매거진의 이전글 문어(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