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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30. 2022

내가 다시는 반도종단 국제버스를 타나 봐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스위스 취리히까지 버스로 이동해 봤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났다.


이제는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로 떠날 시간. 심야버스를 타고 한숨 푹~ 자고 나면 아침에 스위스에 도착해 있겠지~ 비행기보다 훨씬 싸고, 숙박비도 아끼고, 이동시간도 아끼고 여러모로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임에는 틀림이 없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이탈리아 버스는 미리 예매했더라도 15분 전에 가서 좌석 확정을 하지 않으면 취소처리되고 그 좌석이 현장 대기줄에 팔린다고 하셔서 여유 있게 출발했다. 버스 탑승 장소는 미아 되었던 아픔이 서려있는 통곡의 그 투어버스 출발장소와 동일하다. 몬테룽고 광장은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사 정문에서 500여 m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여기가 버스 승강장이 맞긴 한데, 국토종단 국제버스 승강장이라고 하기에는 뭐가 많이 허술하다. 그냥 허허벌판에 가깝고 그나마 낮에 열던 간이 대합실마저 밤에는 꽁꽁 잠가놨다. 비바람을 피할 곳이라곤 저 입식 대기장소 뿐. 아, 정말 디지털 사이니 휘황찬란한 강남 고속터미널이 진심 그립다. ㅠㅠ 세계적 관광지라면서 조금만 투자 좀 하지...



 15분 전부터 유효표 검사인증을 한다고 해서 도착 30분 전부터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왔다. 거의 정규안내시간 4분 전에 딱 도착해서 손님을 싣는다. 버스 크구나. 좌석 엄청 빽빽한, 그것도 2층 버스. 장거리를 가는 반도종단버스니까 당연히 대한민국 우등고속 같은 걸 상상했는데 이게 뭐야... 2+1 같은 좌석배열 아니고 2+2 배열에 엄청 다닥다닥... 아... 이러면 못 자는데....ㅠㅠ



 장거리 버스답게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하필 내 자리는 1층 그 화장실 바로 앞자리. 불행은 무리 지어 온다고 아직 다 안 끝났다. 좁은 자리에 발받침이라도 잘 내려오면 그나마 좀 낫겠는데, 딱 내 자리만 발받침이 고장 나서 안 내려온다. 버스표와 여권을 검사하던 검표원에게 "여기 발받침이 동작 안 해요~" 신고했으나 멀뚱히 바라보더니 그냥 개무시. 허긴 연장도 뭐도 없는데 뭘 어떡하겠냐. 그래도 최소한 탑승한 고객에게 "아,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점검해 보겠습니다." 정도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감... 나도 더 말해본들 뭣하리 그러며 빠른 포기.


 출발과 동시에 실내조명은 꺼 준다. 불편하지만 최대한 달래 보며 눈을 좀 붙이자. 피곤하니까 잘 수 있을 거야.... 는 개뿔. 이 버스, 심지어 완행버스다!!!

 조금 잘 만~하면 깨고 잘 만~하면 깨고 또 누군가는 화장실 들락거리고 소리도 시끄러운데 알싸한 냄새도 팍팍 풍기고... 아 정말 내가 왜 돈 주고 이런 고행길을 선택했나 후회x후회x후회의 연속이다. 비몽사몽간에 깨다 말다 반복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중간 정류장+휴게소+국경검문소 등등 포함해서 최소 네댓 번은 정차해서 사람들을 내렸다 태웠다 했다.


피렌체 -> 취리히 육로. 대충 600여 km 되시겠습니다.


 스위스 사람들이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잘 살아서, 스위스→이탈리아 방향으로의 국경 이동은 비교적 쉬운데, 이탈리아→스위스로의 국경 이동은 검문이 깐깐하다고 들어서 국경검문소에서 무섭게 생긴 검문요원들이 버스에 올랐을 때는 살짝 긴장했었는데, 그냥 여권 잠시 보는 것 말고는 어떠한 검사도 안 하고 내려갔다.


스위스 취리히 버스 터미널


 밤 새 8시간 반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도착한 취리히 버스터미널. 졸다 깨다 무한반복 개피곤한 거 말고는 무탈하게 스위스에 잘 도착했다. 나를 반기는 환영 인파도, 환영 현수막도 아무것도 없지만 무탈하게 목적지 스위스 취리히까지 잘 도착했음에 감사하며 하차했다. 처음 느끼는 스위스 느낌.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도긴개긴 거기서 거기네. 여기도 도착 대합실 사정이라곤 이탈리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 몸은 피곤해죽겠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다음 목적지 인터라켄까지 가려면 또 멀고 멀 텐데, 어디 좀 쉬어갈 데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눈에 딱 들어온 스타벅스 커피. 한국에선 지인들 또는 이벤트로 가끔 주는 쿠폰 쓸 기회가 아니면 내 돈 주곤 가지 않는 스타벅스 체인점이지만 오늘은 무척 반갑다.


 여행객들에게 스타벅스가 반가운 이유.


1. 늘 먹던 비슷한 맛과 품질의 먹거리 마실거리가 보장된다.

2. 화장실을 무료로 쓸 수 있다.

3. 스마트폰 또는 보조배터리를 눈치 안 보고 충전할 수 있다.

4. 싸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바가지도 안 당할 거란 믿음이 있다.

 


 그래 그래. 일단 좀 쉬면서 스마트폰 충전 좀 하고 가야지.

 마차그린라떼 한 잔, 그리고 제일 만만해 보이는 블루베리 머핀 하나.

 각각 6.2, 4.5 스위스프랑 되시겠습니다. 합계 10.7 스위스프랑. 대충 1.4를 곱하면, 차 한 잔 빵 한조각에 1만 5천 원....ㅠㅠ 한국에서 삼계탕을 먹을 수 있는 돈이네 세상에. 스위스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안 먹고 안 써야겠다고 시작부터 다짐을 해본다. 비싸 비싸..비싸다고....ㅠㅠ


 자자, 무사히 살아서 스위스까지 오긴 했으니, 너무 늦기 전에 반도종단 국제버스를 타 본 소감을 남겨본다.


 "내가 다시는 이 버스 다시 타나 봐라."


 날짜 따라 시간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심야버스 잘만 고르면 세금포함 대충 40유로(5만 6천 원) 안쪽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으니 최소 편도 20~40여만 원(공항 이동 비용 별도고려)에 달하는 비행기 편에 비하면 현저히 싸며, 야간이동을 고려하면 잠자리도 해결하고 이동시간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 고향과 서울을 오갈 때 심야버스도 종종 이용해 봤으니, 버스에서 자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돈이 궁하지 않다면 나는 이 방법 추천하지 않는다. ㅠㅠ


 버스에서 일단 제대로 못 잔다. 이 버스, 중간 정거장과 휴게소, 국경검문소 들르는 거 고려하면 최소 네댓 번은 정차해서 사람들을 내리고 태운다. 아주 명당자리에 앉고 자리에 앉자마자 잘 자는 사람이 아니라면 "잔다"기 보다 그냥 졸다 깨다 하다가 밤새 무지 괴롭다. 대충 60~70인승 되는 2층 버스인데 앞뒤 좌우는 물론 2층 버스니까 천장고도 낮고 승객 1명당 공간이 매우 협소하다. 한국 우등고속처럼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안 된다. 콩나물 시루처럼 끼어서 간다. 버스로 이동하는 유일한 장점. 싸기 때문인데, 가격이 저렴한 만큼 당연히 승객의 수준도 높지 않고(주로 젊은 학생 또는 제3세계 여행객...) 주변에 민폐를 많이 끼친다. 푹 자면서 이동하고 내리자마자 원기 회복해서 목적지에서 관광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 아니라고. 내리자마자 반쯤 쓰러진다고. 어디든 들어가서 좀 쉬었다 가야 한다. 어쨌든, 당신이 정말 강철체력의 소유자면서 흔들리는 좁은 버스에서 잘 잘 수 있으며 여행경비가 매우 제한적이라 경비를 최소화할 수단을 찾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돈 좀 더 쓰고 기차나 비행기 타시길 추천드린다... 내가 다~ 해보고 하는 말이다.



 어쨌든, 스타벅스에서 원기회복은 조금 했으니 다시 숙소를 찾아서 가던 길을 찾아 가 보자.



 버스 터미널과 바로 붙어있는 취리히 기차역.

 아, 내가 스위스에 왔구나 실감한 첫 번째 광경. 스위스 기차역 시계. 어느 역엘가나 한결같은 저 시계 디자인은 빨강바탕의 백십자 스위스 국기처럼 간결하고 강렬한 스위스 이미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전히 야박한 화장실 인심. 화장실 한 번 가려면 1.5 스위스프랑. 2천1백 원 되겠습니다. 물도 아껴먹고 싸는 것도 아껴야 할 듯. ㅠㅠ



 스위스 국영철도 SSB에서 운영하는 기차 탑승. 스위스 이미지답게 기차도 깔끔하고 국가 아이덴티티인 강렬한 빨강, 순백색의 이미지를 잘 살려 사용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식당칸도 신기해 보였고, 한국 우등고속버스를 연상시키는 1등석은 저렇게 생겼구나 눈에만 담고 2등석을 이용했다.


 나는 여행 출발 전에 폭풍검색해서 스위스 트래블 패스 2등석 3일권을 미리 사서 갔다. 참고로 하루에 두 번 이상 기차를 타야 하는 일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계산할 필요도 없이 트래블 패스를 사는 편이 이득이라고 한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는 최단 3일권부터 팔며 기간 내 국유철도 무료탑승 외에도 기타 대중교통 무료, 박물관 무료 등 혜택이 많다. 스위스 관광청에서도 판매하지만 검색 잘 해보면 할인쿠폰 얹어 살 수 있는 곳이 가끔 나온다. 우리나라 지하철 어플처럼 스위스 기차도 SSB Mobile이라는 모바일 어플을 제공하는데, 아주 직관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으며 플랫폼 안내도 시간도 스위스 시계처럼 정확하다. 그래, 기차는 이래야지. 출발 직전까지 초조하게 플랫폼 정보를 못 찾아서 동동거렸던 이탈리아 기억과 너무 대비가 된다.


https://www.myswitzerland.com/ko/planning/transport/tickets-public-transport/swiss-travel-pass/


스위스 기차 여행자라면 필수로 깔아야 하는 SSB 어플. 탑승시각, 플랫폼, 연계지도까지 완벽하다.



 열차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눈 덮인 산, 초원, 삼각지붕의 그림 같은 집. 여기 어디게? 물으면 초등학생도 "스위스"라고 맞힐 것 같다.



 인터라켄 웨스트 역 도착. 스위스에서 머물 곳은 역사에서 400m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Happy in Lodge라는 호스텔. 입구만 보고 어, 잘못 왔나? 그랬는데 여긴 Brasserie 17이라는 이름의 식당과 같이 영업하는, 식당이 딸린 호스텔. 투숙안내는 Brasserie 17 식당 직원들이 해 준다.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 가능. 나는 오전에 도착했던지라 그때까진 짐만 맡아줄 수 있단다. 일단 백팩을 안내해준 선반에 내려놓고 투숙객 공용식당에서 조금 쉬면서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도착한 이 날은 날씨가 흐렸다 말았다 비도 오락가락하던 날씨라 너무 멀리 높이 안 가고 약 20km 떨어진 곳의 뮈렌(Mürren)이라는 산골마을에 가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자. 이제 또 가 볼까?




(다음 이야기 : 스위스 여행 첫날, 산골마을 뮈렌 Mürren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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