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단, 직항이 없다. 허브 공항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주로 카타르 도하 공항이나, 태국 수완나품 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이용해서 한 번 환승한 후에 이동하는 경로를 택한다. 두세 번 갈아타면 항공료가 조금 더 저렴해지긴 하는데, 한번 환승도 충분히 피곤해서 사양하련다.
한국으로 중간 귀국하는 일정은 태국 수완나품 공항을 택했다. 택했다기보다, “최단시간으로 알아봐 주세요” 했더니, 여행사에서 알아서 해 줬다. “괜찮으시간요?” 하길래 “네~” 했다. 문제는, 수완나품 공항을 경유하는 항공편도 중간 대기시간이 너무너무 길다는 것.(2022년 8월 27일 토요일 06:25 도착, 같은 날 22:35 서울 출발. 장장 16시간 10분 대기.)
원래 집돌이를 넘어선 방돌이 성격의 프로방콕러라 돌아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 가 본 나라 수도인데, 이런 공짜 관광기회도 흔한 게 아니라 이번에는 도시 투어를 해 보기로 했다. 심지어 도시 이름도 너무나 친근한 “방콕”아닌가.
여행도 부지런해야 하는 건데, 여행계획 짜는 것도 너무 귀찮아서 이륙 이틀을 앞두고 부랴부랴 공부를 했다. 반나절 여행을 해도 인터넷은 되어야겠기에, 로밍 요금을 알아봤는데 너무나 사악한 요금에 깔끔하게 신규 여행자 유심을 현지에서 구매하기로 했고, 도심 관광버스 투어, 사원 및 왕궁 관광 후 마사지받고 밥 먹고 오는 걸로 대충 결정. 좀 더 멀리 나가보는 관광상품은 1박 2일 경유 기회가 있을 때 해 보는 걸로 기약하고 이번 여정은 그냥 맛보기만 해 보기로 했다.
태국에 입국한 시기엔 다행히도 모든 방역 패스가 종료된 시점이라 코로나 유관해선 어떠한 증명서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출국장 무사통과.
출국장 나오자마자 환전소가 보인다 100달러만 바꿀게요. 태국화 바트는 대충 40을 곱하면 원화랑 비슷하다.
출국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환전소가 있길래 100달러만 환전했다. 공항 환전소는 어딜 가도 비쌀 테지만, 뭐 큰돈 바꿀 것도 아니고, 고민 없이 환전.
주황색 부스가 유심 판매하는 klook 부스. 예약하면 조금 더 싸다.
미리 예약한 유심을 찾으러 갔다. 아 쫌 머네... 한 층 더 올라간 출국장에 있다. 스마트폰 바우처만 보여줘도 설명할 필요 없이 유심을 건네어준다. 갈아 끼웠더니 잘 터진다. 파키스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라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원래 이래야 정상이지.
방콕 도심으로 나가보자
전철표 키오스크. 영어 지원된다. 표가 아니고 토근이네?
전철은 어디 가서 타나. 역시 별로 어렵지 않다. 출국장 건물에서 그대로 지하까지 가면 전철과 연결된다. 전철 토큰 구매는 키오스크도 영어 지원이 잘 되니까 사용이 어렵지 않다. 키오스크는 동전 지폐 다 잘 인식한다. 대부분의 제반 시스템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방콕도 잘 사는 도시구나.
전철도 깔끔하고 하늘도 시원하고
방콕 전철은 한국의 지하철 1호선 느낌이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바로 지상철이고 지하로 들어가는 구간이 없다. 전철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도 시원시원하고, 하늘은 깨끗하다. 짧은 복장이 허용되지 않는 파키스탄과 달리 노출이 많은 옷도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방콕 전철 노선도
Hop On Hop Off 도심 관광버스 타기
공항철도 빨강라인 종착역인 Phaya Thai역에 도착해서 환승. 환승 시스템 같은 건 없고, 전철 토큰을 다시 또 사야 해서 그건 좀 귀찮다. 예정된 1번 퀘스트. 시암(Siam) 역에 하차 후 도심 관광버스 탑승. 대형 쇼핑몰인 시암 파라곤 건물 입구에 대기 중이던 Hop On Hop Off 관광버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이드 및 운전기사가 나를 격하게 반겨주었는데... 탑승자가 내가 혼자다. 아니 이렇게 큰 2층 버스에 나 혼자....? 이거 곧 망하겠는데? 좀 싸한 느낌도 들고 미안하긴 한데 어쩌냐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투어버스는 이어폰도 제공해주고, 한국어 방송도 틀어준다. 그런데, 태극기 메뉴에서 한국어가 나오는 게 아니고, 일장기 메뉴에서 나온다. 이왕 하는 거 검증 좀 거치지, 디테일이 모자라네.
씨암 파라곤 역 내려서, 건물 모퉁이로 가면 빨강 버스가 기다린다. 무사히 1번 퀘스트 클리어.
초대형 2층버스에 손님은 나 혼자. 일본어와 한국어는 메뉴가 반대로 매칭되어 나온다. 나오는게 어디래.
차이나 타운도 있었고, 자이언트 스윙, 대학교, 무슨무슨 사원 등 방콕 시내의 주요 포인트를 잘 설명해주는데, 사전 공부를 전혀 안 하고 와서 그다지 기억에 남는 포인트는 없다. 주요 포인트는 인터넷 뒤져보며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 일단, 다녀왔고, 눈에 직접 담아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사원, 대학교, 자이언트 스윙, 다리 등등 주요 도심지는 바람결에 후다닥 돌아봄
버스를 한 바퀴 다 돌려면 세 시간쯤 걸린다는데, 배도 고프고, 슬슬 지겹기도 하고, 일단 제일 중요한 관광포인트 새벽 사원 하고 왕궁을 둘러보려면 시간도 애매하고 해서 새벽사원 정류장에서 내렸다.(나마저 내려서 이제 관광버스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어쩐지 미안해진다.)
새벽사원(Temple Of Dawn, Wat Arun)으로!
메뉴판 제일 아래 오른쪽 메뉴임. 50바트(대충 2천 원). 맛있었다.
새벽사원 입구에 있는 노천식당에서 대충 아무거나 시켜먹었는데, 나름 괜찮았다. 해산물 탕수육 비슷한 소스의 덮밥이었는데, 맛있었다. 확실히 서아시아 느낌이 아닌 동남아시아 맛. 가격도 착하다. 50바트(=2천원!).
든든하게 먹고 찾은 새벽사원(Temple Of Dawn, Wat Arun).
외국인에게만 입장료 100바트(=4,000원)을 받는다. 어릴 적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 같은 걸 하면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그런 느낌의 고대 사원이다. 같은 불교지만 한국의 사원(절)은 매우 조용하고 고즈넉하고 정갈한 느낌임에 비해 엄청나게 화려하다. 엄청난 크기의 도깨비와 끝없이 줄지어 앉은 불상, 기괴한 석상들이 눈을 압도한다.
새벽사원 반대편으로 나오면 페리로 강을 도하할 수 있다. 요금은 단돈 5바트(200원).
포 사원(Wat Pho)
나는 와불로 유명한 포 사원(Wat Pho)과, 포 사원에서 멀지 않은 왕궁을 가 보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만 입장료를 받는다. 비싸네. 200바트(=8,000천원) 포 사원(Wat Pho)도 규모가 크다.
마음먹고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한 시간으로 부족하다.
새벽사원과는 건축과 장식 문양이 또 좀 다르다. 어쨌든 이 사원의 가장 유명한 관광포인트는 와불. 신발과 모자를 벗고 입장해야 한다. 와~ 엄청 크네. 만드느라 고생했겠네. 발가락의 지문과 목침의 표현까지도 디테일하다.
웅장한 규모에 압도~
돈 쓰는 거 싫어해서 혼자 돌아다니다가, 관광 가이드가 해설해주는 장면을 몇 귀동냥을 했는데, 돈 주고 가이드를 모실만 했다. 혼자서 1인 상황극도 하시며 어찌나 열정적으로 설명하시던지, 인상이 무척 깊었다. 우연히 동선이 겹치는 것처럼 멀찍이 10여분 따라다니며 듣다가, 갔던 길 또 가길래 다음 코스로 향했다.
새벽사원과는 느낌이 또 다른 포 사원
왕궁
오늘의 마지막 관광코스 왕궁.
가는 길이 얼마나 머냐고 물어보니, 2km 남짓, 30여분 걸어야 한단다. 다리가 살콤 아파오지만, 이왕 하는 도심투어, 걷는 것도 관광이지 싶어 걸어가기로.(사실 택시비가 아까워서)
가는 길에 목이 말라, 생 코코넛 주스도 사 마시고 좀 쉬기도 했고, 끙끙대며 입구까지 갔었는데 세상에... 여긴 출구랜다. 입구는 왔던 길 빙빙빙 돌아 반대편으로 가라고. 오 마이 갓~ㅠㅠ
오토바이와 택시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툭툭. 보기보다 비싸다.
더 이상 에너지가 없어서 그냥 택시 타기로. 원래 택시 탈 준비가 전혀전혀 없던지라 지천에 널려있던 툭툭을 타 보기로 했는데 역시 바가지를 심하게 씌운다. 400바트 부르는 걸 딱 반 잘라 200바트로 협상하고(여전히 비싼 거 같지만) 부다다다 달려서 10분 만에 반대편 입구로 도착.
너무나 토크티브하셨던 왕궁 입구 가이드 여사님
입구에 도착하니, 다수의 관광가이드가 호객행위를 한다. 너무 많이 걸어서 에너지도 없고, 포사원에서 봤던 관광가이드의 인상이 매우 깊어 한 번 가이드를 받아보는 걸로 결정. 나 엄청 짠돌이인데 큰 결심 한 거다. 500바트로 포 사원까지 다 해준다는데, 나는 이미 갔다왔는데. 동선이 반대가 되어 아쉽네.
한국어는 못하시지만 영어는 매우 유창하시다. 예순 가까이 되신 분인데 가이드 생활만 30여 년을 했다고.
정말 쉼없이 토크티브하셔서 이번에는 귀가 피곤하긴 했지만, 아무 생각없이 따라만 다니면 되니까 확실히 편하기는 했다. 무척 많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솔직히 내 영어실력이 여전히 꽝이라, 반밖에 못 알아먹겠고 진작에 영어공부 좀 할걸 후회가 또 밀려온다.ㅠㅠ
사원과 왕궁은 다 규모들이 되는지라, 벌써 20km 가까이 걸었다. 마라톤 절반코스를 달렸네. 관광은 이제 그만. 아쉽지만 안 가본 곳은 다음에 또 가 보기로 하고, 예약한 마사지받고 집에 가는 걸로.
원래는 1일짜리 탑승 무제한 도심관광버스(Hop On Hop Off)를 다시 잡아타고, 탑승한 곳까지 복귀하는 것이 원래 내 계획이었는데 벌써 너무 많이 걸어서 심신이 피곤해져 버린 탓에 돈으로 해결하기로 변심했다.(나답지 않지만 살고 보자.)
축축 늘어져서 털레털레 걸어오는 나를 툭툭 기사가 낚아챈다.
“어디가셔요? 제가 모실게요.”
“시암 파라곤이요.”
“OK. 600바트 주세요. 지금은 차가 막혀서 비싸요.”
“왓??? 투 익스펜시브. 노노!!!”
“그럼 얼마?”
“400바트. 아님 말고.”
“OK. 콜”
음... 반값으로 후려치라고 배웠는데, 마음이 약해서 덜 깎았다. 아까 200바트 줬으니까 두배면 합리적이지 싶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둘 다 바가지다.
도심의 무법자 툭툭. 차선 같은 개념 없다.
어쨌든, 도심의 무법자 툭툭답게, 어지간한 신호 무시하고, 중앙선을 넘나들며 무진장 빨리 출발역이었던 시암 파라곤에 도착했다.
Nature Massage 시암점
이제 마사지받고 자야지. 피곤해 죽겠네.
Nature Massage 시암점. 비슷한 맛사지 가게들이 즐비하다.
시암 파라곤에서 가까운 아무데나 예약한건데 건물도 깔끔하고 나쁘지 않았다. 다만, 덮어주는 수건이 너무 축축해서 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게 싫었는데, 마사지 자체는 정말 꼼꼼하게 잘해 주셔서 맛사지사에게 100바트 팁을 더 주고 왔다.
시장 먹자골목
마사지점 밖에 나오니 완전 시장통 먹자골목이 있길래 대충 아무거나 찾아보다가, 똠얌꿍을 싸게 팔길래 별 고민 없이 시켜먹었다. 60바트(2,400원). 새우, 오징어 등 해산물 재료도 풍성한데 놀라운 가격. 김치찌개같이 시큼한 향이 독특한 태국 전통음식인데 내 입맛에는 잘 맞다. 태국 가면 고기국수도 먹어보라는데, 이거 하나 먹고 배가 불러서 포기.
시암 파라곤(Siam Paragon)
시간이 조금 남길래 시암 파라곤을 둘러봤다. 도심지 최대 쇼핑몰답게 무척 화려하다. 다른 편에는 대중 브랜드도 팔지만 특정 건물에는 건물 통째로 명품관만 입점이 되어 있어 위압감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대형 전광판이나 사이니지의 화려함도 한국 못지않다. 방콕, 잘 사는 도시구나.
도로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돌아와서 여유 있게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스탑오버로 정신없이 즐긴 짧은 여정이었지만, 20km나 걸어 다니며 헤집고 돌아다닌 당일치기 태국 방콕 겉핥기 여행기는 여기까지.
이 다음에 방콕을 다시 찾는다면 조금 도시 외곽여행에 도전해 볼 테다.
스탑오버 하시는 분들, 과감하게 도시 여행 즐겨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