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Dec 22. 2022

불쇼로 만들어 준 트러플 파스타

피렌체 마지막 날 만찬

 저녁 6시 50분, 오스테리아 파스텔라(Osteria Pastella) 식당 앞에서 나를 포함한 밥친구 세 사람이 모두 모였다. 한 분은 아까 조토의 종탑 정상에서 다시 만난 민박집 룸메이트 청년, 또 다른 한 분은 그 청년과 저녁약속을 미리 잡은 또 다른 젊은 20대 초반의 배낭 여행객.

 오스테리아 파스텔라(Osteria Pastella) 식당은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앞 광장 지근거리에 있다.


https://goo.gl/maps/tZhNaAM4ah1jJGaZ8



 일단 애피타이저로 타코야키 같은 튀김? 빵? 하고 스파클링 와인 작은 잔을 한 잔 준다.


 메인 메뉴 주문을 해 보자.

 다양하게 시켜서 골고루 맛보고 1/3 할 거니까, 신중하게 시그니처 메뉴로 선정.


 와따마~ 메뉴 이름 무쟈게 길군요. 언제 다 읽어보고 고른담. 메뉴판 좀 쉽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사진 넣고, 음식명 먼저 크게 박고, 작은 글씨로 재료를 깔아주면 한결 한눈에 보기가 편할 텐데, 무슨 메뉴판이 영어 논문 보는 것 같다고요...


* Flambe tagliatelle with fresh truffle in Grana Padano Cheese wheel - 27유로

* Lasagne with three meats, melted truffle cheese and mediterranean herbs extra virgin olive oil - 16유로

* Grilled sliced dry aged Tuscan beef steak, mashed potatoes, truffle and foie gras sauce - 26유로

* Coperto - 2.5유로/인당


좀 쉽게 바꿔보자.


* 트러플 파스타(치즈 휠에서 불을 지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 27유로

* 라자냐(고기랑 트러플 치즈랑 뭔가 좋은 게 잔뜩 들어간) - 16유로

* 비프 스테이크(티본 말고. 미리 착착 썰어 나온) - 26유로

* 자릿세 또는 상차림비 - 2.5유로/인당


휴. 한결 낫네.


어쨌건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트러플 파스타이지 싶다.

왜냐면... 이 메뉴를 주문하면,



 요렇게 치즈에 불 질러 테이블 앞에서 직접 치즈를 녹이고



 녹은 치즈휠 안에 크림소스와 파스타를 넣어 즉석에서 반죽하고

 


 크림이 잘 먹은 파스타(탈리아텔레 Tagliatelle, 칼국수 모양의 파스타 면을 일컫는 말)를 고이 접시에 담아서



 검은 돌덩이처럼 보이지만 향기는 기가 막히게 좋은 트러플(송로버섯)을 착착착 슬라이스 쳐서 올리주신단 말이지.



 사진만 봐도 맛있어 보이지만 영상으로 보면 더 맛있어 보인다.



 트러플(송로버섯)은 아무 조리도 않고 그냥 생으로 주네? 했었는데 실제로 맛을 보니 트러플 특유의 고급진 향기가 신선하게 나면서 촉촉하니 크림을 잘 먹은 파스타 면이랑 잘 어우러졌다.



 역시 오늘의 메인 요리는 트러플 파스타. 다 비싼 이유가 있구만...

 요 비빔면 하나 분량 정도의 트러플 파스타가 27유로(3만 8천원). 자릿세 포함하면 4만원이 훌쩍 넘는 고~오급 요리다.



 메인이 워낙 주목을 받아 상대적으로 소외된 라자냐와 슬라이스 비프 스테이크. 비주얼도 불쇼도 향기도 트러플 파스타가 워낙에 강렬해서 얘네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음. 미디엄으로 나온 슬라이스 비프 스테이크도 충분히 맛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 이상의 이 집만의 특징은 없으니 역시 이 집은 트러플 파스타를 먹으러 오는 집인 것 같다.


 역시 유명 음식점에 가면 왜 유명 메뉴만 찾아 먹는 건지 알 것 같다. 진짜 그 메뉴만 기억에 남는다. 티본 스테이크로 유명한 집에 가면 비싸도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봐야 아쉬움이 없고, 트러플 파스타가 유명한 집은 다 그 유명한 이유가 있으니 여행지에서만큼은 비싸도 꼭 시켜보길 추천한다. 날마다 4만원짜리 파스타를 먹을 수는 없지만 여행지에서의 맛집 플렉스는 당신에게 충분히 강렬하고 좋은 기억을 오랜 기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만찬, 잘 먹었습니다~


 충분히 눈도 코도 입도 호강했고 배도 부르고 다 좋다. 시간은 대충 저녁 8시 반. 그냥 헤어지긴 조금 아쉽고 시간도 조금 이르다.


"괜찮으시면 펍에 가서 맥주 한잔씩 하시죠. 맥주는 제가 살게요."


 여행지에서까지 꼰대가 청년들 괴롭히는 건가 살짝 조심스럽긴 했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유인으로 만난 수평적 관계의 여행객. 싫으면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을텐데 의기투합해서 시내 펍에 가 보는 걸로 결정.


 발 닿는 대로 걷다 발견한 피렌체 중앙시장 근처의 Dublin Pub 이라는 맥줏집 발견. 그냥 들어갑시다. 고르고 말고 할게 뭐 있어~ 맥주만 마실 건데 뭐~


https://goo.gl/maps/FBV3nB6aepXYfxAm8



 위트 넘치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Save Water, Drink Beer!(물은 아끼고, 맥주 마셔라!)" 그래요. 맥주 마시러 왔다고.



 내가 좋아하는 기네스 흑맥주를 시켜놓고 펍 분위기를 보니, 여기 스포츠 펍이네. 마침 방문한 시간이 브라질과 세르비아 조별 예선전을 치르는 날. 전 세계에서 온 젊은 다국적 여행객들과 골이 들어갈 때마다 다 같이 소리를 지르며 스포츠로 하나 되는 분위기를 느껴보니 나 또한 세계 시민이 되는 것 같다. 오늘 밥친구가 되어 준 20대 젊은 친구는 친화력이 어찌나 좋은지 여기저기 테이블을 넘나들며 술집 손님들과 프리토킹을 구사하는데 철철 넘치는 젊은 에너지도 부럽고 유창한 영어실력과 자신감도 무척 부러웠다. 역시 여행은 젊을 때 가야 해... 나는 젊을 때 뭐 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와 본 게 어디야.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 맞지만 더 늦기 전이 아니라서 다행이기도 한 거지.


 밤 10시경, 축구도 끝나고(브라질 2:0 승) 맥주도 다 마셨고 날도 깊었고 아쉽지만 이쯤에서 모두의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길을 빌어주며 바이바이하고 민박집에 맡겨둔 짐을 찾으러 돌아갔다. 친절한 민박집 사장님은 늦은 밤시간까지 군말 없이 내 배낭을 맡아주셨다.


 피렌체에서의 모든 일정은 여기까지.


 오늘 밤에는 숙박을 따로 하지 않고 야간버스로 스위스 취리히로 넘어가는 일정을 꾸렸다. 잠은 이동하며 자면 되니까 이게 교통비도 싸고, 숙박비도 하루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여러모로 좋지 싶어서. 아, 그런데... 객관적으로는 이게 말이 되긴 한데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다 있었다....






(다음 이야기 : 내가 다시는 반도종단 국제버스를 타나 봐라)

매거진의 이전글 피렌체 밤거리 산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