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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18. 2022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단상

국제사회는 여전한 힘의 논리일 뿐

 어릴 땐 "무조건 암기과목" 이라는 선입관이 너무 강하게 박혀서 역사/사회 과목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재미없고 싫으면 공부 안 하는 스타일이라 성적이 잘 나올 리 없었고, 공부를 안 하니 역사의식도 미약하게 자라왔다.


 그런데, 좀 철이 들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생기는 나이가 되니까 역사도 재밌고, 덩달아 세계사도 재미있어졌다. 나이가 들어 접한 역사와 세계사는 그냥 재밌는 픽션 소설이었다. 이야기, 스토리는 있는데 시험은 없으니 재밌는 거지. 어릴 땐 탕평책이 어느 왕조의 정책이며 4군 6진에 해당되는 지역이 어딘지 억지로 암기하려 하다 보니 지지리도 재미가 없었지만 암기할 필요 없이 이야기만 즐기면 그냥 드라마인 거지.


 과거 무굴제국이었던 파키스탄에 살다 보니, 이곳 역사와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느 부분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부분이 있으면서도 어느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다들 잘 알다시피, 영국은 인도를 오랜 기간 수탈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도 반도를 수탈한거지, 근대 국가 형태가 아니었던 인도를 지배했던 건 아녔다. 영국의 식민지 수탈정책은 전 세계 어딜가도 대충 비슷하다. 소수의 인원으로 들어와서 지휘체계를 장악하고, 국민 내부에 내분을 만들어 영국을 외부의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안에서 힘을 빼는 전략으로 식민지를 망가뜨려왔다. 이곳 인도반도 사람들 역시 과거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사람들이 사이좋게 협력하며 잘 살던 지역이었다던데 영국 식민지를 거치고 종교를 통치이념과 결속시키는 영국의 전략 탓에 종파로 갈가리 쪼개져서 결국 분단국가가 되었다. 종파로 나뉜 건 아니지만 식민살이 직후 공산국가와 민주국가로 나뉜 우리나라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게 느껴진다.


 영국 식민시절의 역사를 다룬 발리우드 영화를 보면, 스토리 전개가 마치 우리나라의 일제시대를 보는 것 같은 동질감을 크게 느낀다. 영국 지배층은 인도 사람들을 벌레 다루듯 다루며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그려진다. 그 아래 울분을 참아가며 독립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바람은 우리 의병이나 독립군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의외로 파키스탄 사람들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고등교육은 거의 다 영어로만 교육이 이루어지며 덕분에 대졸자는 거의 100% 영어 사용이 매우 능숙하며, 읽고 쓰기가 좀 안 되더라도 듣기 말하기 의사소통이 영어로 가능한 비중도 국민의 절반 정도에 달하는 영어 강국이다. 영국의 표준 복식인 양복도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당연히 1순위 고려되는 문화이다. 식자층이 해외 취업을 고려하면 1순위로 고려되는 것이 영국이다.


 우리나라에 대입해서 상황을 설명하면,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일본어에 능숙하며, 대학 교육은 여전히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만 이루어지고 대학을 졸업하면 모두 원어민처럼 일본어를 잘 쓸 수 있고, 좀 배웠다 싶은 사람들은 일본 취업을 최우선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면 좀 비슷하려나 싶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도 일본 식민지 생활을 오래 거쳤지만 일부 노인들 빼고 일본어를 잘하는 한국인은 매우 드물다고 얘기하면 거꾸로 그런 상황을 이해를 못 한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식민통치를 겪을 때 그렇게 천대받고 억압받고 살았으면서도 국민 대부분이 영국에 대한 반감이 별로 없다. 뭐... 영국이 더 이상 제국주의를 표방하지 않는 세계화 시대에, 앙금이 없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그냥 비슷한 식민지 문화를 거쳐 온 후예인 한국인인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사회현상이다. 적어도 프랑스 국민들보단 파키스탄 국민들이 더 영국을 싫어해야 정상 아닌가.


 최근에 가장 쇼킹했던 일 중 하나는, 영국 여왕이 타계했다고 전국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라고 공문을 내린 일이다. 아니, 진짜 이 나라는 벨도 없나... 


 일본 천황이 죽었다고 우리나라가 조기 게양한다고 하면 한국 국민들이 가만있겠냔 말이지.


 그런데, 그게 이유가 있더라고. 이 나라 살면서도 몰랐는데 이 핵무장 파키스탄도 영국의 연방국가라니. 더불어 인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인근 나라 모두 여전히 연방국가이다!!! 아니, 전쟁까지 치르며 독립한 국가 아녔어???


 시대가 21세기 하고도 22년도인데,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습제인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참 희한한 일인 것 같은데, 국가 원수를 영국 국왕으로 추앙하고 있는 연방국가가 15개, 국가 원수는 따로 두고 있는 국가를 모두 포함한 영국연방국가는 52개 국가나 된다고 하니 여전히 영국의 파워는 막강한 것 같다.


· 영연방 회원국(2018년 기준 52개국)
영국을 포함한 키프로스, 말타(이상 유럽), 보츠와나, 카메룬, 가나, 케냐, 레소토, 말라위, 모리셔스, 모잠비크, 나미비아, 나이지리아르완다, 세이셸,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와질란드, 우간다, 탄자니아, 잠비아(이상 아프리카),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인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이상 아시아), 앤티구아 바부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리즈, 캐나다, 도미니카, 그레나다, 가이아나, 자메이카, 세인트 루시아, 세이트 키츠 네비스, 세이트 빈센트 그레나딘, 트리니다드 토바고(이상 카리브해 및 아메리카), 호주, 피지, 키리바시, 나우루, 뉴질랜드, 파퓨아뉴기니, 사모아, 솔로몬제도, 통가, 투발루, 바누아투(이상 태평양)

· 기타 영연방 미가입국 및 탈퇴국
전 영국 식민지 중 영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홍콩, 미얀마, 수단, 소말리아, 사우디 및 걸프국가들이다. 회원국 중 모잠비크(포르투갈의 식민지)와 르완다(벨기에의 식민지)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으나 영연방에 가입했다.

영연방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국가는 아일랜드(1949), 짐바브웨(2002), 몰디브(2016)의 3개국이 있다. 아일랜드는 1949년 영연방에서 탈퇴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짐바브웨는 2002년에 야당과 언론에 대한 탄압 등을 이유로 영연방 회원자격이 정지된 후 2003년 12월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짐바브웨의 회원국 자격정지 조치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결정하자 영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몰디브는 2016년 영연방이 몰디브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내정간섭을 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탈퇴를 선언했다.

한편, 파키스탄은 1999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서,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으나 2004년 재가입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61년 5월 31일 영연방을 탈퇴했으나 1994년 6월 1일 재가입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국연방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부분 발췌




 내일(2022.9.19.월)은 영국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이 열린다고 한다. 전 세계 국빈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고 하는데, 장례식에 무슨 "초청장"인가. 장례식이 무슨 잔치도 아니고. "올 사람 안 올 사람 우리끼리 알아서 선별했으니 이거 받은 사람은 몇 날 몇 시까지 어디로 오세요." 같은 "소집령"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민항기 타고와서 버스타고 가면 좋겠습니다~"라는 행동 지침까지 붙어있단다. 이거, 무례한건가, 친절한건가. 한국 정서로 접근하면 당연히 "부고장"이고 장례식에 참석을 할지 말지는 부고장을 받는 사람에게 달린거지. 뉴스를 가만 보다보니 어느 나라는 "초청장"을 보냈니 안 보냈니 이런 걸로 티격태격하는데 참 보기가 그렇다. 공식 서한문으로 "부고장"을 일괄 다 보내고, "오실 분?"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


 그리고... 영국에서 "부고장"이 아닌 "초청장"을 받자마자, "네~" 하고 달려가는 모습도 그리 예뻐 보이진 않는다. 국가의 수장이 사망했으니, 우방국에서 조의 정도 표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이게 전 세계의 수장들이 모두 직접 달려갈 일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국가 수장이 안 달려가면 무슨 우환이라도 벌어지나? 재영 한국 대사가 참석하거나 외교부 장관 정도가 가도 되는 거 아닌가? 조의 서한문 정도만 전달해도 결례일까? 우간다나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서거해도 이렇게 전 세계 수장들이 다 모일래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전 세계 평화를 위해 혁혁한 기여를 하신 분도 아니고... 여전히 제국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군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영국 국왕 밑으로 전 세계 국가 수장들이 한 자리 모이는 자리라니 내 눈에는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여전히 보이는 것 같다.


 영국이 전 세계의 식민지를 침탈하며 남긴 학살과 약탈의 만행들에 대해서는 잘 각색되고 미화되어 교육자료나 사료로서 크게 부각되지 않지만, 식민을 경험한 국민들 눈으로 기록된 참상은 일본이 우리를 통치하던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국이 2차 세계대전 시절 연합국의 중심으로 승전해서 그렇지, 사실 세계사에 남긴 과오로 따지면 독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큰 소리 칠 입장은 아닌 나라인 것 같다.


 독립한 국가들이 완전한 주권을 갖추고 있고, 영국과 대등할 국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번 장례식에 이렇게 반응했을까? 영국이 별 볼일 없는 약소국이었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모든 일 제쳐놓고 장례식 간다고 했을까?


 21세기 하고도 22년을 기록하는 시대이지만 국제사회 룰은 여전히 힘의 논리에서 한 걸음도 바뀐 게 없는 요즘이라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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